Opinion :중앙시평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파이터’

중앙일보

입력 2022.06.2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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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폴 볼커(Paul Volcker)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은 1970년대 미국을 괴롭혔던 고물가를 잡은 것으로 높이 평가 받는다. 볼커는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79년에 기준금리를 15.5%로 단번에 4%포인트 올렸고 81년에는 20%까지 높였다. 과감한 금리 인상으로 물가 상승률은 80년 3월의 전년 동월 대비 14.8%를 정점으로 한 후 3%대로 점차 안정됐다. 볼커는 중앙은행이 통화 긴축을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였다. 볼커 이후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연준과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이 2%에서 안정되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사실 대부분 정치인과 국민은 경제가 호황이길 원하므로 통화 긴축(고금리)보다는 완화(저금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경기가 과열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우려가 커도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는 긴축 정책을 과감하게 하지 못한다. 따라서 많은 국가에서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의 마지막 보루이다. 볼커는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강조했다. 중앙은행이 정치적 고려 없이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운용하고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적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가상승률이 당장은 낮더라도 앞으로 목표치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 선제적으로 조치를 해야 한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 술병을 치우는” 인기 없는 역할을 중앙은행이 담당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파이터
독립성 갖고 물가안정 책임 맡아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으로
국민에 물가 안정의 신뢰 줘야

미국 연준이 지난 15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50~1.75%로 대폭 올렸다. 0.75%포인트를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은 28년 만에 처음이다. 연준이 7월에 또 한 번 ‘자이언트 스텝’을 내디디고 금리를 계속 올려 연말에는 기준금리가 3.4%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은 올해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지난 3월의 4.3%에서 5.2%로 올렸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8%에서 1.7%로 낮췄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경기침체까지 더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미 연준은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인플레이션 경고에 너무 늦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 백신 보급 확산으로 일상이 회복되면서 억눌렸던 소비수요가 분출하기 시작했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지출로 경기 부양을 한 것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이미 작년 2월에 워싱턴 포스트의 기고문에서 ‘우리가 한 세대 동안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경고했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특별히 높거나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작년 5월에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이미 5%를 넘기 시작했다. 연준이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에서 통제할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지면서 민간의 기대인플레이션율이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됐다. 연준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금리 인상으로 물가 안정을 이룬다고 해도 그 대가로 경기침체를 겪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내년에 미국 경제가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중앙은행이 효과적으로 통화정책을 시행하려면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예측해야 한다. 경기가 어떤 시점에 있는지, 물가가 왜 오르는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를 알아야 한다. 금리 인상이 물가 안정에 미치는 효과와 실물 경기와 자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잘못된 판단으로 금리를 너무 빨리 올리면 물가 안정에는 별로 효과가 없고 실물 경기를 크게 위축시키게 되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물가상승을 오래 방치하면 많은 사람이 고물가로 고통을 겪을 뿐 아니라 부동산과 금융시장에 버블이 발생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민간의 기대인플레이션율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일반 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 심리가 커지면 기업은 생산물의 가격을 미리 올리고 노동자는 예상되는 물가상승률에 맞춘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실제 물가를 올리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따라서 높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에너지와 곡물 가격 상승에 연준의 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한국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4%로 2008년 이후 최고이다. 생필품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크다. 당분간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점점 상승하고 있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고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한국은행의 역할이 막중하다. 정확한 판단과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통화정책 운용으로 국민에게 물가 안정의 신뢰를 주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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