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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태규가 고발한다

적법수사 뭉개다 "보복" 타령...민주당 인사는 무조건 노터치?

중앙일보

입력

김태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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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은 검경의 전 정권 수사를 보복 수사라고 주장했다. 배경은 이재명 전 경기지사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경기도청을 압수수색하는 모습. 그래픽=김은교 기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은 검경의 전 정권 수사를 보복 수사라고 주장했다. 배경은 이재명 전 경기지사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경기도청을 압수수색하는 모습. 그래픽=김은교 기자

보통 사람의 삶과는 거리가 먼데 누구나 쉽게 일상에서 듣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수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수사의 정확한 뜻이나 그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수사는 간단히 말해 범죄 혐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경찰관과 검사가 증거를 수집해 범인을 확정하면 검찰이 기소한다. 형사적 절차가 수사로 시작할뿐더러 수사가 없으면 형사재판도 없다. 국가는 수사를 통해 객관적 진실을 밝혀 그것이 재판에서 입증되도록 노력하는데,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생명·신체·자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수사는 국민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공권력을 동원하므로, 그 과정에서 경찰관과 검사는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수사는 필요할 때만 실시돼야 한다는 필요성의 원칙,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만 사용돼야 한다는 비례의 원칙이 적절한 공권력 행사의 준거가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고통과 손해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수사 필요성이 분명한데도 무시하고 가만히 있으면 직무유기다. 다시 말해 필요 이상으로 과해서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어도, 거꾸로 아무 잘못 없이 다치거나 재산을 잃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무시할 정도로 소홀해서도 안 되는 지극히 가치 중립적 절차다. 수사 본연의 가치는 당파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적폐 청산한다며 불온한 낙인 찍더니  

그런데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여 수사를 오염시키는 경우를 최근 자주 본다. 인간이란 자고로 자기 처지에서 세상을 보게 마련이라 피해자는 늘 "세상에 무슨 이런 물러터진 법이 있느냐"고 한탄하고, 피의자는 "수사로 생사람을 잡는다"고 고함친다. 여기까지는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볼멘소리를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수사에 보복·적폐·정치와 같은 수식을 붙여 가치 중립적이어야 할 수사를 오염시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자신과 관련한 수사에 대해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이재명 의원의 페이스북 글. [페이스북 캡처]

자신과 관련한 수사에 대해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이재명 의원의 페이스북 글. [페이스북 캡처]

수사란 법률이 정하는 죄를 조사하는 것인데, 형사법 어디에도 규정되지 않은 '적폐'를 수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직전 문재인 정권이 즐겨 쓰던 적폐 청산이라는 용어는 반동 척결과 이미지가 겹쳐 보여 섬뜩하기도 하다. 마치 어떤 범죄가 적폐로 평가되면 더 가혹하게 처벌해도 되는 것처럼 빗장을 풀어버리는 악효과도 낸다. 당연히 과잉 수사를 부를 위험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 전 정권 내내 우리 귓전에 익숙하던 적폐 수사란 용어는 그 자체로 불온하다.

반대 입장에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수사 상황을 과장하고 핍박받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정당한 법 집행까지 보복 수사 프레임을 만들어 방어 논리를 펴는 것 역시 부당하다. 수사 과정상 어떤 개별 처분이 과하면 그 구체적 잘못을 지적하고 합당하게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시정을 요구하면 된다. 불법 뒷조사, 적법하지 않은 수색이나 체포, 먼지털기식 별건 수사가 있었다면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 고소나 고발도 고려할 수 있다. 이런 권리 대신 막연히 보복 수사 운운하는 건 사법기관에 대한 모욕이자 정당한 법 집행에 대한 공격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계양을)은 "21세기 대명천지에 또다시 사법 정치 살인을 획책하자는 거냐, 정치 보복 사법 살인 기도를 중단하라"고 했다. 우상호 비대위원장도 "대장동 탈탈 털다가 안 나오니 백현동으로 넘어간다"는 식으로 정치 보복 프레임을 엮었다. 발언 수위는 높지만 어떤 수사가 무슨 잘못이라는 건지 아무 구체적 지적은 없다. 그저 수사 대상이 전 정권 인사라는 점을 들어 보복 수사라고 하니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대장동 수사 꼭 하라던 이재명의 "보복" 주장 

지난 정권 때 수차례의 좌천 인사 등으로 핍박받았던 윤석열 대통령 측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존재 자체가 보복 수사라 주장하는 이가 있다. 법무부 장관은 법으로 개별 사건 지휘할 수 없고, 한 장관 스스로도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법무부 소속 외청인 검찰청이 수사하는 걸 "한 장관이 보복 수사한다"고 말하면 실체를 무시한 억지다. 그런 논리라면 행안부 소속 외청인 경찰청이 진행하는 이재명 의원 부부의 경기도청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이나,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관련 의혹은 무슨 구실로 보복 수사라 주장할 것인가. 보복 수사라는 프레임으로 수사를 피하거나 수사 동력을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나, 이처럼 앞뒤 없이 막무가내로 우기면 재판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장동·백현동 의혹 등은 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부터 상당한 혐의가 드러나 있었다. 혐의 있는 곳에 수사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대선 당시엔 이재명 의원 스스로 특검을 해서라도 대장동 의혹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제 대뜸 보복 수사라 주장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수사 대상자가 야당 정치인이면 그냥 넘어가라는 것인가. 이제 국민은 그런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 진행되는 굵직한 전 정권 수사들은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다. 혐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하면 된다. 만약 억지 기소가 이뤄지면 3심에 걸친 법원의 판단으로 걸러질 것이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집권 마지막 순간까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을 통과시키며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도록 수사 기구를 재편했다. 사법부는 여전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다. 사법 장치를 전부 자신들 구미에 맞게 만들어 두고는 무엇이 두려워 수사 착수 단계부터 보복 수사라고 호들갑을 떠는가. 짜놓은 판이 유리한데, 잘못한 것이 없다면 오히려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나.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지난 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성남FC 구단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후원금 불법 모금 및 유용 의혹은 2018년에 제기됐으나 본격적인 수사는 최근에 시작됐다. [뉴시스]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지난 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성남FC 구단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후원금 불법 모금 및 유용 의혹은 2018년에 제기됐으나 본격적인 수사는 최근에 시작됐다. [뉴시스]

급물살? 막았던 수사하니 일이 많은 것 

정권이 바뀌니 수사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전 정권 시절에 수사를 뭉갰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수사 인력의 한계나 사안의 복잡성 등으로 때론 수사가 늦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제약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를 지연시키는 건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처럼 검찰총장 발목을 꺾으면서까지 자신들에게 불리한 수사를 방해한 정권이 민주화 이후에 또 있었나 싶다. 억지로 막아 둔 물을 정상적으로 흘려보내기 시작하니 강물 수위가 갑자기 높아진 것처럼 보이는 거다.

적폐 수사건 보복 수사건 모두 수사라는 사법 기능에 정치적 수식을 덧칠한 비틀린 표현이다. 수사기관은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일하면 된다. 그렇게 법의 본뜻만 쫓아가는 게 정치적 오염으로부터 공정한 수사를 지켜내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