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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고 싶다"던 文의 책 추천…尹 인터뷰에 그 이유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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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 잊혀진 삶을 살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공개 행보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 평산마을 주민들과 함께 가마에 불을 때고 막걸리를 나눠마시는 모습을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했다. 사진 SNS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 평산마을 주민들과 함께 가마에 불을 때고 막걸리를 나눠마시는 모습을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했다. 사진 SNS 캡처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인 지난달 12일 페이스북에 “귀향 후 첫 외출, 아버지ㆍ어머니 산소에 인사드리고, 통도사에도 인사 다녀왔다”는 글을 시작으로 지난 40여일간 15건의 글을 게시했다. 19일엔 인스타그램에 4건의 별도 글과 사진을 올리며 ‘SNS 소통’을 본격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글은 대부분 양산에서의 일상을 담고 있지만, 일부는 정치 행위로 해석될만한 것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9일 『짱깨주의의 탄생』이란 책을 추천한 글이다. 문 전 대통령은 해당 책을 추천하며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 이념에 진실과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 책은 곧장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9일 페이스북에 김희교 광운대 교수가 쓴 『짱깨주의의 탄생』을 추천했다. 페이스북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이 9일 페이스북에 김희교 광운대 교수가 쓴 『짱깨주의의 탄생』을 추천했다. 페이스북 캡처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이 글을 올리기 직전인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북한 눈치를 보는 굴종 외교는 실패했다는 게 지난 5년간 증명됐다”며 문 전 대통령의 외교노선과 결별할 뜻을 밝혔다. 이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이 갑자기 반중(反中) 외교를 경계하는 내용의 책을 공개적으로 추천한 것을 놓고 윤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정면 반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가 지난달 27일 트위터를 통해 문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다시 아버지로 돌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며 근황을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 이 사진의 배경에 찍힌 '실크로드세계사'라는 책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자, "편집자가 감사편지를 보내왔다"는 글을 올렸다. 사진=문재인 전 대통령 딸 다혜 씨 트위터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가 지난달 27일 트위터를 통해 문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다시 아버지로 돌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며 근황을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 이 사진의 배경에 찍힌 '실크로드세계사'라는 책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자, "편집자가 감사편지를 보내왔다"는 글을 올렸다. 사진=문재인 전 대통령 딸 다혜 씨 트위터 캡처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도 “편집자가 감사편지를 보내왔다”며 『실크로드 세계사』라는 책을 언급했다. 지난달 27일 딸 다혜씨가 공개한 문 전 대통령의 사진 속 배경에 등장했던 책이다. 낮잠을 자는 문 전 대통령의 옆에 놓여 있던 책이 지지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자, 출판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 읽은 책’이라는 띠지를 만들어 책을 홍보했다.

지지자들이 열광했던 책에 직접 반응하는 글을 올린 것 자체가 스스로 말했던 ‘잊혀진 삶’과는 거리가 있다.

지방선거 다음날인 지난 2일엔 문 전 대통령의 실명으로 이재명 민주당 의원을 비판하는 트위터 글에 ‘좋아요’가 표시되는 일도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 함께 정부세종컨벤션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 함께 정부세종컨벤션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전 대통령측은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버튼을 누른 건 맞다”면서도 “조작 실수로 눌렸을뿐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당시는 친(親)문재인 진영이 이 의원의 보궐선거 출마를 선거 참패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해 총공세를 가하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 나온 문 전 대통령의 ‘실수’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청와대 참모 출신의 민주당 의원은 2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을 퇴임 이후 만났는데 ‘걱정하지 말라’면서도 ‘내가 해야 할 말이 있으면 하겠다’고 하더라”며 “사저 앞 시위나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 외교 관련 언급 등이 스스로 밝힌 ‘해야 할 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또다른 인사는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는 와중에 나오는 문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보복수사 등에 대한 반대 여론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야당 내 뚜렷한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속적으로 ‘문재인 지우기’를 강조하자, 이에 맞서 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실제로 온라인에선 여전히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가 깨지지 않고 있다.

검색량을 수치화한 ‘구글 트렌드’에서 윤 대통령의 검색량 수치는 62포인트로, 같은 기간 문 전 대통령이 기록한 33포인트보다 2배가량 높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검색량 변화 그래프는 대체로 연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상당수의 대중들이 전ㆍ현직 대통령을 비교하며 검색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한달간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검색량 추이를 표시한 구글트렌드 그래픽. 전현직 대통령의 인터넷 검색량은 상당한 동조를 보이는 가운데, 양산 '욕설집회'에 대한 법적대응 방침이 확인됐던 지난달 29일엔 문 전 대통령의 검색량이 급격히 치솟았다.

지난 한달간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검색량 추이를 표시한 구글트렌드 그래픽. 전현직 대통령의 인터넷 검색량은 상당한 동조를 보이는 가운데, 양산 '욕설집회'에 대한 법적대응 방침이 확인됐던 지난달 29일엔 문 전 대통령의 검색량이 급격히 치솟았다.

특히 문 전 대통령 측이 양산 ‘욕설 시위’에 대한 법적대응 방침을 결정한 지난달 29일 문 전 대통령(52포인트)의 검색량 수치는 윤 대통령(54포인트)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시위를 한다”며 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을 자극했고, 이는 윤 대통령의 서초동 자택 앞 보복성 ‘맞불 시위’로 이어졌다.

2008년 2월25일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초기 한달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전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색량을 비교한 구글트렌드 그래프.

2008년 2월25일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초기 한달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전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색량을 비교한 구글트렌드 그래프.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서해 공무원 사건 등으로 여권이 현재의 야당이 아닌 문 전 대통령과 전 정부를 직접 겨냥하면서 전직 대통령의 존재감이 확대된 상태의 전·현직 대통령이 맞대결하는 모습의 정치구도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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