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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주발사체 개발, 옛 소련권 국가들 도움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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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누리호 발사 성공을 기원하는 시민들. [뉴스1]

누리호 발사 성공을 기원하는 시민들. [뉴스1]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수장고에는 붉은색 돌이 보관돼 있다. 2007년 러시아 연방우주청 장관이 한·러 회담을 위해 나로우주센터에 왔을 때 가져온 기념품이다. 러시아 우주 개발이 이뤄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의 가가린 발사대 아래에서 캐왔다고 한다.

20일 기립

20일 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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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지난 70년 가까이 ‘한·미 동맹’의 긴밀한 관계였지만, 정작 한국의 우주로켓 개발에 도움을 준 곳은 러시아 등 과거 미국과 냉전을 벌였던 옛소련권 국가였다. 미국은 1987년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MTCR)를 창설한 이래 미사일 기술과 부품의 국가 간 거래를 막아 왔다. 동맹국인 한국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옛 소련권 국가들이 한국에 우주 기술을 전수해 줄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말 공산권 붕괴와 98년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등 대혼란의 시기가 있어 가능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현재 ‘피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한국은 서방과 함께 우크라이나 편에 서 있다는 건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21일 산화제·연료 충전 및 기립장치 분리

21일 산화제·연료 충전 및 기립장치 분리

한국의 우주를 목표로 한 로켓 개발은 93년 발사된 KSR-I(Korean Sounding Rocket-I)이 그 시작이다. 1단짜리 고체연료를 쓴 KSR-1은 최고 고도 39㎞에 77㎞ 거리를 190초 동안 날았다.

97년 발사에 성공한 KSR-2는 2단이었지만, 역시 고체로켓이었다. KSR-2는 151㎞ 고도까지 올라 국내 최초로 우주 X선을 관측했다. 하지만 고체로켓은 사거리를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 때문에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우주로켓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21일 오후 3시59분59.9초 누리호 발사

21일 오후 3시59분59.9초 누리호 발사

2002년 발사에 성공한 KSR-3은 한국 최초의 액체연료 추진 과학로켓이었다. 1단 액체엔진을 달고 고도 43㎞, 거리 80㎞를 날았다. 이때부터 러시아와 우주기술 협력이 시작됐다. 경제가 어려워진 러시아는 국가 핵심 기술을 일부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조광래 항우연 전 원장은 “러시아 켈디시연구소를 찾아 액체로켓 설계 기술을 자문받고, 또 완성한 13t 엔진을 러시아 니히마시연구소까지 가지고 가서 연소실험도 했다”고 회상했다. KSR-3 다음이 2013년 1월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KSLV-1) 나로호다. 1단엔 러시아산 추력 180t의 최신형 안가라 엔진을, 2단엔 고체 킥모터를 달았다. 우선 우주 선진국의 로켓엔진을 이용해 발사체를 쏘아올려 노하우를 쌓는 편을 택했다.

우주로 날아오른 누리호

우주로 날아오른 누리호

1단 로켓 분리

1단 로켓 분리

대신 항우연은 나로호와 별도로 30t급 액체로켓 개발에 나섰다. 엔진의 핵심인 터보펌프와 연소실까지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하나의 완성된 엔진으로 개발할 수는 없었다. 김진한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2007년엔 터보펌프를 시험하기 위해 러시아 니히마시연구소에 가져갔다가 폭발사고로 현지의 시험설비까지 타버리는 일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21일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의 75t 로켓엔진은 러시아의 액체로켓을 사실상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역공학)한 결과다. 헬륨탱크는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했다. 조 전 원장은 “짧은 기간 안에 완성한 것은 항우연 연구원들의 땀의 결과이긴 하지만 러시아 우주기술 기여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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