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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직격탄 맞았는데...적자봤으니 성과급 반납하라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장에서]

 최상대 기재부 2차관(가운데)이 20일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주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상대 기재부 2차관(가운데)이 20일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주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탓에 항공편은 다 발이 묶인 데다 정부 지시로 면세점 등의 임대료까지 대폭 깎아줬는데 이제 와서 적자 봤으니 성과급 반납하라는 게 말이 되나요?"

 21일 인천공항의 A 임원은 기획재정부의 '2021년 공기업 경영평가결과'를 두고 이렇게 토로했다. 앞서 20일 기재부는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낸 11개 공기업을 발표하면서 기관장과 감사, 상임이사 성과급의 자율반납을 권고했다. 현장에선 말만 자율일 뿐 강제로 이해한다.

 여기엔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코레일, SR(수서고속철도) 등 교통 관련 공기업 4곳이 포함됐다. 적자를 낸 만큼 경영진이 스스로 책임지라는 의미로 평소라면 수긍할 만 하다. 또 평가 결과가 나오면 낮은 평가를 받은 곳에서 불만이 나오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해는 2020년에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항공과 철도업계가 유례없는 직격탄을 맞은 고난의 시간이었다. 인천공항에선 2020년 4월부터 코로나 방역을 위해 시행된 야간운항금지가 이어진 데다 슬롯(시간당 최대 이착륙 횟수)도 제한돼 항공편 운항이 코로나 이전의 10%대에 그쳤다.

코로나 탓에 여행객의 발길이 거의 끊겼던 인천공항 출국장. [뉴스1]

코로나 탓에 여행객의 발길이 거의 끊겼던 인천공항 출국장. [뉴스1]

 여기에 정부 요구에 따라 면세점과 식당 등 상업시설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임대료도 대폭 깎아줘다. A 임원은 "지난해 적자가 7500억원이었는데 임대료 감면액이 1조원이었다"며 "임대료 감면정책만 없었다면 2500억원 흑자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전후 사정을 다 무시하고 경영진에게 적자 책임을 묻는 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는 올 연말까지 임대료 감면정책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김포공항 등 14개 지방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 역시 국제선은 거의 다 중단된 데다 면세점 등 공항 입주업체의 임대료를 감면해주느라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항공 못지않게 철도의 피해도 상당했다. 코레일과 SR은 코로나로 인해 승객이 한때 평소의 20~30% 수준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방역을 위해 대목인 설과 추석 연휴에 오히려 열차 좌석을 절반만 팔았다. 이 때문에 코레일은 지난해 1조 가까운 적자를 기록해야 했다.

코로나 탓에 승객이 급갑해 한산한 모습이었던 지난해 서울역. [중앙일보

코로나 탓에 승객이 급갑해 한산한 모습이었던 지난해 서울역. [중앙일보

 기재부는 "2020년에 이어 지난해도 코로나19로 인해 공공기관의 경영실적이 영향을 감안해 관련 실적변동 등에 미친 코로나19의 영향을 합리적으로 보정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코레일의 간부는 "승객은 대폭 줄고, 그렇다고 요금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적자를 피할 방법이 어디 있느냐"며 "기재부와 평가단은 묘책이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항변했다.

 일반적인 보정 방식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SR 관계자는 "현실 상황이 제대로 반영 안 된 평가 같아서 상당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공항업계 관계자는 "기재부가 경영평가를 공기업의 군기를 잡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적자 공기업 관련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상식 밖의 처사"라고 꼬집었다.

 공기업이 본래의 설립 목적에 맞게 합리적으로 운영되는지를 매년 평가해 잘못된 점을 바로 잡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잣대가 비현실적이거나, 특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해당 공기업의 사기만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기재부와 평가단이 다시 한번돌아봐야 할 대목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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