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최빈도 죽음, 존엄한 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최빈도 죽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쳐 가는, 나도 예외 아닌 죽음의 모습을 뜻한다. 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교수의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전하는 우리나라 최빈도 죽음은 이렇다. 기대수명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인은 66~83세까지 17년, 삶의 5분의 1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살다 말년에는 요양시설과 종합병원 응급실ㆍ중환자실을 오가다 그 쳇바퀴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는다. 4명 중 3명이 병원에서, 그것도 주로 중환자실이나 처치실에서 사망했다. 병원에 임종실이 따로 없고, 1인실은 너무 비싸서다. ‘병원 임종’은 죽음을 인간적 마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의학적 사건으로 다룬다.
2020년 기준 암 사망자의 호스피스 완화 의료기관 이용률은 23%로, 영국(95%)ㆍ미국(50.7%)은 물론 대만(30%)보다 낮았다. 사망 직전 1년의 의료비가 평생 쓴 의료비를 웃돌기도 한다. 제 의지와 무관하게 주렁주렁 기계장치를 달고 콧줄로 영양 공급을 받으며 최대한 서서히 죽어가는 게 ‘최빈도 죽음’이다. 사지가 묶이기도 한다. 자기결정권이나 존엄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경제적 파탄이나 ‘간병 살인’에 이르는 비극적 뉴스도 종종 들려온다. 박 교수는 “회복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늦추는 연명치료가 삶과 죽음 사이에 걸쳐 있는 다양한 임상 증후군, 즉 현대 의학 기술의 비극을 양산한다”고 썼다. 환자의 행복보다 의학의 능력 과시를 앞세운 의료 집착이 때로는 비극적 연명치료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안락사 소재의 영화 '미 비포 유'(2016).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청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한다.

안락사 소재의 영화 '미 비포 유'(2016).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청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한다.

지난주 국내 최초로 일명 ‘조력존엄사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원할 경우 담당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칠 수 있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약물 등을 투입하는 적극적ㆍ직접적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 법안 발의 다음 날 70대 회원들로 구성된 ‘노년 유니온ㆍ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은 안락사법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지난해 서울대 윤영호 교수팀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6.3%가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에 찬성했다. 세계적으로 의사조력자살 혹은 직접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ㆍ네덜란드ㆍ벨기에ㆍ스페인ㆍ룩셈부르크ㆍ캐나다ㆍ미국(10개 주)ㆍ호주ㆍ뉴질랜드ㆍ콜롬비아 등이다. 모두 뜨거운 논쟁을 거쳤다.
물론 반대도 만만치 않다. 종교계의 반대나 시기상조론이다. 생명 경시, 남용을 우려한다. 가뜩이나 최고 자살률 국가다.  “준비 안 된 안락사는 못 가진 사람들의 원치 않은 결정을 초래해 사회적 타살이 될 수 있다”(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는 경고도 나온다. 그러나 법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고 죽음의 ‘질’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논쟁적인 사안인 만큼 터부시돼 온 죽음에 대해 더 많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통상 아직은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형태를 안락사라고 구분짓는데, 존엄사ㆍ안락사 등 나라마다 혼용돼 쓰이는 개념을 정리할 필요도 있다. 전문가들은 임종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보완과 절차의 간소화도 촉구한다.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며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쓴 사람이 지난해 100만 명을 넘어섰으나 법의 내용과 절차가 의료진조차 쉽게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해 현장 적용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다. 호스피스 서비스의 적극적인 확대 또한 중요하다.
얼마 전 배우 알랭 들롱의 안락사 결정 소식이 알려지자 한 지인은 버킷리스트 1호에 존엄한 죽음을 올렸다. 좋은 죽음이 좋은 삶의 완성이라면서다. “때가 왔을 때 행복하게는 아니어도 만족해하며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작가 스티븐 킹의 말이다. 결코 존엄하지 않은 최빈도 죽음의 풍경을 바꾸는 것, 그건 초고령화 사회를 맞는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국회 '조력존엄사법' 첫 발의 #논란 여지 많지만 죽음에 대한 #성숙한 논의 시작하는 계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