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EU 가입 안되나"…뿔난 조지아 12만명 시위

중앙일보

입력 2022.06.22 17:00

우크라이나·몰도바와 함께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한 조지아가 홀로 '보류' 결정을 받게 되자,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현 정부가 EU행을 막고 있다"며 개혁을 요구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의 국민이 EU 가입에 찬성했다. 인구 400만의 조지아는 유럽 동쪽에 있는 캅카스산맥을 경계로 러시아 남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EU 후보국 지지 제외…조지아, 최대 12만명 항의 시위

조지아 사람들이 20일 밤 수도 트빌리시 중심가에 나와 EU 후보국 지위가 제외된 것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 어린이가 '우리는 유럽이다'라는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지아 사람들이 20일 밤 수도 트빌리시 중심가에 나와 EU 후보국 지위가 제외된 것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 어린이가 '우리는 유럽이다'라는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일 오후 조지아 수도 트리빌시엔 약 6만명의 시민이 EU 집행위원회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독일 도이치벨레(DW)가 21일 보도했다. 이들의 요구는 '유럽 행진(March for Europe)'이었다.

AFP 통신은 드론 영상을 토대로 시위 참가자가 12만여명에 달했다고 전했다. 최근 10년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다. 트빌리시 시민들은 'EU의 노래'인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연주되자 "우리는 유럽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했다.

시위에 참가한 릴리 넴사제는 "EU 가입이 거절된 건 우리가 여전히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뜻"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조지아 재침공을 위한 청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08년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공했으며, 조지아가 4일 만에 항복했다. 이로 인해 당시 국토의 5분의 1이 러시아군 통제 하에 있다.

러시아 남부·조지아 북부 접경에는 조지아에서의 분리·독립을 선포한 친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이 있다. 러시아군이 통제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러시아 남부·조지아 북부 접경에는 조지아에서의 분리·독립을 선포한 친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이 있다. 러시아군이 통제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앞서 지난 17일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EU 가입신청서를 낸 우크라이나·몰도바·조지아에 대해 후보국 지위를 부여할 것인지 논의한 후, 조지아를 제외하고 우크라이나·몰도바만 공식 추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가치와 기준에 부응하려는 결의를 분명히 보여줬다. 몰도바도 대체로 우크라이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반면 조지아에 대해선 "유럽의 관점에서 여러 조건을 충족하는지 더 평가해야 한다. EU를 향한 명확한 길을 위해 정치적으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EU 가입을 위한 구체적 조건으로 정치적 양극화 해소를 비롯해 언론자유 신장과 사법·선거제도 개혁, 탈올리가르히(구소련 계열 신흥 재벌)화 등을 제시했다. 또 연말까지 이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현 총리 "우크라·몰도바, 전쟁 덕에 후보국 지지 받아" 

수만명의 조지아인들이 20일 밤 수도 트빌리시 중심가에서 조지와 국기와 EU 국기를 들고 '유럽행 행진'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수만명의 조지아인들이 20일 밤 수도 트빌리시 중심가에서 조지와 국기와 EU 국기를 들고 '유럽행 행진'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지아 내에선 '옛 소련 국가로서 우크라이나·몰도바도 같은 문제를 겪었는데, 왜 우리만 EU 후보자 지위 지지를 못 받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막시밀리안 헤스 선임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도 과두정치, 당파적 언론 조직, 법치주의 훼손 등의 문제가 있었다"면서 "최근 몇 년 동안 3개국 중 조지아가 가장 유럽의 민주적, 정치적 기준에 접근하는데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했다.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 조지아 총리는 21일 "실질적인 성과 기준으로 심사했다면 우리가 지지받았을 것"이라며 "유럽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고, 몰도바는 우크라이나 바로 옆에 있는 가까운 이웃 국가로서 전쟁 여파로 어려운 상황이라 후보국 지지를 부여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자들 "친러 前 총리 입김 탓…과두정치 벗어나자"

비드지나 이바니시빌리 전 조지아 총리가 지난해 10월 수도 트빌리시에서 열린 지방선거에서 투표소를 찾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비드지나 이바니시빌리 전 조지아 총리가 지난해 10월 수도 트빌리시에서 열린 지방선거에서 투표소를 찾았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이날 시위대는 현 정부가 EU 후보국 지위를 거부당하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20대 직장인 타티아 모드바제는 FT에 "EU 후보 지위를 얻지 못한 건 집권여당(조지아의 꿈) 창당자인 비드지나 이바니시빌리가 러시아와 연결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바니시빌리는 러시아 정치 인사들과 밀접한 친분관계를 형성하며 금융업과 광업으로 성공해 억만장자가 됐다. 또 2012년 조지아의 꿈을 창당했으며,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직을 맡았다.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2013년에 물러났지만, 막후에서 실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회는 이달 초 이바니시빌리가 조지아 정치와 경제에 파괴적 역할을 했다며 EU에 이바니시빌리에 대한 제재를 고려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바니시빌리와 막역한 사이인 가리바슈빌리 총리와 여당은 그를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캅카스 지역매체인 OC미디어에 따르면 시위를 주도한 조지아 야당과 민주화 단체들은 "EU 집행위원회가 권고한 것처럼 과두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우리 요구를 정부가 따르지 않을 경우 비폭력 저항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위대는 EU 정상회의 기간인 23~24일에 다시 대규모 시위를 열 예정이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