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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주도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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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백일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백일현 산업팀 차장

백일현 산업팀 차장

“립서비스죠.”

지난 16일 정부가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중 일부 내용에 대한 재계 인사 A의 평가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사실 법인세만 봐도 최고세율(현 25%)을 22%로 인하하겠다지만 방법이 없잖습니까. 법 개정 사항인데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인) 현 국회 상황에서는 쉽지 않죠. 정부와 기업이 한 몸이라는 메시지도 민간 주도 성장을 강조하려다 나온 덕담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가 ‘립서비스’로 꼽은 메시지는 더 있었다. 대통령이 그날 이어진 비공개 토론에서 “저녁 시간이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많이 비어 있으니 기업인들이 연락을 많이 달라. 도시락 같이 먹으면서 경제 문제를 같이 의논하겠다”고 한 발언이다.

지난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수십 년간 경험했지 않습니까. 독대라도 하면 특혜 시비나 사면 운운 소리가 나오거든요. 만약 위(정부)에서 부탁이라도 하면 거절도 못 하고요. 정권이 바뀌면 족쇄도 되니 꼭 전해야 할 아주 아쉬운 소리가 있지 않는 한 만남을 꺼릴 겁니다.”

물론 A도 규제를 완화해 투자·고용을 활성화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민주성(민간 주도 성장)’ 메시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일부 내용의 현실 가능성에 대한 그의 냉소적인 태도는 정부가 선언한다고 민간 주도 성장이 되는 건 아님을 보여주는 방증 같기도 했다.

실제 민간 주도 성장은 쉽지 않다. 최근 기업들이 과연 실현 가능할까 싶은 대규모 채용·투자 계획을 경쟁하듯 발표한 모습만 봐도 그렇다. 정부 눈치 보기는 기업이 한국 사회에서 터득한 오랜 습관이다. 대통령이 정부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2030 부산엑스포 유치에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서는 모습도 자연스럽지만은 않다. 물가·금리·환율 등 경제에 ‘퍼펙트 스톰(여러 악재가 겹친 복합적 위기)’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라서다. 대기업 일부는 ‘자발적으로’ 부산엑스포 전담 조직을 꾸렸다고 하지만, 재계 일각에선 엑스포 유치 활동비로 수십억 모금을 계획 중이란 말도 나온다.

게다가 마침 21일엔 윤석열 정부 첫 검찰 정기 인사가 논의됐다. 혹여나 검찰 사정권에 들어갈까 덜덜 떠는 기업이 꽤 많다. 불법을 저지른 기업은 법에 따른 엄정한 제재를 받아야 하겠지만, 기업의 불안감은 대통령이 말한 법치나 시스템에 의한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의구심에서 온다.

이처럼 재계가 ‘정부와 기업이 한 몸’이라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민간 주도 성장’ 선언 정도가 아니다. 기업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훈장질하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