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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 더 짙어진 이창용의 빅스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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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물가설명회에서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강정현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물가설명회에서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강정현 기자

물가의 ‘거침없는 하이킥’이 꺾이기 전까지는 한국은행도 긴축의 키를 돌리지 않을 전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1일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물가의 ‘피크 아웃(정점 통과)’을 확인할 때까지는 현재 연 1.75% 수준인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물가 상승 압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국내 소비자물가 오름세는 지난달 전망경로를 상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수준인 4.7%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담았다.

지난달 한은이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의 3.1%에서 4.5%로 상향 조정한 뒤 한 달 만에 예상치를 더 높여 잡은 것이다.

물가 상승 전망치를 다시 끌어 올린 건 국제 원유와 곡물 가격의 오름세다. 한은은 지난 5월 경제전망 때 원유 수입가격을 배럴당 102달러 수준으로 놓고 올해 물가상승률을 전망했다. 그런데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 선까지 뛰어오른 상태다. 이 총재는 “국내의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특히 한은은 ‘밥상 물가’ 오름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곡물 등 국제 식량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며 애그플레이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국제 식량가격을 2020년 1월(=100)을 기준으로 지수화하면, 지난달 식량 가격은 154까지 치솟았다. 특히 곡물가격은 172로 상승 폭이 더 가파르다.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지고 있다. 이 총재는 “국제 식량 가격 상승에 따른 애그플레이션 현상은 하방 경직적이고 지속성이 높아 그 영향이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에너지와 식료품의 경우 경제 주체의 체감도가 높아 기대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밝혔다.

물가 오름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한은은 올해 2·3분기 이내에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찍은 뒤 완만하게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해왔다. 다만 미 연방준비제도(Fed)도 물가 정점 예측에 실패했듯, 물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워낙 크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폭과 속도로 쏠린다. Fed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으로 한은도 7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라는 예측이 커지고 있다. 7월 금통위 전 발표되는 6월 CPI 상승률이 6%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도 사상 첫 0.5%포인트 인상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다만 이 총재는 “빅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물가 상승이 경기에 미칠 영향과 환율, 가계 이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금통위원들과 적절하게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해 이 총재는 “미국의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금리 차가 굉장히 크게 되면 환율 (상승)이나 자본 유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환율과 자본유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리 차 자체에 매달리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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