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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퍼스트레이디 제도에서 배울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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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선생님인 저는 제 교실에서 그 장면을 몇 번이고 상상했습니다. 매 학기 초 제 학생들에게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지난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전국학부모교사협회(PTA) 125주년 연설에서 총기 규제를 촉구했다.

#지난달 18~23일 바이든 여사는 에콰도르·파나마·코스타리카를 순방했다. 각국 정상과 부인을 만나 함께 장애인 학교와 에이즈 환자 시설 등을 방문하고 대중 연설을 했다. 이달 초 미국이 주최한 미주정상회의를 일부 중남미 국가가 보이콧할 조짐을 보이자 참석을 확정짓기 위한 ‘출장’이었다. 이때 한국·일본을 순방한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외교에 투입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의 달’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의 달’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퍼스트레이디는 독특한 존재다. 헌법에도, 정부 직제에도 존재하지 않는 역할이지만 대통령을 대신하기도 한다.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았지만, 공식 업무를 수행한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부인 마사 워싱턴 여사를 기점으로 퍼스트레이디 역사는 233년이나 된다. 대부분은 비정치적이면서 사회적 함의가 있는 활동에 관여했다. 낸시 레이건의 마약과 전쟁, 바버라 부시의 에이즈 인식 개선, 로라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미셸 오바마의 비만 퇴치 등이다.

법적 근거가 없고, 선출직도 아닌 퍼스트레이디의 활동 기반은 뭘까. 권력 남용에 대한 견제는 어떻게 이뤄질까. 첫째, 모든 공적 활동은 제도권 안에서 다뤄진다. 백악관 이스트윙에 있는 ‘퍼스트레이디실’이 관장한다. 비서실장, 대변인, 홍보국장, 행사비서관 등을 뒀다. 둘째, 퍼스트레이디는 백악관 홈페이지에도 행정부 공식 멤버로 올라 있다. 질 바이든이 살아온 경력을 담은 1002개 단어의 인물 소개를 누구나 볼 수 있다. 셋째, 퍼스트레이디 공식 일정은 사전에 공개된다. 동행자 명단도 배포한다. 백악관 풀(pool)기자단이 취재한다. 행사 시작부터 종료까지 실시간으로 ‘풀 리포트’가 전송된다. 연설은 백악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한다. 한마디로, 대통령과 똑같이 취급한다.

무엇보다 질 바이든 여사는 선거 운동 기간부터 대통령과 한 팀이었다. 부부가 나란히 또는 단독으로 유세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미국 국민은 ‘질과 함께 한 바이든’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 한국 국민은 ‘김건희 여사가 없는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조용한 내조’ 공약은 없어지고 ‘제2부속실 폐지’ 공약만 지키겠다는 건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는 ‘선택적 지각’ 아닌가. 질 바이든처럼 하되 그걸 담은 제도는 거부하는 건 선택지에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