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컬 프리즘

러시아 제재와 선원 밀입국

중앙일보

입력 2022.06.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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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지난 9일 오전 1시쯤 경남 거제 해상에 정박해 있던 부산 선적 명태잡이 원양어선(5000t급) A호에서 인도네시아 선원 7명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구명조끼를 옷 안에 감춰 입고 해상에 있는 선박에서 1.6㎞가량 떨어진 육지까지 헤엄쳐 이동할 계획을 세운 뒤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들의 밀입국 시도는 2주간 준비된 것으로 해경 조사 결과 드러났다. 물때를 파악해 수영해서 이동하고 여벌 옷과 신발, 여권, 돈 등이 물에 젖지 않게 비닐봉지까지 따로 챙겼다. 그러나 배에서 도망갔던 선원 7명 중 1명은 바다에 빠져 숨졌고, 나머지 6명도 반나절 만에 붙잡혔다.

인도네시아 선원 7명이 도주한 원양어선. [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선원 7명이 도주한 원양어선. [연합뉴스]

숨진 1명은 이날 오전 8시 57분쯤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 해안에서 발견됐다. 해경은 익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당시 나머지 6명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약 800m 정도 떨어진 성포항 인근에서 숨진 동료를 기다리기도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동료가 오지 않자 나머지 6명은 택시를 타고 인근 부산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뒤쫓아온 이민특수조사대와 해경 및 육경에 의해 조력자까지 모두 붙잡혔다.

해경 조사 결과 이들은 A호에서 근무하기 위해 지난 3월 선원 근무용 비자(C-3)를 받고 입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A호는 지난 5월 러시아 해역으로 출항해 내년 1월쯤 우리나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조업 시기가 계속 미뤄졌다. 지난 4월 19일부터 거제 해상에서 닻을 내리고 있던 A호에는 외국인 45명 등 57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출입국 당국은 결국 이들이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고 귀국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밀입국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밀입국 시도가 앞으로 재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출입국 당국에 따르면 부산 감천항 등에는 명태와 대구를 잡는 국내 선적 원양어선(2000~3000t급) 여러 척이 정박해 있다. 이들 원양어선은 A호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해역으로 조업을 나가려다 수개월째 항구에 발이 묶여 있다. 러시아 정부로부터 원양 조업 허가는 받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따른 대러 제제로 계좌가 막혀 입어료(다른 나라의 어업 수역 안에 들어가서 조업할 때 내는 요금)를 송금하지 못해서다. 그렇게 부산·경남 해역에 발이 묶인 외국인 선원만 1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양수산부가 명태·대구 원양 조업과 관련해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하니 하루빨리 조업이 재개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 전에라도 출입국 당국은 A호와 유사한 원양어선을 소유한 선사 등과 함께 ‘외국인 선원 무탈 이탈’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한 번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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