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팩플] 약사회 10년 반대한 '화상투약기’…과기부, 스타트업 손 들어줬다

중앙일보

입력

대한약사회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앞에서 열린 약 자판기 저지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약사회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앞에서 열린 약 자판기 저지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원격으로 약을 제조하는 화상투약기, 일명 ‘약 자판기’ 논쟁이 전환점을 맞았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20일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열어 조건부로 해당 기술의 실증특례(시범 운영)를 결정했다. 해당 기술이 개발된 지 10여년 만이다. 그동안 화상투약기 도입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대한약사회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무슨일이야

과기정통부는 이날 오후 열린 제22차 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서 총 13건의 스타트업 기술에 대해 규제 샌드박스 지정 여부를 심의 의결했다. 안건 중 하나로 스타트업 쓰리알코리아의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 판매기’ 기술을 실증특례 사업으로 지정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가운데)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 LW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제22차 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가운데)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 LW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제22차 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게 왜 중요해

화상투약기는 낡은 규제 혁파를 강조한 윤석열 정부를 시험대에 올렸다. 이날 열린 심의위원회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과기정통부가 주관하는 첫 규제 관련 회의였다. 심의 안건에 오른 ‘화상투약기실증특례’는 기술 기업(쓰리알코리아)의 시장 진입을 대한약사회가 강력히 반대하는 상황이다. 심의 전날인 19일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약사 1000여명이 모여 화상투약기 기술의 규제 샌드박스 지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심의 당일에도 회의 장소 인근에서 반대 시위를 이어갔다. 현재 대한약사회는 약배달 및 처방약 선택 서비스를 들고나온 또 다른 스타트업(닥터나우)의 기술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앞서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과 대한변호사협회, 세무·회계 플랫폼 삼쩜삼과 세무사협회에서 벌어진 스타트업과 전문직 간의 갈등이 약국 업무로 번진 모양새다.

화상투약기가 뭔데?

논란은 약사인 박인술 대표가 운영하는 쓰리알코리아가 지난 2012년 화상투약기를 개발하며 시작됐다. 화상투약기는 소비자가 약국이 문 닫는 시간에 자판기에서 약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일반 자판기처럼 소비자가 원하는 약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투약기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비대면으로 약사와 상담한 뒤 구매하도록 설계됐다.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약사가 지난 2020년 화상투약기를 소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약사가 지난 2020년 화상투약기를 소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10년 걸린 시범운영 : 기술은 개발했지만 약국에 화상투약기를 설치·운영하는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보건복지부와 법제처 등에서 약사법 위반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화상투약기 도입을 위한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건복지부가 정부 입법으로 발의했으나 기한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쓰리알코리아는 지난 2019년 규제샌드박스실증특례를 신청해 시범 운영을 시도했지만, 안건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회사는 지난해 8월 과기정통부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부작위위법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낸지 10개월만인 이날 과기정통부가 해당 기술의 실증특례를 허가했다.

규제샌드박스란?

 규제샌드박스 운영 절차. [규제샌드박스 홈페이지 캡처]

규제샌드박스 운영 절차. [규제샌드박스 홈페이지 캡처]

규제샌드박스는 사업자가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규제로 인해 출시할 수 없었던 상품을 실증특례(시범운영)와 임시허가 등의 방법으로 일단 시장에 내놓고, 문제가 있으면 사후 규제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모래놀이터(샌드박스)에서 안전하게 놀듯 시장에서 규제 두려움 없이 신기술을 적용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2019년 특별법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약사는 왜 반발?

●“지역약국 무너진다”: 대한약사회는 화상투약기가 “환자 대면 상담 원칙을 위반하며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약 자판기’”라고 주장한다. 의약품 오ㆍ투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늘어나고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도 커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화상투약기의 무분별한 사용이 지역약국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쓰리알코리아는 어떤 입장?

● “편의점보단 약사와 원격 상담” : 쓰리알코리아 측은 일단 화상투약기를 시장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한 뒤 우려가 제기된 부분을 개선해가자는 입장이다.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늦은 밤 약국이 문을 닫아 편의점에서 약을 사야 할 상황이라면, 원격으로라도 약사와 상담하고 약을 받아 가는 편이 낫지 않느냐”며 “10년간 관련 기술을 개발해도 쓸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제라도 기회가 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약사회 주장과 달리 화상투약기는 약사를 해치는 기술이 아닌, 약사를 위한 기술”이라며 “국민 의료비 부담도 줄이고 약사와 관계자들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 조건이 더 중요 : 이번 실증특례는 조건부 승인이다. 특정 조건 하에서 기술 서비스를 운영해야 하는 만큼 향후 사업성 등에서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이번 실증특례 조건은 지난 2019년 화상투약기 관련 규제샌드박스 회의에서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조건부 실증특례 안과 유사하다고 알려졌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화상투약기로 판매 가능한 일반의약품 범위를 해열·진통·소염제 등 11개 약효군으로 한정했다. 또 비대면 상담을 할 약사가 화상투약기를 설치할 약국 개설자와 고용 계약을 체결해야 하며, 약국 개설자가 아닌 자에게 고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 약사 1명이 여러 대 관리? : 약사 1명당 관리 가능한 화상투약기 수도 관건이다. 대한약사회 측은 규제샌드박스가 통과되더라도 ‘1약사1투약기’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쓰리알코리아 측은 “기술적으로 약사 1명이 20~30개의 화상투약기를 관리할 수 있다”며 “화상투약기 운영 시간은 심야와 공휴일인데 이때 (기기 1대에) 찾아올 환자 10여명을 위해 약사 1명이 10시간 넘게 기다리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배너 클릭 시 구독페이지로 이동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factpl

배너 클릭 시 구독페이지로 이동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factpl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