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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 외골수 거북이가 변했다…200만 열광 '핵인싸' 된 멜랑숑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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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강력한 좌파 상대가 나왔다."(가디언)

지난 19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자리매김한 좌파 연합 '뉘프(NUPES)'의 장뤼크 멜랑숑(71)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에 대한 평가다. 이날 하원 결선투표 집계 결과 뉘프는 전체 577석 중 131석을 얻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범여권 중도 연합 '앙상블'(245석)의 과반의석을 저지하고 원내 의석수 2위를 차지했다. 멜랑숑 대표는 "전례가 없는 결과다. 마크롱 대통령의 완전한 패배"라면서 "우리가 프랑스의 역사적인 반란과 개혁의 부흥에 새로운 얼굴이 됐다"고 말했다.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가 19일 프랑스 파리의 뉘프 선거 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가 19일 프랑스 파리의 뉘프 선거 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틱톡 팔로어 200만명…젊은 세대에 인기 상승 

멜랑숑 대표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뉘프를 이끌었다. 뉘프는 LFI를 중심으로 사회당·녹색당·프랑스 공산당이 뭉친 좌파 연합이다. 사회당이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동맹이 될 뻔했으나 막판에 극적으로 합류하면서 바람몰이를 했다. 앞서 지난 2017년 하원 총선에선 멜랑숑 대표가 좌파 연합을 단호하게 거부해 LFI는 17석에 그쳤다. 이번에는 고집을 꺾고 좌파를 한데 모았고 자신의 정당 LFI도 뉘프 안에서 72석이나 차지하는 ‘깜짝 결과’를 얻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멜랑숑 본인의 ‘이미지 변신’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올 대선까지 세번째 대권에 도전했던 그는 표를 위해 고리타분한 좌파 이미지를 확 바꿨다. 트레이드마크였던 마오쩌둥 인민복 스타일 재킷 대신 날렵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맸다. 이전에 내세웠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와 EU(유럽연합) 재협상 등 거시적인 담론보다 환경과 생활비 등에 집중하면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 틱톡 계정. 틱톡 캡처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 틱톡 계정. 틱톡 캡처

젊은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소셜미디어(SNS) 세계에서 '핵인싸'로 통한다. 앞서 2017년 대선에서 SNS 활용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올해는 10대들의 놀이터로 꼽히는 틱톡에 매진해 팔로어를 200만명 이상 늘렸다. 거침없는 달변가인 그의 연설 일부만 1분 내외로 편집해 올리는데 감각적인 랩 등으로 배경음악을 사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

외골수 거북이, 두 번 창당 끝에 좌파 리더 우뚝

2016년 마오쩌둥 스타일의 재킷을 입은 장뤼크 멜랑숑 모습. 트위터 캡처

2016년 마오쩌둥 스타일의 재킷을 입은 장뤼크 멜랑숑 모습. 트위터 캡처

멜랑숑 대표는 1951년에 아프리카의 모로코 탕헤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는 우체국 국장이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11세에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다. 프랑슈콩테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교직을 이수했다. 학생 운동에 참여하면서 좌파에 빠졌다. 졸업 후 고교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일하다, 1976년 25세에 사회당에 입당했다. 열렬한 사회당원이었던 그는 1986년 35세에 프랑스 최연소 상원의원이 됐다.

그는 외골수 좌파를 자처하며 ‘아웃사이더’ 행보를 고집했다. 1969년 출범한 프랑스 대표 정당인 사회당이 지나치게 우경화됐다며 2008년 탈당하고 좌파당을 창당하며 급진좌파 정치인이 됐다. 2012년에는 피델 카스트로(쿠바)나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 권력자들에게 매료됐다. 2016년에는 좌파당을 나와 LFI를 세웠다. 그리고 이번에 좌파 연합을 이끌면서 아웃사이더에서 리더가 됐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멜랑숑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면 "총리가 되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과반의석으로 국정운영 주도권을 잡고 마크롱 대통령을 압박해 자신을 총리로 지명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 미치는 결과에 따라 총리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멜랑숑 대표가 암묵적으로 인정했다고 BBC는 전했다.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가 19일 프랑스 파리 선거 본부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멜랑숑 대표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로이터=연합뉴스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가 19일 프랑스 파리 선거 본부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멜랑숑 대표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로이터=연합뉴스

대신 이번 선거 결과를 토대로 정치적 입지가 공고해지면서 또 한 번 대권을 노려볼 기세다. 그는 이날 "한순간도 이 나라를 이끌려는 야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국민이 내 헌신을 원한다면, 숨을 거둘 때까지 대열의 선두에 서겠다"고 했다. 멜랑숑 대표가 2027년 대선에 나온다면 76세가 된다. 앞서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멜랑숑의 득표율은 11%(2012)→19%(2017)→22%(2022)로 계속 상승했다. 특히 올해는 1차 투표 당시 2위로 결선에 오른 극우파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에 불과 1%가량 뒤졌다. 그는 느리지만 자신의 길을 간다며 스스로를 '현명한 거북이(wise turtle)'라고 부른다.

반면 불같은 성격에 설화도 잦다. 폴리티코는 그의 측근을 인용해 "미치광이에 편집증적인 면모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9년 불법 정치자금 조성 혐의로 압수수색을 나온 검사와 경찰관을 밀며 "내가 대표다.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면 안 된다"고 고함을 쳐 기소된 적도 있다.

멜랑숑 대표에게 순풍이 계속 불지는 미지수다. 그가 내놓은 공약이 실현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뉘프는 은퇴연령의 하향(62세→60세), 최저임금 인상(한 달에 1500유로·204만원), 생필품 가격 동결, 기후변화 방지 등을 공약했다. 프랑스24는 "좌파 연합이 나름의 승리를 거뒀지만 이제 동맹이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면서 "사회당과 녹색당이 모든 문제에 대해 LFI를 완전히 지지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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