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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윤석열 외교팀의 아킬레스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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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 5월 말 미국 뉴욕타임스에 묘한 기사가 실렸다. 대중국 관세를 놓고 바이든 외교팀에서 불협화음이 나온다는 거였다. 일부 참모는 “제재 효과가 없는 고관세를 고집하다 물가만 오른다”고 주장한 반면, “내렸다간 중국에 얕보인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는 내용이다.

결론은 봐야겠지만 특정 정책을 두고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도 이게 뉴스인 건 그만큼 바이든 외교팀에 잡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핵심 참모 죄다 한·미 동맹 중시파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위험 커
중대 결정 시 다양한 의견 들어야

왜 그런가. 면면을 보면 안다. 외교 총사령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참모로서 20년 넘게 일했다. ‘워싱턴의 기린아’라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바이든의 부통령 시절 참모였다. 블링컨과 설리번도 서로 막역한 사이다. 워싱턴 정가에서 이 셋을 대통령과 참모 관계가 아닌, 세계관을 공유하는 오랜 친구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역시 바이든의 오랜 지인이다. 그러니 바이든 외교팀에서 이견이 안 나오는 게 당연하다.

도리어 이들이 너무 일사불란하다는 게 미 언론의 걱정이다.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큰 탓이다. 집단사고란 비슷한 이념과 생각에다 응집력까지 높은 그룹의 경우 만장일치를 추진하면서 반대 의견을 듣지 않으려는 경향을 뜻한다. 1961년 케네디 행정부 때 감행됐다 실패한 ‘피그만 침공’이 대표적 케이스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측근들은 ‘매사추세츠 마피아’로 불리던 하버드대 동창이거나 고향 친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별 군사지식이 없는데도 쿠바 난민으로 구성된 게릴라를 침투시키면 카스트로 정권은 쉽게 무너질 것으로 오판했다.

그간 계속된 바이든 행정부의 실책도 집단사고 탓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바이든 외교팀은 아프간 철군이 별문제 없을 걸로 낙관했으며 대러시아 경제 제재로 푸틴 정권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믿었다. 큰 착각이었다.

이렇듯 미국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윤석열 외교팀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 김성한 대통령 국가안보실장, 조태용 주미 대사 등 한국 외교를 짊어진 핵심 인사들은 하나같이 실력파들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정치학 박사인 박 장관은 4선 의원으로 미 워싱턴 조야는 물론 중국·일본에도 인맥이 두텁다. 고려대 교수 출신의 김 실장은 외교부 차관을 역임해 학문적 깊이에다 실무 경험까지 갖춘 보기 드문 실력파다. 정통 외교 관료인 조 대사는 진작부터 장관감으로 꼽히던 에이스로 블링컨 국무장관과 막역하다. 누가 봐도 최상의 드림팀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모두가 한·미 관계를 우선시하는 ‘지미(知美)파’라는 점이다. 여기에 정재호 주중 대사도 미국에서 석·박사를 땄으며, 장호진 주러 대사 역시 북미국 심의관과 북미국장을 지낸 알아주는 미국통이다. 그나마 게이오대에서 박사를 딴 윤덕민 주일 대사조차 석사는 미국에서 했다. 윤석열 외교팀 전체가 한·미 동맹 중시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라인업은 문재인 정권 시절, 한·미 관계는 소홀히 한 채 대북 관계에 올인했던 잘못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하지만 만사 과유불급이다. 이래선 바이든의 대외정책과 한국 외교 간 싱크로율이 100%에 달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때이긴 하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미국 주도의 광범위한 러시아 제재에 나토 회원국 및 캐나다·호주·뉴질랜드 외에 한국·일본만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곱씹어봐야 한다. 대만·싱가포르도 가담했지만 일부에 그쳤다. 반면에 친미 국가로 여겨졌던 인도·사우디아라비아·UAE에다 특수 관계인 이스라엘까지 불참했다. 이런데도 윤석열 정부에선 심각한 논쟁은 없었다고 한다.

어떤 조직이든 중대 결정 앞에선 여러 의견이 쏟아지는 게 마땅하다. 중국 제재를 조율할 때면 한·미 동맹의 중요성만큼이나 수출업자들의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와야 한다. 무릇 다양한 유전형질을 가진 생명체일수록 건강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