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빈층 "7시에 줄서 점심급식 한끼, 주운 썩은 양파 한끼"

중앙일보

입력 2022.06.22 05:00

업데이트 2022.06.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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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양천구에서 혼자 사는 70대 이모씨는 지난주 양파 볶음 반찬에 저녁 식사를 했다. 반찬 마련에 돈은 한 푼도 안 들었다. 동네 시장의 쓰레기통에서 주운 양파로 요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상인이 버린 양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볶아 먹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그의 밥상에는 시장 쓰레기를 재활용한 반찬이 자주 등장한다. 생계 수단이 기초연금 30만7500원인 그에게 크게 뛴 식재료를 사는 건 사치다. 그는 올해 들어 계란 한판 산 기억이 없다고 했다.

 1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약 200명의 노인들이 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석경민 기자

1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약 200명의 노인들이 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석경민 기자

하루 한 끼는 초코파이 혹은 라면

‘런치플레이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높아진 생활 물가에 이씨와 같은 극빈층의 ‘삼시 세끼’가 위협받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선 노인들이 임시 천막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급식소를 찾는 이들이 모두 극빈층은 아니지만, 노인들은 “여기에서 끼니를 전부 챙겨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130번대 대기 번호표를 손에 쥐고 있던 이씨는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를 챙겨 먹는데, 한 끼는 무조건 라면이나 초코파이로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이런 급식소가 있는지도 모르다가 오늘 처음 찾아왔다”고 했다. 높아진 물가에 더 부담스러워진 한 끼를 해결할 대안을 찾은 것이다. 그는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된 게 내가 잘못 살아온 거 같아 창피하고 한스럽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온 박모(83)씨는 이날 오전 7시 전에 급식소에 도착했다. 노인 중 두 번째로 도착했다는 그는 “매일 식사를 여기서 해결한다. 여기서 먹을 때 가장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며 “혹시 먹지 못할까 봐 매일 아침 일찍 나선다”고 했다. 이 급식소의 점심은 250인분까지 제공된다.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원활한 식사 제공을 위해 오전 7시 30분쯤부터 150명까지 번호표를 제공한다. 급식소 관계자는 약 70명은 새벽 6시전에 이미 대기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원활한 식사 제공을 위해 오전 7시 30분쯤부터 150명까지 번호표를 제공한다. 급식소 관계자는 약 70명은 새벽 6시전에 이미 대기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급격하게 오른 물가는 식성마저 포기하게 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최모(75)씨는 “한 달에 약 60만원을 받는데, 방세를 30만원 내면 나머진 다 식비로 나간다”며 “올해 초까지만 해도 두부 음식을 좋아해 종종 사 먹었는데, 최근에는 도저히 살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기초연금을 받는 조모(76)씨는 “오늘 아침은 김치로 해결했다. 과일이나 과자는 설날 자식들이 가져올 때나 맛본다”고 했다.

무료 급식이 끝나갈 즈음인 오후 12시 30분, 원각사 무료 급식소 대기 구역 한쪽에선 실랑이가 벌어졌다. 다른 단체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을 챙긴 몇몇 노인이 급식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으면서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노인들은 급식소 안내자들을 불러 “저 사람들 가방을 뒤져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급식소 관계자는 “여기선 점심을 먹고 몰래 챙긴 도시락으론 저녁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장면”이라고 했다.

17일 원각사 급식소의 메뉴는 제육볶음과 상추볶음, 그리고 수박이었다. 급식소 관계자는 “최근 상추가 대량으로 후원이 들어와 며칠째 상추 반찬이 나오고 있다”며 “오늘은 메뉴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이날 식사를 마치고 나온 한 노인은 “설날 이후 처음 과일을 먹었다”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17일 원각사 급식소의 메뉴는 제육볶음과 상추볶음, 그리고 수박이었다. 급식소 관계자는 “최근 상추가 대량으로 후원이 들어와 며칠째 상추 반찬이 나오고 있다”며 “오늘은 메뉴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이날 식사를 마치고 나온 한 노인은 “설날 이후 처음 과일을 먹었다”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재료비 올라 돌려보낼 때 마음 아파”

끼니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단체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30년째 민간 후원만으로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원각사 무료 급식소는 최근 반찬 가짓수를 4가지에서 2~3가지로 줄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1800만원에서 2000만원 수준이던 재료비가 최근 들어 최대 2500만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강소윤(55) 원각사 급식소 총무는 “돼지고기는 50% 이상 올랐고, 모든 야채가 거의 배 이상 뛰었다”며 “8년 동안 식사 준비를 해왔는데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다. 식사 준비가 매일 전쟁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300인분 정도의 양을 준비하는데, 재료비가 올라 최근 50인분 정도를 줄였다”며 “준비한 음식이 다 동나 찾아온 어르신들을 돌려보낼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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