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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발사 성공, 우리 힘으로 우주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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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 하늘이 열렸다.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개발된 최초의 우주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21일 지구 상공 700㎞ 궤도에 위성을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1t 이상 실용위성을 실어 우주로 올린 세계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21일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오른 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는 아침부터 햇볕이 내리쬐었다.

지난 17일 누리호 2차 발사 날짜를 재결정하기 위한 발사관리위원회가 열릴 때만 해도 가장 큰 변수로 꼽히던 게 당일 날씨였다. 걱정이 무색하듯 이날 발사대 부근 바람도 잔잔하고 낙뢰 위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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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날씨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으니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누리호 발사 10분 전인 오후 3시50분부터 발사자동운용(PLO)이 시작돼 사람의 조작 없이도 발사 준비작업이 이뤄졌다. 발사 준비를 마치고 75t 엔진 4개가 클러스터링된 1단 엔진의 추력이 300t에 도달하면 고정장치 해제 명령이 떨어진다.

누리호, 발사 945초 만에 목표 완수 … 연구진 일제히 환호

21일 누리호가 목표고도 700㎞ 지점에서 위성분리까지 마치자 대전 항공우주연구원 위성종합관제실에서 연구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누리호가 목표고도 700㎞ 지점에서 위성분리까지 마치자 대전 항공우주연구원 위성종합관제실에서 연구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리호는 하늘로 솟아오르고 발사대의 엄빌리칼 장비(발사체에 추진제·가스 등을 공급하기 위한 지상 구조물)가 자동으로 분리된다.

오후 4시, 화염과 연기를 내뿜으며 누리호가 이륙했다. 발사대에서 3㎞가량 떨어진 나로우주센터에서도 누리호가 하늘로 올라가며 내는 굉음이 들렸다. 발사 123초(2분3초) 만에 고도 62㎞에 도달했고, 나로우주센터에서 맨눈으로 바라봐도 1단 로켓이 분리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때 현장에 있는 취재진은 “됐다”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227초(3분47초)뒤에는 고도 202㎞까지 올랐다. 성능검증위성과 위성모사체를 감싼 페어링이 분리되는 시점이다. 발사 후 269초(4분29초)에는 273㎞ 상공에서 2단이 분리됐다.

하지만 당초 예상보다 분리 시간도 조금 빠르고, 분리 고도도 예상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이뤄졌다. 순간 현장엔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오늘 발사가 예상보다 조금씩 빠르게 진행됐는데, 전체적인 최종 목표에 성공해 정상적으로 발사가 진행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누리호 발사 성공을 보고받은 뒤 엄지를 치켜드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날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누리호 발사 성공을 보고받은 뒤 엄지를 치켜드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차 발사의 또 다른 관문인 성능검증위성을 700㎞ 궤도에 올려놓는 작업도 순조로웠다. 누리호가 고도를 올라갈 때마다 나로우주센터 통제동에서는 실시간 발사 현황을 방송으로 알렸다.

그리고 4시13분. 누리호가 “목표 궤도에 투입한 것이 확인됐다”는 공지 방송이 프레스센터에 나왔다. 통제동에서 누리호를 지켜보는 연구진의 박수와 환호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발사 875초(14분35초) 만에 성능검증위성이 우주 궤도로 항해를 시작했다. 국내 기술로 만든 진짜 위성이 우주 궤도에 놓인 순간이다.

성능검증위성은 궤도를 돌며 발사 만 7일 뒤부터 큐브위성을 이틀에 하나씩 사출(분리)한다. 발사 후 945초(15분45초)에는 마지막 관문인 1.3t 위성모사체가 700㎞ 고도에서 분리됐다. 결국 누리호는 최종 목표를 완수했다.

이날 오후 5시10분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이 직접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을 발표합니다”라고 공식적으로 국민에게 발사 성공을 알렸다. 이 장관은 “우리가 원할 때 다른 나라의 발사장과 발사체를 빌리지 않고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큰 의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고정환 본부장은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라 조마조마했다”면서 “오늘 발사가 잘 된 것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누리호 발사 상황을 생중계로 확인하고 발사 후 관련 내용을 원격으로 보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연구진에게 “여러분의 노고에 국민을 대표해 치하한다”는 격려와 함께 “항공우주청을 설치해 우주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주발사체는 미사일과 비슷한 구조와 원리로 움직인다. 우주발사체 제작·발사 기술을 확보한 국가들이 안보·전략적 측면에서 자국의 발사체 기술 이전 및 물자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이유다.

누리호 개발은 2010년 3월부터 현재까지 총 1조9572억원을 들여 진행됐다. 항우연뿐 아니라 300여 개 민간기업이 개발에 참여했다. 3단형 발사체를 제작해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발사를 마쳤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국산 발사체 발사 성공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서는 곤란하다”며 “앞으로는 상용화할 수 있는 재사용 엔진 기술이나 3차원(3D) 프린팅으로 부품을 빠른 속도로 만들어 쓰는 등 해외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우주 기술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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