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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전작권 전환, 연합 작전능력 확보 때까지 유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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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북한 핵 위협과 전작권

최윤희 전 합참의장

최윤희 전 합참의장

옛날 시골 장터나 정자나무 아래서 어르신들이 장기 두는 모습을 흔히 보곤 했다. 그럴 때면 예외 없이 훈수 두는 사람들의 언쟁이 또 다른 볼거리였다. 장기 두는 사람과 훈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주인정신이다. 후자는 승패에 대한 책임이 없이 재미 삼아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 국가 존망이 걸린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 문제를 놓고 훈수 두는 사람들이 많다.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빨리 받아야 한다고 채근한다.

필자는 합참 의장 시절 내내 전작권 전환 문제를 주요 과제로 검토했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준비 상태를 점검하는 ‘조건에 기초한(Condition Based) 전환’ 개념을 도입했다. 무조건 때가 되면 받아야 하는 ‘시기에 기초한(Time Based) 전환’ 개념에서 큰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당시 아무리 서둘러도 최소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판단이 나왔다. 2025년이면 어느 정도 준비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북한의 핵 개발과 함께 그 시기는 언제가 될지 판단이 어려워졌다.

전작권은 유사시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 과정에 걸친 통제 권한이다. 여기에는 한·미 연합전력의 지휘통제(C4I)체계 구축에서 전쟁 기획, 교육·훈련 등이 망라된다. 이 과정에서 하드웨어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적 요소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단순히 의지만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 확보와 연구개발이 필요하나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일반적인 전력 증강 사업과 달리 사업의 타당성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소프트웨어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하드웨어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전작권 돌려받는 건 군사주권·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북핵 위협 제거하는 일이자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 사안
한국군은 지난 70년간 미군 작전계획에 의존해와
전문가 부족한 한국, 독자적 전쟁 기획력부터 갖춰야

미군, 한국군 연합지휘 능력 불신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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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의 특징인 초장거리(Hyper Distance) 타격, 초파괴력(Hyper Destructibility), 초연결성(Hyper Connectivity)은 갈수록 그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에 전개된 타격 수단을 실시간 통합해 운용하는 미군의 지휘통제체계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합참 의장 시절 한미연합사령부와 미래 연합지휘통제체계 구축 문제를 협의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협상 파트너인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의 전문성에 놀랐다. 대개 한국군 지휘관들은 이 문제를 정보통신분야 전문가에게 맡기나 미군에선 이를 무엇보다 중요한 지휘관의 소양으로 간주해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지휘통제체계는 가지고 있는 힘을 최적의 장소와 시간에 집대성해주는 눈과 귀, 머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합참과 연합사는 이를 위해 연례적으로 연합지휘통제체계 전술 토의를 한다. 온종일 주요 지휘관과 참모들이 모여 열띤 토의와 함께 관련 장비를 시현하며 그 능력을 검증한다. 얄팍한 개념만으로 토의에 임했다가는 망신당하기에 십상이다. 최근 전작권 전환을 앞당기려는 우리의 의도에 대해 미국 측은 미래 연합지휘통제체계의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했다. 우리가 개발한 미래 연합지휘통제체계(AKJCCS)는 보안상 취약해 미군 지휘통제체계(CENTRIX-K)와 연동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사시 한반도에 증원되는 미군 전력에 대한 지휘통제가 불가능하다.

필자의 기억으로 2015년 AKJCCS를 시현했을 때 미군 측은 많이 놀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를 미래 연합지휘통제체계로 활용하자는 우리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그 정도의 체계를 개발한 것은 대단한 성과다. 부족한 부분은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보완하면 된다. 미군의 반대가 단순한 장비 성능상 문제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동맹으로서 또 다른 차원의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더불어 이미 개발된 지휘통제체계가 완벽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우리 주도의 전작권 행사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지휘통제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향후 이 문제는 전작권 전환을 위한 일차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북한은 독자적 핵 공격 능력 보유

6·25전쟁 직후 우리에게는 북한의 재침략에 대비한 아무런 대응 능력이 없었다. 믿고 의지할 것은 유엔군뿐이었다. 유엔군 사령관이 이양된 작전통제권으로 전권을 행사했다. 작전 계획은 물론 전력 운용에서 우리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이렇다 할 무력 수단이 없는 우리로서는 그렇게나마 나라를 지켜야 했다. 1972년 태국군이 철수하며 유엔군에는 미군만 남게 되어 명칭과 역할에 문제가 생겼다. 그런 연유로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가 창설됐고, 유엔사는 정전 관리 임무에 전념하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연합사 조직을 한·미 통합으로 편성해 한국군이 기획 업무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지휘부의 사령관, 참모장, 작전·기획참모부장에는 미군을, 이를 보좌하는 부사령관, 부참모장, 작전·기획참모부 차장에는 한국군을 편성했다. 아울러 전투 지원 성격의 인사, 군수, 통신전자 참모부장도 한국군으로 편성했다. 한마디로 작전기획 같은 핵심 업무는 미군이, 지원 업무는 한국군이 주도하도록 편성했다.

이러한 편성에서 한국군이 작전기획 업무를 주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필자는 『개정 작전계획 5015』를 발간하며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매년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연합훈련계획 역시 미군이 주도한다. 미군은 이를 위해 수십 명의 전문가를 운영하며 2년간에 걸쳐 준비한다. 작전계획은 반드시 연습을 통해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해 보이는 평시 교육훈련에도 이처럼 숙련된 전문가와 체계가 필요하다.

우리 합참에 이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합동전투모의센터(JWSC)를 설립했으나 전문가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군은 6·25전쟁 이후 70년을 이런 체계 속에서 일해 왔다. 그 사이 부지불식간에 장기판의 훈수 두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주도하는 사람과 보좌하는 사람의 역량은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가 커진다.

이제라도 독자적 기획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미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합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쟁기획을 주도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독자적으로 전쟁계획을 수립하고 훈련하며 핵 공격 능력까지 확보했다.

미군 정보 없으면 3축 체계 한계

북한 핵 위협에 대비한 실효적인 대비태세 구축은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이를 위한 ‘3축 체계’인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체계(KMPR)는 미군의 도움이 없이 실현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무리 막강한 타격 능력을 확충하더라도 미군이 제공하는 정보가 없이는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되는 확장억제전략 역시 미국의 핵 공격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한마디로 북한 핵 위협에 대해서는 한·미의 공동 대응이 필수불가결하다.

할 수만 있다면 핵 개발 등 우리의 독자적인 대응 능력 확보가 이상적이나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전작권 전환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미군의 능력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최근 한·미 정상이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 핵 위협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결의한 것은 우리에게 큰 다행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단·축소된 한·미 연합훈련을 다시 과거 수준으로 복귀하겠다는 군 수뇌부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이 기회에 훈련 시나리오에 북한 핵 위협을 현실적 위협으로 상정해 실질적 대책이 강구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같은 전략적 타격 수단에 실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핵 추진 잠수함 확보를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군사주권,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북한 핵 위협에 맞서 국가 존망이 걸린 사활적 문제다. 절대 서두르지 말고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 최근 믿고 의지할 동맹이 없어 이 나라 저 나라에 도움을 호소하는 우크라이나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최강 미국이 우리의 혈맹인 것은 큰 축복이다. 함께 힘을 모아 위기에 대처하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독자적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통수권자의 과감한 결단과 지원이 필요하다. 전작권 환수를 놓고 더는 어쭙잖은 훈수가 없기를 바란다. 진정한 고수는 섣불리 훈수를 두지 않는다.

최윤희 전 합참 의장, 예비역 해군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