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서버용량 증설한다며 이재명 시장 시절 이메일 삭제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2년만의 정권 교체 이뤄진 성남시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이재명 의원, 은수미 전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시장직을 장악해온 경기 성남시에 국민의힘 신상진 후보가 12년 만에 시장직을 탈환했다. 신 당선인은 다음 달 1일 취임을 앞두고 지난 13일 ‘시정 정상화 특별위원회’ 등 5개 분과 44명 위원으로 구성된 시장직 인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인수위는 두 전임 시장의 12년 재임 기간에 이뤄진 대장동·백현동·고등동 특혜 개발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과 관련해 169건의 자료 제출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인수위가 추적 중인 의혹들을 들여다봤다.

인수위, 비리의혹 결재라인 추적중
산하기관 알박기 인사도 집중 추궁
‘2층의 정진상’ 없애려 시장실 이동
정책 실명제로 행정 투명화 추진

# 3년 지난 이메일 모두 삭제 지시

지난 13일 민선8기 성남시장직 인수위원회인 ‘공정과 혁신 위원회’를 출범시킨 신상진 성남시장 당선인(오른쪽에서 일곱째)과 인수위원들이 성남시 역사박물관에서 인수위 현판식을 했다. [사진 성남시]

지난 13일 민선8기 성남시장직 인수위원회인 ‘공정과 혁신 위원회’를 출범시킨 신상진 성남시장 당선인(오른쪽에서 일곱째)과 인수위원들이 성남시 역사박물관에서 인수위 현판식을 했다. [사진 성남시]

인수위는 성남시가 이재명·은수미 시장 시절 이메일 체계를 변경하고, 3년 지난 이메일은 죄다 삭제한 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수위가 제출하라고 요구한 문서들의 추출이 “쉽지 않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성남시 공무원들이 털어놨기 때문이다.

인수위에 따르면, 성남시는 이재명 시장 시절인 2016년 9월 23일 공무원 개개인의 메일 용량을 300MB에서 500MB로 늘리는 한편 3년 지난 메일은 삭제하도록 결정했다. 이후 성남시는 2016년 10월 4일부터 매달 3년 지난 자료들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6·1 지방선거에서 신상진 후보가 당선된 이후인 지난 8일에도 성남시는 3년 전 자료들을 삭제했다. 놀란 신 당선인 측이 즉각 삭제 중단을 지시했는데도 이재명 시장이 재직한 2010~2018년 성남시 내부에서 유통된 이메일은 모두 사라진 상황”이라고 했다.

또 은수미 시장이 재직하던 2020년12월31일 성남시는 성남시(온메일)와 행안부(온나라 메일)의 2가지 계정으로 운영돼온  시 메일 체제를 변경해, 행안부(온나라) 메일만 쓰도록 결정했다. 이로 인해 기존 성남시 계정에서 작성된 메일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지자체가 서버가 찼다는 이유로 이메일 체제를 바꾸거나 기존 메일을 삭제하는 건 고유의 권한”이라며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2014년~2018년 경기지사를 지낸 남경필 전 지사는 “불법은 아니라지만, 지자체가 서버 용량 부족을 이유로 이메일을 삭제한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라며 “경기지사 재직 시절 도청의 이메일을 지운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다른 지자체장들도 나랑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경기남부경찰청은 백현동 개발 의혹과 관련해 성남시를 압수 수색을 하면서 2015년 1월 1일~2017년 2월 28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정진상 정책비서관 등 21명이 주고받은 내부 이메일 내역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담당 부서인 정보통신과 간부는 “3년 지난 이메일은 삭제돼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경찰이 확보한 이메일은 전무했다.

정택진 인수위 대변인은 “성남시는 서버가 찼다는 걸 삭제 조치의 이유로 들지만, 서버 용량을 늘리면 해결될 문제”라며 “비리 의혹 연루 자료가 나올까 봐 서버 용량을 핑계로 이메일을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간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2020년 이후 성남시 정보통신과를 10차례 수색했는데 은수미 시장이 성남시 서현 도서관에 특정 인물들을 부정 채용한 의혹과 관련한 수색이 대부분이고 백현동 관련 압수 수색은 16일이 처음”이라며 “백현동 의혹이 중앙일보 보도로 드러난 시점이 지난해 5월인데 관련 압수 수색은 지난주에야 처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남시에 따르면 삭제된 메일들은 포렌식이 가능하게끔 지워졌다고 하니 경찰이 추가 수사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편 성남시가 2016년 9월 23일 단행한 이메일 삭제 조치의 결재 라인도 논란이 되고 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소식통은 “성남시는 문제의 조치를 결재한 문서를 제출하라는 인수위의 요구를 받자 처음에는 결재 라인에 주무관과 담당 팀장만 적힌 문서를  줬다”며 “팀장급까지만 결재 라인이 표시된 문서를 수상히 여긴 인수위가 추궁하자 성남시는 담당 과장과 국장이 결재 라인에 추가된 문서를 다시 줬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최종 문서를 보니 담당 국장이 전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메일 삭제와 서버 용량 증설이라는 중요한 사업에 대해 이재명 시장이 아닌 국장이 전결했고, 기본적인 분석이나 예산 소요 계획도 보이지 않아 의혹”이라고 했다. 그는 “게다가 전결자로 적시된 국장은 이후 성남시를 퇴직한 뒤 이재명 경기 지사 시절 경기도 산하기관 간부로 채용된 것도 ‘보은 인사’ 논란을 불렀다”고 덧붙였다.

# 지방선거 보름 전 ‘알박기 인사’ 논란

16일 백현동 개발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성남시를 압수수색 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백현동 개발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성남시를 압수수색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30일 퇴임하는 은수미 성남시장은 3월 성남의료원의 이중의 원장을 재선임(임기 3년)했다. 6·1 지방선거를 보름 앞둔 5월 16일엔 박철현 행정부원장을 임용했다. 같은 달 다른 이사 6명도 임명했다. 두세달 뒤면 퇴임할 시장이 시 산하기관 중 두 번째로 큰 의료원의 이사진 10명 중 임기 만료를 앞둔 8명의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인수위가 “차기 시장을 무시한 알박기 인사”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인수위는 특히 박철현 부원장의 경우 은수미 시장 시절 분당구청장 등을 지낸 이력을 들어 은 시장의 ‘자기 사람 챙기기’ 인사의 전형으로 의심하고 있다.

신상진 성남시장 당선인의 전언이다. “인수위가 성남의료원 수뇌부를 불러 알박기 인사 의혹을 추궁했다. 이중의 의료원장에게 ‘박철현 부원장을 임명한 이가 누구냐’고 따졌다. 그러자 이 원장은 ‘내가 임명장을 줬다’고 했다고 했다.그러나 인수위측이 ‘원장이 인사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혼자 부원장을 임명하느냐. 말 똑바로 하라’고 추궁하자 박철현 행정부원장이 ‘실은 (은수미) 시장님이 (나를)임명한 게 맞다. 임명장은 원장님이 줬지만 실질적인 임명권자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중의 원장은 입을 닫았다. 은수미 시장을 감싸려고 ‘내가 임명장을 줬다’고 했다가 당사자가 진실을 실토하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이재명시장 땐 ‘2층 뜻입니다’는 말 유행

신상진 당선인은 “7월 1일 취임하는 즉시 성남시청사 2층에 있는 시장실을 4층으로 옮기고 2층은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재명 시장 시절 성남시는 ‘시민에 가까이 간다’는 명목으로 9층에 있던 시장실을 2층으로 옮겼다. 그러나 시민들의 방문이나 집단항의가 늘어나자 은수미 시장 시절 게이트를 만들어 시장실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취임하는 즉시 문제의 게이트를 없애고 2층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한편 공무원들만 이용할 수 있었던 4층의 피트니스 센터도 개방하고, 브리핑룸을 신설해 언론과 자주 소통하겠다”고 했다.

신 당선인은 시장실 이전에 대해 “이는 ‘2층의 뜻입니다’라면 안 되는 일이 없었던 전임 시장 시절 권력의 전횡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신 당선인의 이어지는 주장이다.

“이재명 시장 시절엔 ‘2층의 정진상’이란 말이 유행했다. 시청의 현안은 물론 분당·중원·수정 등 성남시 3개 구의 인허가 사안들까지 정진상 비서관 등 이 전 시장 측근들이 쥐락펴락했다고 해 나돈 말이다. 일정 액수 이상의 사업들은 구청 아닌 성남시청이 다뤘다고 한다. 이렇게  ‘2층 권력’이 시정을 장악하니 국장·과장 등 정식 결재 라인 간부들은 실권이 없어 기강이 엉망이었다. 또 성남 청소년재단·문화재단 등 시 산하기관에도 시장 측근들이 낙하산으로 기관장에 임명되고 실무 간부직도 시장 측근들이 차지해 산하기관을 지휘하는 시청의 담당 간부들을 건너뛰고 시장실에 직보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시장이 되면 이런 ‘2층 권력’을 뿌리 뽑고 정식 결재 라인 간부들의 권한을 되살리는 한편 정책 실명제와 결정 과정 공개로 복마전 같았던 성남시 행정을 정상화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