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 사건을 '월북'으로 판단한 데 대한 유엔의 공식 질의에 문재인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대며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월북은 처벌할 수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 침해 측면에서 제기된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월북 프레임'으로 대응하기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유엔에도 사실상 ‘의도적 월북’ 답변
20일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유엔이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낸 것은 2020년 11월 17일자였다. 이씨가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지 약 두 달 뒤다. 서한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비사법적 약식ㆍ임의처형 보고관 명의로 작성됐고, 정부는 이듬해인 2021년 1월 15일 답변을 보냈다.
당시 유엔은 "한국 정부는 이 씨가 월북했다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현행법에 따라 범죄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정부는 "월북만으로는 엄밀히 범죄가 아니지만,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월북했다면 처벌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는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국가보안법 제6조를 원용한 것이다.
월북이라는 판단 자체를 신중하게 보는 유엔에 대해 정부는 이 씨가 사고 등으로 분계선을 넘어 북측 영해로 표류했을 가능성이 아니라 애초부터 의도를 갖고 북측으로 넘어간 상황을 전제로 답변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 유엔은 "유족은 사건 관련 조사가 월북 증거를 찾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느끼며, 고인이 구명조끼와 부유물을 갖고 있고 숙련된 항해사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자를 월북자로 낙인 찍었다는 점에서 매우 불만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또 "한국 정부는 고인이 상당한 빚을 지고 있었다는 점을 월북의 동기로 내세우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실종이나 사망 사건에선 '왜'와 '어떻게'가 조사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해경은 유족이 제기한 사망 원인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정부가 왜 여러 가능성 중 '월북'이라고 결론지었는지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재발 방지책이 "남북 통신선 재개"
유엔은 또 "이 씨가 북한에 붙잡힌 걸 인지하고 정부는 어떤 구조 노력을 기울였나", "향후 재발방지책은 무엇인가"도 질의했다.
이에 정부는 "사건이 북한 해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실시간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에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먼 해역에서 벌어진 일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군은 다양한 정보 자산으로 파악한 정보를 사후에 조각조각 맞춰볼 수밖에 없었다"면서다. 당시 시신 소각 불빛을 감지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군이 늑장 대응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내세웠던 "조각 첩보 재구성에 시간이 걸렸다"는 논리의 반복이었다.
정부는 이어 재발 방지책과 관련해 남북 간 통신선의 필요성만 여섯 차례 언급했다.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재건해야 한다"거나 "북측에 통신선 재개와 합동 조사를 제안했다"면서다.
유엔은 이 씨의 피살 및 시신 훼손 행위 자체를 심각한 인권 위협으로 인식하는데, 정작 '가해자'인 북한군에 응당하는 책임을 묻는 방안 등에 대한 내용은 없이 '기-승-전-북한과 대화'로 일관한 셈이다.
정부는 또다른 재발 방지책으로 어업지도선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폐쇄회로(CC)TV 등 안전장치 보강, 선원들에게 GPS 위치 추적 장치 배포, 야간 시간 선원 위치 추적 시스템 등을 거론했다. 이 역시 사실상 이 씨의 월북을 전제로 한 행적 추적 등 사후 대응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지적이다.
유엔, 유족 정보 접근 제한도 질책
유엔은 "정부가 이 씨의 월북 여부와 관련한 조사 결과를 유족에게 상세히 공유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비공개 대상 정보)를 첨부하며 "진행 중인 수사 관련 사항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지난해 11월 법원은 국가안보실과 해경을 향해 "유족에게 군 기밀 외 정보를 제공하라"고 판결, 이 씨 사건에 해당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항소하며 판결에 불복했고, 윤석열 정부가 이를 취하했다.
정부는 이어 "해수부ㆍ외교부ㆍ국방부 장관이 유족을 만났으며, 해수부 장관이 위로 편지를 보냈다. 수색선에 유족을 태웠다" 등 조치를 줄줄이 나열했다. 이어 "유족이 원하면 정신 치료를 제공할 것이며, 연금 수령 대상도 될 것"이라며 서한을 끝맺었다.
이처럼 정부의 6쪽짜리 답변서에는 북한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규탄이나 적절한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해 정부가 필요에 따른 선택적 접근을 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성까지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엔 등 국제사회는 보편적이고 예외 없는 인권 기준을 적용하는데, 한국의 경우 대북 정책에 대한 정부의 성향에 따라 인권에 대해 선택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짙다"며 "이는 인권 개선을 위한 온전하고 종합적인 태도가 아니며 국제사회 인권 논의의 초점을 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