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표암·겸재 못 보던 작품이…희귀작 보러 인사동 인파 몰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23 00:03

업데이트 2022.06.2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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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백악미술관 ‘수류화개’전에 공개된 겸재 정선의 그림 ‘일가정(一架亭)’. 26.0x29.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백악미술관 ‘수류화개’전에 공개된 겸재 정선의 그림 ‘일가정(一架亭)’. 26.0x29.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 ‘일가정(一架亭)’, 표암 강세황(1713~1791)의 채색 소품 화첩 『수채(受彩)』,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석매도(石梅圖),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다양한 글씨….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최근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을 찾은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쉽게 볼 수 없던 고미술품이 한자리에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개막한 ‘수류화개(水流花開)’전이 화제다.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서화가들의 그림, 글씨, 화첩, 서책 등 9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표암, 겸재, 단원의 그림 등 하나하나가 거장의 작품인데, 박물관이나 교과서에서 접해온 게 아니다. 오랫동안 개인 소장가들이 간직해온 희귀작이다.

표암 강세황의 채색 소품이 수록된 화첩 『수채(受彩)』. 26.5x22.7㎝.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표암 강세황의 채색 소품이 수록된 화첩 『수채(受彩)』. 26.5x22.7㎝.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예를 들면, 강세황의 화첩 『수채』는 십수 년 전에 일본 경매를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국내에서 소개된 적이 없다. 이번이 첫 공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겸재의 ‘일가정’, 단원의 ‘석매도’ 역시 일반에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과거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일부만 전시됐던 임전 조정규(1791~?)의 ‘금강산도’는 이번에 8폭 전체가 다 나왔다.

표암 강세황의 채색 소품이 수록된 화첩 『수채(受彩)』.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표암 강세황의 채색 소품이 수록된 화첩 『수채(受彩)』.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번 전시는 한국미술정보개발원(대표 윤철규)이 주최한 애호가 전시다. 개인 소장가들이 “과거 인사동이 고미술 애호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듯, 일반 관람객이 고미술을 가까이 접할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번에 작품을 내놓은 소장가는 7명이다.

1층 전시장엔 표암과 단원 외에도 시산 유운홍(1797~1859)의 산수, 해부 변지순(1780 이전~1831 이후)의 ‘노송도(老松圖)와 우죽도(雨竹圖)가, 2층엔 퇴계 이황(1501~1570)부터 조선 중기 명필 황기로(1521~1567), 후기 이광사(1705~1777)의 글씨가 전시됐다.

석당 이유신의 ‘창옥병(蒼玉屛)’, 30.0x43.0㎝. 포천 지역 기암 진경산수를 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석당 이유신의 ‘창옥병(蒼玉屛)’, 30.0x43.0㎝. 포천 지역 기암 진경산수를 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표암의 글씨와 그림(1층), 추사의 다양한 글씨(2층)다. 표암이 중국 북송 서예가 미불(米芾) 글씨를 평하며 쓴 글부터 서간첩(간찰 7통 수록), 매죽도와 산수도 등 작은 그림들이다.

『수채』 화첩엔 표암이 소재와 채색에 있어 다양한 시도를 했던 흔적이 담겼다. 표암은 처음에 남종문인화의 모방작을 그리다가 후기에 음영법 등 서양의 수채기법을 산수화에 접목했다. 전시를 기획한 윤철규 대표는 “이 화첩은 일제강점기 이왕직 장관을 한 민병석(1858~1940)이 소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괴석과 대나무, 난초를 그린 그림도 다양하다. 괴석도는 표암 작품부터, 황산 김유근(1785~1840), 애춘 신명연(1808~1886), 심전 안중식(1861~1919), 학석 유재소(1829~1911) 작품이 나란히 걸렸다. 탄은 이정(1554~1626), 자하 신위(1769~1847), 해강 김규진(1864~1933)의 묵죽도, 석파 이하응(1820~1898) 과 운미 민영익(1860~1914)의 묵란도도 볼 만하다.

원교 이광사 글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원교 이광사 글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시를 둘러본 유홍준 명지대 명예교수(전 문화재청장)는 “그동안 고미술 애호가들이 볼 만한 전시가 거의 없었는데, 모처럼 좋은 고서화를 한데 모아 말 그대로 고미술의 향연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보물급은 아니어도 추사 글씨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과 더불어 단원의 석매도, 김유근의 괴석도, 석당 이유신(미상, 18세기)의 ‘창옥병(蒼玉屛·경기 포천지역 기암 진경산수)’,  시산 유운홍(1797~1859)의 산수가 특히 좋았다”고 덧붙였다.

2층엔 추사의 예·행서 작품을 비롯해 산천 김명희(1788~1857), 금미 김상희(1794~1861) 등 추사 삼형제 글씨가 나란히 걸렸다. 또 추사 이전에 유명했던 명필 이광사(1705~1777), 이광사보다 앞선 시기의 석봉 한호(1543~1605), 그리고 퇴계의 글씨도 볼 수 있다. 전시 첫날 관람한 초정 권창륜(79) 서예가는 “추사 글씨 하나하나엔 깐깐하면서 내공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고 말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추사의 쌍폭 대련 등 기존에 공개된 몇 작품을 빼곤 이번 전시에 새로운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며 “황기로, 양사언, 백광훈, 이산해 등 기라성같은 조선 전기 명필이 글씨를 모아놓은 서첩(명인서첩)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10여년 만에 조선 글씨와 그림을 동시에 보여준 전시로, 우리 미술이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달음을 주는 자리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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