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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화물열차 막은 리투아니아…100㎞ '수왈키갭'에 긴장 고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발트해의 소국 리투아니아가 자국 영토를 경유해 러시아 서부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주(州)로 가는 화물 열차에 제동을 걸자 러시아가 즉각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러시아와 리투아니아의 마찰이 확대될 경우 칼리닌그라드로 통하는 국경지대 '수왈키 갭(Suwalki gap)'에 군사 긴장이 드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 "리투아니아, 칼리닌그라드행 화물 제한에 대응" 경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열차가 지난 3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를 통과하고 있다. 빌뉴스 철도역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참상이 담긴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열차가 지난 3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를 통과하고 있다. 빌뉴스 철도역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참상이 담긴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AFP=연합뉴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2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주재 리투아니아 대사 대리를 초치했다면서 "리투아니아를 통한 칼리닌그라드주와 다른 러시아 영토 사이의 화물 운송이 조만간 완전하게 복원되지 않으면, 러시아는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한 행동을 취할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전례가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리투아니아가 모든 것을 위반하고 있으니 당장 해지하라"고 반발했다.

앞서 리투아니아 철도 당국은 지난 17일 칼리닌그라드주 철도 당국에 18일 0시부터 유럽연합(EU) 제재 대상 상품의 리투아니아 경유 운송 중단을 통보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운송 제한 품목은 석탄·철강·건설자재·금속·콘크리트·첨단공학 제품 등으로 전체 리투아니아 경유 화물의 최대 50%가 영향 받게 됐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육로로 직접 연결되지 않은 역외영토다. 북쪽과 동쪽으로 EU 회원국인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도 EU 회원국인 폴란드에 막혀 있다. 매달 기차 100여대가 러시아 본토~벨라루스 민스크~리투아니아 빌뉴스의 철로를 통해 물자를 공급해왔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리투아니아 매체 LRT에 따르면 리투아니아가 2000년대 초 EU 가입을 추진하면서 칼리닌그라드 고립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러시아와 EU는 간소화된 환승 시스템을 적용하는 화물 운송 협정을 맺고 지난 2003년부터 현재까지 해당 루트를 이용해 왔다. 그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EU 제재의 칼날이 칼리닌그라드까지 향하게 됐다.

가브리엘리우스 란즈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20일 "우리가 단독으로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번 조처는 EU 집행위원회와의 협의에 따라 EU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철도 당국은 "제재에 의해 운송이 제한되지 않는 화물 운송은 계속 보장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제재가 계속될 경우 다음 달 10일에는 시멘트·알코올, 오는 8월 10일에는 석탄·고체 연료 등의 열차 운송도 막히게 된다고 LRT가 전했다.

리투아니아 경제학자 마리우스 두브니코바스는 "철도 운송 제한으로 칼리닌그라드가 완전히 봉쇄되는 것은 아니다. 칼리닌그라드는 바다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배로도 물자 운송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안톤 알리하노프 칼리닌그라드 주지사도 대체 운송 통로 중 하나가 해상이라고 전했다.

칼리닌그라드 닿아있는 국경 '수왈키 갭' 긴장 고조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리투아니아-폴란드 등이 맞닿아 있는 국경지대 수왈키 갭. 폴란드 영토에서 바라본 국경 지대 모습이다. 왼쪽 녹색 울타리 너머가 칼리닌그라드고, 오른쪽 철조망 너머가 리투아니아 영토다. 위키피디아 캡처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리투아니아-폴란드 등이 맞닿아 있는 국경지대 수왈키 갭. 폴란드 영토에서 바라본 국경 지대 모습이다. 왼쪽 녹색 울타리 너머가 칼리닌그라드고, 오른쪽 철조망 너머가 리투아니아 영토다. 위키피디아 캡처

LRT는 러시아가 리투아니아에 살벌한 경고를 보내면서 수왈키 갭 공포가 시작되고 있다고 전했다. 수왈키 갭은 각각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의 약 100㎞ 길이 국경지대를 일컫는다. 양쪽 끝이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와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닿아있다.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나토가 폴란드 국경 도시 이름을 따 수왈키 갭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민간인이 거의 없고 숲과 작은 농장 등이 있는 완만한 지형이라서 기갑전에 유리한 곳이라고 평가받는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국경지대를 수왈키 갭이라고 부른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국경지대를 수왈키 갭이라고 부른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나토 가입국(폴란드, 리투아니아)과 러시아 영토와 친러 국가(벨라루스) 사이에 있는 수왈키 갭.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나토 가입국(폴란드, 리투아니아)과 러시아 영토와 친러 국가(벨라루스) 사이에 있는 수왈키 갭.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하자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전쟁이 확대될 경우 러시아군이 수왈키 갭에 진격해 벨라루스와 칼리닌그라드를 잇는 육지 회랑을 이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 국영 TV에서 러시아군이 칼리닌그라드로 향하는 육로 통로를 만들어 리투아니아를 우회하는 방안에 관해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고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이 20일 전했다.

이에 따르면 2017년과 2021년에 이미 러시아와 벨라루스 합동훈련에서 수왈키 갭 회랑 확보를 위한 훈련이 이뤄졌다고 한다. 러시아가 수왈키 갭을 침공하면 나토 가입국인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과 폴란드가 서로 차단되기 때문에 수왈키 갭은 나토의 '아킬레스건'이라 불린다.

폴리티코는 "수왈키 갭은 나토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지만 러시아가 실제로 침공하면 나토가 인구가 거의 없는 수왈키 갭을 구하자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해 발트해 지역의 나토 주둔 병력을 증강하길 원하고 있다.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이 같은 안이 결정될 거라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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