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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학 규제를 혁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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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헝가리 출신으로 하버드대 명예교수였던 고(故) 야노스 코르나이(János Kornai)는 사회주의 경제체제 분야의 최고 석학이었다. 중앙계획경제에서는 권력이 정부로 과잉 집중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물자 부족이 심각해지고 기술발전이 정체된다고 그는 분석했다. 정부가 목표 생산량을 달성하도록 기업을 압박하니 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물자 획득에만 관심이 있을 뿐 혁신은 엄두도 못 낸다는 의미다. 그가 50대 중반이란 나이에 조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던 이유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를 방문 연구했을 때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고등연구소에서 연구비를 주면서 언제 연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는 의무는 물론 연구계약서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소액의 연구비를 감사받을 걱정으로 온갖 규정에 맞추어 쓰느라 연구하기 어려웠던 사회주의 헝가리에서의 경험과 대비되었다. 학자를 신뢰하고 마음껏 연구하도록 도와주는 미국이 부러웠던 차에 하버드대가 초빙을 제의하니 마음이 움직였다.

한국은 인재를 불러들이고 있을까. 불행히도 그 반대다. 외국 대학소속 교수가 최근 서울대에 방학 동안 객원연구원으로 오려고 했다가 포기했다. 공공기관 규정에 따라 12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학부와 대학원의 졸업증명서뿐 아니라 성범죄 경력조회 동의서, 성평등 교육 수료증까지 요구했다. 미국에서 교수로 임용될 때도 이력서 하나로 충분했다며 이런 규제를 안고 사는 한국 교수의 인내심에 존경을 표했다. 잘 알려진 외국 대학의 교수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만은 한국은 예외 없는 ‘평등 공화국’이며 항상 과거를 탈탈 털어 서류를 내야 하는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다. 교수가 된 이후에도 규정에 따라 해마다 인권·성평등 교육을 새로 받아야 하고 연구재단의 연구비를 받으려면 연구윤리 교육을 수강해야 한다. 이 교육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없다.

3년간 출석부 제출하라는 감사
12가지 서류 내야 연구원 임용
권력 과잉 집중되는 국가주의는
대학 죽이고 기업 역동성 허물어

교육부는 작년 하반기 서울대에 대한 종합감사를 진행하면서 교수들에게 지난 3년 동안 가르친 모든 교과목의 출석부 제출을 요청했다. 그리고 3분의 1 이상을 결석한 학생에게 F 학점을 주지 않은 사유가 무엇인지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교수는 이 요청을 받고 자괴감을 느꼈다. 한국에서 교수는 수업 시간마다 출석을 점검하고 출석부를 3년 동안 모아둬야 하며 학점을 줄 때도 감사를 의식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감사가 대학교육의 핵심인 창의와 비판적 사고를 가로막는다는 사실이다. 국가주의가 판치고 정치인과 관료가 온갖 규정을 만들고 이를 무기로 득세하는 나라는 혁신을 할 수 없다. 혁신이 없으면 장기적으론 망한다. 그런데 한국이 이 길로 가고 있다.

역대 국회와 정부는 결과적으로 소득주도성장보다 더 허황한 규제주도성장을 추진했다. 사건이 터지면 이를 막겠다며 국회와 정부는 법과 규정부터 만든다. 온갖 규제를 열심히 만드는 이들 덕분에 행정 수요가 늘어나니 공무원과 직원은 아무리 뽑아도 모자란다. 특히 지난 정부는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민간부문의 일자리가 줄어들자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 마치 경제가 괜찮은 듯 보이려 했다. 이런 수준의 정책결정자가 공정과 효율을 조화시키는 최적의 방법을 고민이나 할까. 거기다 의정활동을 법안 발의 수로 평가하니 국회는 법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 되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규제는 대학을 망치며 기업을 옥죄고 사회를 질식시킨다. 코르나이 교수가 사회주의 붕괴 원인으로 지목한 권력의 과잉 집중과 그 폐단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주의는 규제와 감시의 최고봉이었다. 개인과 기관,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했다. 1990년대 초에 필자가 러시아에 체류할 때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는 깨알 같은 거주 규정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거주지도 이럴진대 기관과 기업에 대한 규제는 오죽했으랴. 모든 병원 출입구에는 특정 소독제를 뿌린 특정 양탄자를 깔아야 한다는 규제도 있었다. 그 소독제와 양탄자가 생산되지 않는 데도 법은 없어지지 않았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기업의 모든 지출을 건별로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과 규정을 더 많이 만들고 통제를 강화할수록 이를 회피하기 위해 부패가 늘어난다. 오죽하면 이런 사회에서는 뇌물이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했을까. 더욱이 정부를 정점으로 위계적인 질서가 생겨나면서 개인과 기업은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이런 사회에서 창의적 사고와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주의 혁명 후 70년이 지난 1987년에도 소련의 생산성은 미국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스탈린의 망령이 한국 대학을 배회하고 있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 환경의 복잡성 지수를 만드는 TMF 그룹에 따르면 한국은 2021년 기업 환경이 복잡한 순으로 세계 11위를 기록됐다. 12위가 중국이며 대만은 32위였다. 이대로 가면 대학은 죽고 기업은 역동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많은 희생으로 쟁취한 자유와 민주의 대한민국을 스탈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국가주의에 빼앗길 수는 없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