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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지휘 명문화…인사·징계권도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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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 견제 방안’을 검토해 온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가 최종 권고안을 내놨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지휘하고 인사·징계·감찰에 관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침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권고안에 우려를 표명하며 범사회적 협의체를 통한 논의를 요구했다.

21일 자문위가 공개한 ‘경찰의 민주적 관리·운영 강화 방안’에는 “행안부 장관이 소속 청장에 대한 지휘를 구체화하기 위해 경찰·소방청장의 지휘에 관한 규칙(부령)을 제정·운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청법상 법무부 장관이 검사 및 총장을 지휘·감독하도록 규정된 것처럼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일각 “시행령 추진, 법과 충돌할 수도”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경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찰권 견제 권고안’을 21일 발표했다. 이날 오전 김창룡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경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찰권 견제 권고안’을 21일 발표했다. 이날 오전 김창룡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자문위는 31년 만에 부활할 것으로 관측됐던 ‘경찰국’과 관련해서는 “(행안부 장관의 경찰 업무를 보좌할 조직이 따로 없기 때문에) 행안부 내에 경찰 지원조직을 신설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이를 놓고 행안부 안팎에선 “경찰에 대한 통제권이 강화되면서 행안부 장관의 업무 범위에서 제외됐던 치안 사무를 추가하는 것과 동일한 성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권고안에는 행안부 장관의 경찰 인사·징계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행안부에 경찰청장·국가수사본부장, 그 밖의 경찰 고위직 인사를 제청할 후보추천위원회 또는 제청자문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자문위는 또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 고위직에 대한 징계요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아울러 자문위는 “경찰 수사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수사심사관의 소속을 상급기관으로 변경하고, 수사심의위원회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또 향후 이 같은 내용을 깊이 있게 논의하고 법제화할 대통령 직속 경찰제도발전위원회(가칭)를 설치할 것도 권고했다.

이날 자문위의 권고안 브리핑에선 “경찰 통제의 주체가 행안부 장관이 되는 것이 적절한가” “과거 행안부 장관 사무에서 치안을 제외한 경찰청법 제정 취지와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 등의 우려 섞인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황정근(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자문위 공동위원장은 “작년부터 경찰의 권한이 달라진 게 경찰제도 개선을 논의하게 된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1991년 내무부 외청으로 독립될 당시엔 수사권이 없었던 경찰이 지난해부터 폭넓은 자체 수사권을 갖게 됐고, 이를 견제할 기존 경찰위원회의 역할도 미흡했다는 설명이다. 황 위원장은 “권한이 늘어날수록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돼야 하고, 권한 행사에 대한 책임도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위원장은 ‘경찰 수사의 중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기관의 독립과 업무의 독립을 혼재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며 “수사권의 독립은 법에 따라 보장돼 있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일각에선 행안부가 권고안에 명시된 사항들을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 행안부령으로 추진하는 것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상위법 개정 없이 시행령만 바꿀 경우 결국 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며 “예를 들어 경찰청장 인사의 시작은 국가경찰위원회 동의가 시작점인데 법에 없는 후보추천위원회가 인사를 추천하게 되면 견제가 아닌 절차적 하자 및 기관 간 알력으로 사회적 비용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경찰에 대한 민주적 관리·운영을 강화해야 한다는 자문위의 기본 전제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경찰을 둘러싼 그간의 역사적 교훈과 현행 경찰법 정신에 비춰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한다”는 밝혔다. 입장문은 이날 오후 김창룡 경찰청장 주재로 전국 경찰지휘부 화상회의를 개최한 뒤 나왔다.

김창룡 경찰청장 주재 지휘부 회의

경찰청은 “경찰권 통제와 관련해서 정부 조직에 의한 행정적 통제보다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바탕이 되어 왔다”며 “이번 권고안은 이러한 역사적 발전과정에 역행하며, 민주성·중립성·책임성이라는 경찰제도의 기본정신 또한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사회 각계 전문가를 비롯해 정책 수요자인 국민, 정책 실행자인 현장 경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범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충분한 의견 수렴과 폭넓은 논의를 이어갈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또 자문위 권고안을 일일이 반박했다.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 조직’ 신설을 권고한 데 대해 경찰청은 “법률 개정 없이 행안부에 경찰 조직을 신설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휘규칙 제정과 관련해서도 “경찰법에는 행안부 장관의 지휘·감독권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 고위직 인사 제청 실질화 방침에 대해선 “경찰의 독립성, 중립성 보장 및 청장의 치안 책임 강화라는 ‘청장 추천권’의 법적 취지와 (장관) 제청권과의 조화·균형 등을 고려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브리핑을 열고 “검찰 공화국을 더욱 공고화하기 위해 경찰을 발아래 두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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