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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태영호가 고발한다

총살될 게 뻔한데 강제 북송…'사람이 우선'이라던 文정부 악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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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태영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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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탈북민 강제 북송은 국내 정착 탈북민을 비롯해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그래픽=김현서 기자

지난 2019년 탈북민 강제 북송은 국내 정착 탈북민을 비롯해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그래픽=김현서 기자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지난 2020년 9월 서해 상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 사살된 사건이 지금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실종자(이대준)가 북측에 발견됐다"는 최초 보고 후 총살까지, 자국민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6시간이나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문재인 정부는 손을 놓았고, 심지어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도 유가족을 위로하기는커녕 북한 편드는 태도로 일관하며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자진 월북으로 몰아 남은 가족을 끝 모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다행히 정권 교체로 지난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지난 문재인 청와대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15년에서 최장 30년까지 봉인한 관련 사건 정보 열람을 추진하고 있다. 예상하긴 했지만, '신(新)색깔론' 프레임을 씌우며 어떻게든 정보 공개를 막으려 반발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은 졸렬하기 짝이 없다. 국민 생명 보호과 관련한 중대 사안이 막는다고 막아질 일도 아니려니와 이거 하나 막는다고 문 정부 시절 벌어진 북한과 관련한 각종 인권 유린 만행을 다 덮을 수도 없다.

속속 드러나는 문 정부의 인권 만행 

윤 대통령이 21일 출근길에 언급한 2019년 11월 탈북민 강제북송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면 정부의 통치행위라기보다 악랄한 범죄에 가깝다. 배를 타고 동해 상으로 탈북한 북한 주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나포 닷새 만에 포승줄로 결박하고 안대로 눈을 가린 채 판문점을 통해 강제 북송해 버렸으니 하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탈북 자체도 가볍지 않은 죄인데, 자기 발로 다시 북한에 돌아간 것도 아니고 "안 가겠다"는 걸 한국 정부가 강제 추방한 모양새라 더한 중죄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이들을 보내면서 "살인을 인정했다"고 발표한 것도 치명적이다.

지난 3월 태영호 의원(가운데)과 전국탈북민총연합 회원들이 강제 북송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전국 탈북민 집회를 했다. [뉴시스]

지난 3월 태영호 의원(가운데)과 전국탈북민총연합 회원들이 강제 북송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전국 탈북민 집회를 했다. [뉴시스]

북한은 아마 이를 토대로 살인죄까지 이중으로 물어 두 청년을 처형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개처형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북한은 공식적으론 공개 처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지만 모든 북한 주민이 일생 한두 번은 경험할 만큼 공개처형이 잦다. 나 역시 1980년대 대학 시절 '교양적 차원'에서 서평양역 넘어가는 하당골 공개처형장에서 살인을 저지른 살인집단, 그러니까 한국식 용어로는 조폭의 공개 처형을 직접 봤다. 극도의 공포를 이용한 통치술인 셈이다.

어쨌든 강제 북송 사건 당시 매우 큰 충격을 받았고 또 분노했다. 나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모든 탈북민이 다 그랬다. 이 사건 이전부터 북한에서 죄를 짓고 도망온 탈북민이 더러 있었다. 이런 사실을 숨긴 채 와도 조사 과정에서 대개 드러난다. 다만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는 해도 북한 주민 역시 헌법상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한국 사법 절차에 따라 감옥에 가고 정착금을 못 받는 이른바 '비보호 대상'으로 분류될지언정 북송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대남간첩활동을 하다 체포된 사람도 전향 여부와 상관없이 형기만 채우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한국에서 살도록 해 주는 거로 안다. 지난 2020년에도 전향하지 않은 간첩이 10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고, 내가 한국에 와 연구소에 재직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한 동료도 간첩 출신이었다. 다시 말해, 무슨 이유든 일단 한국에 오면 설령 북한에서의 죄를 물어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확인되지 않은 범죄사실을 들어, 돌아가면 고문당하거나 처형당할 게 분명한 주민을 돌려보내다니 이게 '사람이 우선'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정부가 할 수 있는 짓인가. 우리 국정원은 북한의 범죄 수준별 처벌 데이터를 아주 상세하게 쌓아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강제 북송한 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을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이런 일을 했다는 게 정말 끔찍하다.

포승줄 강제 송환 국민에 숨긴 문 정부 

게다가 눈이 가려 친 채 포승줄에 묶여 북한 땅을 밟고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무자비하다는 중국도 이런 짓은 안 한다. 주변 탈북민한테 들어보니, 중국에서 체포된 후 북송되기 직전이면 중국 교도관도 "배고프면 다시 오라"며 측은한 얼굴로 밥을 차려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는 중국만도 못한 나라가 문재인 시절 대한민국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주민 강제 북송을 국민에 숨겼으나, 언론사 카메라에 송환 내용을 담은 군 관계자 문자 메시지가 포착되면서 공개됐다.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는 북한 주민 강제 북송을 국민에 숨겼으나, 언론사 카메라에 송환 내용을 담은 군 관계자 문자 메시지가 포착되면서 공개됐다. [중앙포토]

이 사건이 드러난 과정도 인권과는 거리가 멀다. 청와대 몇 사람이 밀실에서 결정한 후 국민에겐 숨기려다 우연히 유엔사 소속 장교가 청와대가 보고하는 문자 메시지가 언론에 포착돼 어쩔 수 없이 공개했다. 의도치 않게 들킨 거다. 그래놓고도 당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헌법 보호를 받을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확실한 수사도 없이 동료를 죽이고 도피해 온 흉악범이라 규정한 후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 문장 하나만 봐도 여러 문제가 드러난다. 우선 헌법 위배다.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로 규정한 헌법 3조에 따라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으로 봐야 한다. 흉악범이면 국민으로 볼 수 없다는 건 해괴한 말장난일 뿐이다. 또 북한으로 송환하면 처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용소 등에 보내져 고문받을 우려가 큰 데도 보냈으니 한국이 가입한 유엔 고문방지협약에도 위배된다.

가만있을 수 없었다. 언론 인터뷰나 칼럼 기고,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악랄한 대응을 비판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특검 얘기도 나왔지만 얼마 안가 없던 일이 됐다. '탈북민 권익을 위해 나서는 당이 없다면 내가 한번 바꿔보자'고 마음먹기는 했지만 그게 꼭 정치 참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 생명과 관련한 일을 밀실에서 몇 사람이 무작위로 결정하는 걸 도통 이해할 수 없었고, 꼭 바꾸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럴 힘이 있는 건 입법부뿐이라길래 결국 출마를 결심했고, 그 결과 탈북민 최초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됐다. 이렇게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은 내 삶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막상 21대 국회에 들어와 보니 또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소수당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사건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다. 대정부질문 데뷔였던 지난 2020년 7월을 시작으로 2021년 2월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그리고 국회 운영위 소속으로 국가인권위원회 국감 때 당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나는 "이 사건이 강제북송, 인권침해가 맞는지 답해달라"고 요구했고, 송 위원장은 "네"라고 답하며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김정은도 사건 처리 지켜본다 

지난해 2월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 후보자(오른쪽)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송영길 당시 외교통일위원장과 인사하는 모습.[뉴시스]

지난해 2월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 후보자(오른쪽)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송영길 당시 외교통일위원장과 인사하는 모습.[뉴시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하고 가장 숭고한 인권의 가치마저 저버린 비인도적인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와 책무에 대한 사안에 국회가 앞장서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번에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이나 탈북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다면 또 한차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사회적으로 큰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진실을 숨겨 상처가 곪아 썩어가는 것보다는 올바른 사실에 기반해 덧나는 일 없도록 깔끔하게 터져야 비로소 회복할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이미 거짓 위에 기초를 쌓은 집회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기만 하고 무의미한지를 여러 차례 보지 않았는가.

다만 대승적 협치, 초당적 협력의 필요조건은 바로 진실인 만큼, 이제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에 대해선 여야가 정파적 입장을 떠나 오직 진실만을 놓고 협력했으면 한다. 지금 김정은 정권도 이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나 탈북민 강제북송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지를 지켜 보고 있다. 우리는 김정은 정권 앞에서도 대한민국이 국민의 생명 안전과 명예를 얼마나 중시하는 국가인지를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