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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123년 역사 품은 철도박물관, 예산없어 유물 복원 엄두 못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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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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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 33.2㎞를 잇는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비록 일본에 의해 건설되긴 했지만, 철도는 도보나 우마차에 의존하던 우리네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꿔준 교통수단이었다.

‘모가’라는 이름의 증기기관차로 첫발을 뗀 우리 철도는 120여년이 흐른 지금 시속 300㎞대의 최첨단 고속열차 운행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철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경기도 의왕에 자리한 ‘철도박물관’이다. 총면적 2만8000여㎡에 실내 전시관과 야외 전시장을 갖춘, 철도 관련으론 국내 최대 규모다. 1만2000점이 넘는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등록문화재도 13점이나 된다.

코레일 운영, 소장품 1만2000점
연 예산 2.5억원뿐, 외국과 큰 차이
대통령 특별동차엔 곰팡이까지
국립박물관 격상 등 발전안 찾아야

철도박물관에 전시 중인 대통령 특별동차와 쌍둥이인 경호용 동차. 도색시기가 달라 색깔이 조금 다르다. 강갑생 기자

철도박물관에 전시 중인 대통령 특별동차와 쌍둥이인 경호용 동차. 도색시기가 달라 색깔이 조금 다르다. 강갑생 기자

철도박물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로부터 조선의 철도운영권을 환수한 지 10주년이 되는 기념으로 용산에 설치했다고 한다. 이후 8·15 광복과 6·25 전쟁 등을 거치며 운영이 중단됐다가 1988년 의왕에 자리를 잡게 됐다. 원래 국립박물관이었으나 2005년 철도 구조개혁으로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출범하면서 코레일 소유의 사립박물관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민간에 운영을 위탁하다 2016년부터 코레일이 직영 중이다.

이곳엔 진귀한 열차부터 다양한 철도 관련 문서와 장비·승차권까지 볼거리가 많다. 바퀴가 웬만한 성인 키보다 큰 파시 5형 증기기관차(1942년 제작), 레일 간격이 762㎜인 협궤를 달리는 혀기 11형 증기기관차(1937년 제작) 등을 빼놓을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이 이용했던 전용열차와 객차도 만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 6명의 정상을 모신 2량짜리 특수차량인 ‘대통령 특별동차’가 대표적이다.

특별동차에 마련된 침실 벽에 커다란 곰팡이 자국(원 안)이 선명하다. 강갑생 기자

특별동차에 마련된 침실 벽에 커다란 곰팡이 자국(원 안)이 선명하다. 강갑생 기자

대통령 전용열차와 경호용 열차가 나란히 전시돼 있는데 겉모습이 쌍둥이처럼 쏙 빼닮았다. 전용열차는 1969년 일본에서 제작됐고, 경호용 열차는 1985년 당시 대우중공업에서 만들었다. 혹시 모를 공격 등을 대비해 구분이 안 되게 외양을 똑같이 했다고 한다.

전용객차는 전용열차가 도입되기 전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1927년 일본이 만든 일등 전망차를 1955년 대통령 전용으로 바꾼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까지 사용했다. 주한유엔군사령관 전용객차와 1972년 수도권전철 1호선 개통 때 운행했던 전동차, 추억의 비둘기호 등도 전시돼 있다.

이렇게만 보면 규모와 수준이 상당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예산 부족 탓에 소장품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기는커녕 현 상태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이용상 우송대 교수도 “한국에서의 철도박물관은 서구에 못지않은 긴 역사를 가졌음에도 충분치 않은 자료의 수집과 보관, 그리고 전시 및 연구 체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올해 박물관 예산은 인건비를 빼고 2억 5600만원에 불과하다. 거의 대부분인 2억원이 야외에 전시 중인 열차의 도색비용이다. 예산이 적다 보니 ‘웃픈’ 상황도 생긴다. 대통령 특별동차와 경호용 열차는 자세히 보면 차체의 색깔이 조금 차이 난다. 배은선 철도박물관장은 “열차 두대를 동시에 도색해야 하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순차적으로 하다 보니 색깔을 맞추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외에 전시 중인 열차는 거의 다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내부 복원이 제대로 안 된 탓이 크다. 대통령 특별동차도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서만 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밖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침실 등엔 커다란 곰팡이 자국이 곳곳에 있고, 지붕 없이 전시돼 누수피해까지 생긴다. 대통령 전용객차의 의자는 커버가 다 해졌고, 커튼 상태도 심각하다.

2000억원을 들여 건립한 일본의 오미야 철도박물관. [중앙포토]

2000억원을 들여 건립한 일본의 오미야 철도박물관. [중앙포토]

외국의 유명 철도박물관과 비교하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영국 요크의 국립철도박물관은 세계 최대 규모로 연간 입장객이 100만명에 육박하며, 운영비 중 70%가량을 정부가 지원해준다. 영국 왕실열차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로 유명하다. 일본에 있는 오미야 철도박물관(사이타마시)은 2000억원 넘는 건설비를 투입해 2007년 개관했다. 1872년 신바시~요코하마 구간을 달린 최초의 열차와 고속열차 신칸센까지 실물차량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각종 시뮬레이터 등 체험거리도 많다.

이 때문에 철도박물관을 경영난을 겪는 코레일에만 전적으로 맡기는 현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철도박물관을 환수해 예전처럼 국립박물관으로 격상시키고 제대로 예산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와 코레일, 그리고 철도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철도박물관을 발전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배 관장은 “우리 역사에서 철도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연구하고 관리해야 할 유물과 차량은 점점 늘어나는데 지금 일부 직원들의 열정 페이로만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고 토로했다. 역사를 제대로 간직하고 살피고 배워야 미래를 준비하고 나아갈 수 있다. 제대로 역사를 보전하려면 보다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철도 역시 마찬가지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