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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은 "박살"이라고 했다...'文정권 이권카르텔' 때리기 거세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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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1일 오전 8시 50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입구. 출근하던 윤석열 대통령은 ‘탈북 어민 북송 사건’ 진상규명에 대한 입장을 묻자 “아직 검토 중인데 옛날부터 국민이 문제를 많이 제기하지 않았나”라고 답했다. 또 “일단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면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된다”라면서“북송시킨 것에 대해선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고 문제 제기를 많이 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 발생한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동해 상으로 탈북한 북한 선원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나포 닷새 만에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려보낸 사건이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북한 눈치 보기”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거부했다. 윤 대통령 발언은 최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정보를 공개한 데 이어 이 사건에 대해서도 재조사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국가안보실이 공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전날에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말고도 지난 정부에서 공개를 거부한 것 중 공개할 게 더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이 의문을 갖고 계신 게 있으면 정부가 거기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게 좀 문제가 있지 않으냐 해서 그 부분을 잘 검토해보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대통령실은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 공개 소송을 포함해 지난 정부의 정보공개 소송 대응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김정숙 여사 옷값 사건에 대한 항소이유서를 곧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다”며 “그걸 우리가 써주는 게 맞느냐”며 항소 취하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를 포함해 최근 여권 움직임을 보면 전 정부 관련 문제를 공세적으로 이슈화하려는 기류가 강하게 읽힌다. 이날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권 카르텔, 부당한 지대 추구의 폐습을 단호하게 없애는 것이 바로 규제 혁신이고 우리 경제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과거 ‘문재인 정부 적폐 수사’ 방침을 언급하며 했던 발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9일 정치선언을 하면서 “문재인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했다”고 비난했다. 지난 2월 16일 청주 유세 중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오랜 세월 집권해 이권을 나눠 먹은 카르텔 기득권 세력을 박살 내겠다. 이 정권 전체가 공범”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런 '전 정부 때리기' 움직임을 임기 초 윤 대통령 지지율 정체와 맞물려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전날 리얼미터 발표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지난주와 동일한 48.0%를 기록했지만 부정평가는 1.2%포인트 높아진 45.4%였다. 리얼미터는 “각종 경제 지표의 위기 신호가 당분간 긍정 평가의 흐름을 무겁게 할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이날 고금리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기자들에게 “근본 해법을 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윤 대통령이 제시하는 대안 역시 법안 형태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야만 하는 게 대부분이다. 여권 관계자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임기 초 개혁 드라이브를 계속 띄우려곤 하는데, 빨간 불이 켜진 경제상황에 여소야대 정국까지 전체적으로 여의치가 않다”며 “다만 무너진 법치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전 정부의 불법행위는 수사당국을 통해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동부지검에선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 서울중앙지검은 여성가족부의 ‘민주당 대선 공약 개발’ 의혹에 대한 수사에 이미 나섰다. 이밖에 월성 원전, 백현동 사건 등 검·경이 앞다퉈 수사의 고삐를 죄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한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철 지난 색깔론과 기획 검찰수사로 야당을 죽이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5일 긴급기자간담회를 열고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에 대해 “이런 방식의 국정운영이 초기부터 시작되면 이명박 정부 시즌2가 된다. 그 결과가 어떤지 아시지 않나”라며 회의실에 걸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가리켰다. 이어 “수사가 윗선으로 번질 거라 예고하고 있다. 그 윗선은 어디까지냐. 문 전 대통령까지 안 간다는 보장이 있냐”고 말했다.

지난 3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 위원장이 거론한 사건은 이명박(MB) 정부 초기에 있었다. 50%대 지지율로 시작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4월 MBC PD수첩 보도 이후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지지율이 반 토막 났다. 이후 그해 7월 노 전 대통령 측이 각종 국가 자료를 통째로 봉하마을로 옮겨갔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관련 수사가 진행되면서 국면이 바뀌었다.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도 일부 반등했다.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된 뒤 23일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우 위원장이 지금 상황을 그때와 비교하며 ‘MB 시즌 2’라는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새로 들어선 정부가 가장 쉽게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은 과거 정권의 잘못에 대한 단죄”라며 “그러나 모든 일에는 반작용이 있는 법. 쉽게 쌓아 올린 지지율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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