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격전지서 사망한 용사…유해 발굴 13년 만에 신원 확인된 육군 하사 추모 물결

중앙일보

입력 2022.06.22 11:35

마을 지킨 호국영웅 주민들이 추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포병여단 장병들이 1951년 5월 15~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장병의 유해를 수습했다. 사진은 유해와 함께 발견된 약병.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 사진. 강정현 기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포병여단 장병들이 1951년 5월 15~17일 강원도 인제 한석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장병의 유해를 수습했다. 사진은 유해와 함께 발견된 약병.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 사진. 강정현 기자

6·25전쟁 최대 격전지인 다부동이 있는 경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한 전사자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보훈 관련 기관·단체가 아닌,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전사자 추모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22일 칠곡군 등에 따르면 칠곡군 석적읍 도개2리 주민 50여명은 6·25 당시 숨진 고(故) 홍인섭 하사를 기리기 위해 최근 추모 현수막을 제작해 마을회관 등에 내걸었다. 또 홍 하사의 유족에게 전할 쌀과 감자 등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마련했다.

경북 칠곡군 한 시골마을 주민들이 고 홍인섭 하사의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추모 현수막. 사진 칠곡군

경북 칠곡군 한 시골마을 주민들이 고 홍인섭 하사의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추모 현수막. 사진 칠곡군

홍 하사는 유해가 발굴된 지 13년 만에 신원이 확인된 무명의 전사자다. 칠곡군에 따르면 홍 하사는 국군 1사단 11연대 소속으로 6·25전쟁 다부동 전투에 참전했다. 그러다 1950년 8월 도개2리 마을 앞 유학산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모친은 아들이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끼니마다 밥을 떠 솥 안에 보관하다가 1999년 별세했다.

앞서 홍 하사의 유해는 2009년 유학산에서 발굴됐다. 하지만 신원은 확인하지 못하다가 지난 3월 국방부 유전자 정밀 분석을 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칠곡군 관계자는 "지난 4월 홍 하사의 사연을 접한 도개2리 주민들이 ‘마을과 지역을 지켜준 고인의 희생과 헌신에 고마움을 표하겠다’며 추모에 나섰다"며 "추모 현수막을 만들고 유족에게 농산물을 보내기 위해 칠곡군과 국방부 유해발굴단에 연락해 연락처를 수소문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DMZ 유해발굴' 광고의 한 장면,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연합뉴스(국방부 제공)

국방부 'DMZ 유해발굴' 광고의 한 장면,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연합뉴스(국방부 제공)

이에 대해 서울에 거주하는 홍 하사 유족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만 받겠다”라며 쌀과 감자 등 농산물은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2000년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으로 1만2000여 구의 전사자를 찾았지만,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200여 구에 불과하다”며 “호국 영웅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8촌 이내 유가족은 반드시 시료 채취에 동참해달라"고 말했다.

2020년 경북 칠곡군에 붙은 백 장군 추모 현수막. 사진 칠곡군

2020년 경북 칠곡군에 붙은 백 장군 추모 현수막. 사진 칠곡군

6·25 전쟁 최대 격전지인 다부동과 낙동강 방어 전선이 있는 칠곡군은 '호국의 고장'을 자처하는 곳이기도 하다. 칠곡군은 2015년부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원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노병들을 칠곡군에 초청하는 행사를 열고, 코로나19 방역물품도 전달했다. 에티오피아 현지에 참전용사 동상을 세우고, 노병들이 주로 사는 마을(한국전참전용사마을)에 의료용품 등 생필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6·25 전쟁 때 한국군을 이끈 고(故) 백선엽 장군에 대한 '팬심'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2012년부터 매년 호국보훈의 달인 6월과 백 장군 생일인 11월 두 차례 생전 백 장군을 찾아가 참배하고, 빵과 절편을 선사해왔다. 2019년엔 종이학 100마리를 백 군수가 직접 접어서 앨범과 함께 전달하는 한편, 백 장군을 칠곡명예군민으로 추대하기도 했다. 다음 달 8일 백 장군 2주기 추모 행사는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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