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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까정 산다 카시드만…” 송해공원 추모객 줄이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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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17일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 송해기념관에 방문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김정석 기자

17일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 송해기념관에 방문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김정석 기자

“백 살까정 산다 카시드만 하매 가삤노.(백 살까지 산다 하시더니 벌써 가셨네).”

주말 직전인 17일 오전 대구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옥연지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야산에 묘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묘를 찾아온 사람들 사이에서 한 60대 여성이 이렇게 말을 하자, 주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묘 앞에는 흰 국화 여러 송이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두고 간 오렌지 주스 2개도 눈에 띄었다. 이 묘는 ‘국민MC’로 사람들 마음에 기억되는 고(故) 송해(본명 송복희, 1927~2022) 선생과 그의 부인 석옥이(1934~2018) 여사의 묘소다. 고인의 처가 마을인 기세리 한백산 자락에 마련된 충주 석씨 문중 선산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석 여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송해 선생도 지난 8일 작고하면서 부부가 나란히 영면하게 됐다. 지난 10일 고인의 안장식 때는 이곳에 2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송해 선생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안장식이 치러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묘소 앞은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경남 밀양에서 송해 선생 묘소를 찾아왔다는 이정임(49)씨는 “일요일마다 KBS ‘전국노래자랑’을 즐겨봤었다”며 “송해 선생은 영원히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지킬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나시다니 마치 거짓말 같다”고 말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송해 선생이 34년간 진행한 TV 프로그램이다.

송해공원 인근에는 고(故) 송해·석옥이 부부 묘소가 있다. 김정석 기자

송해공원 인근에는 고(故) 송해·석옥이 부부 묘소가 있다. 김정석 기자

송해 부부 묘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옥연지는 고인에겐 특별한 장소다. 고인은 대구 달성공원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할 때 석 여사와 만나 결혼했다. 실향민인 송해 선생은 수시로 옥포읍에 있는 옥연지를 찾아가 그리움을 달랬다.

1983년에는 옥연지가 보이는 산기슭에 자신의 묫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 때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고향을 떠난 후 제2의 고향으로 여긴 대구, 그 중에서도 옥연지 곁에 몸을 뉘게 됐다.

이런 인연으로 대구 달성군에는 2016년 옥연지 인근에 송해공원이 조성됐다. 2015년 김문오 달성군수가 달성군 옥포읍에 새로 공원을 만드는데, 송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고인이 흔쾌히 승낙해 조성된 공원은 고인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찾는 추모 공간이 됐다.

공원은 데크 둘레길, 백세교(橋), 백세정(亭), 바람개비 쉼터, 전망대, 금동굴, 얼음빙벽, 출렁다리, 조명 분수, 보름달·달토끼 조형물 등 다양한 볼거리로 조성돼 있다. 특히 백세교는 한 번 건너면 100세까지 살고, 두 번 건너면 100세까지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해에는 송해공원에 송해기념관이 건립됐다. 그의 60여 년 방송 활동과 가족사 등을 전시·소개하는 기념관이다. 연면적 711㎡, 부지면적 720㎡에 지상 3층 규모로 들어선 전시실에는 영상물과 고인이 쓰던 물품 등 432점이 전시 중이다. 체험실과 하늘정원·송해카페 등도 갖췄다. 고인이 작고한 후 송해기념관 앞에는 분향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송해기념관을 찾은 이범준(41)씨는 “전국노래자랑을 즐겨 보시던 어머니가 이곳에 와보고 싶다고 하셔서 들렀는데 송해 선생의 인생이 잘 정리돼 있는 것 같아 좋았다”며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을 주고 떠난 고인이 하늘에서도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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