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원 오디션 와서 하이든 소나타 하나, 리스트 메피스토 왈츠 쳤던 초6 때였는데… 어린 나이에 치기에는 어려운 곡인데 잘하네? 몸을 효율적으로 쓸 줄 아네? 하고 인상 깊었죠.”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2004년생,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시작해 예술영재원, 예원학교, 한예종에서 오롯이 ‘한국 피아니스트’로 자라난 임윤찬(18)의 스승인 손민수(46·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임윤찬을 처음 본 순간을 정확히, 그때 친 곡명까지 기억했다. 20일 오전 전화통화에서다. 손 교수는 2017년부터 임윤찬을 지도해왔고, 임윤찬이 지금도 ‘존경하는 음악가’나 ‘영향을 준 아티스트’ 1순위로 꼽는 애틋한 사제지간이다.
손 교수는 “윤찬이는 즉흥적이고 본능적이면서도 절제할 수 있는 밸런스를 갖췄고, 매일 새 곡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라며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고,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모든 장르를 이해하고 잘 연주할 수 있는 큰 스케일의 연주자”라고 임윤찬을 설명했다. 그는 “속에는 그 나이대의 감수성과 타고난 예민함과 섬세함이 가득 차 있지만, 겉으로는 어른스러운 컨트롤이 가능한 특별한 피아니스트”라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정경화 선생님과도 통화했는데, 수많은 콩쿠르를 봤지만 지휘자가 우는 건 이번이 두 번째라고 놀라시더라”며 “나머지 한 번은 반 클라이번 본인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라고도 전했다.
임윤찬의 피아노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함께해온 손 교수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준비 과정도 쭉 지켜봤다. 손 교수는 “반 클라이번은 정말 많은 곡을 준비해야 하는 콩쿠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연주해본 곡을 고심해 골랐다”며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 등 고전부터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스크랴빈 등 현대곡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연주한 곡은 지난 4일 첫 연주부터 17일 마지막 연주까지, 14일간 11곡이었다. 그중 3곡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 1곡은 1시간에 달하는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이었다.
임윤찬은 연주 중 불필요한 움직임이 거의 없다. 몸도 좌우 움직임이 거의 없고, 강렬한 피날레를 치고 나서도 손을 위로 흩뿌리는 동작 없이 거의 바로 손을 아래로 내린다. 파워풀한 멜로디에선 머리를 홱 드는 게 전부다.
콩쿠르 직전까지도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하고, 평소에도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피아노를 친다’는 임윤찬에 대해 “나도 제일 걱정했던 게 체력이었다”고 소개한 손 교수는 “그렇게 좋은 연주를 하고도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완벽주의자다. ‘윤찬아 진짜 자야 해, 나중에 힘 빠질 수도 있어’라고 되풀이 충고해줬는데, 일반적인 의지로는 안 되고 눈앞의 연주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버티는 것 같다”고 했다.
손 교수는 지금의 임윤찬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마디를 꼽는다면 “안단테(andante, 음악의 빠르기말 중 ‘느리게’라는 뜻)”라고 했다. “큰일을 해냈고, 수많은 사람들이 윤찬을 원하겠지만 본인은 남은 삶 동안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전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늘 하던 걸 잊지 않고 나아가면 된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피아니스트는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뒤로 가는 것”이라며 “윤찬이는 이미 스스로 그걸 알고 있다. 아직 너무 어리고,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을 상상해보면 다음 호로비츠가 될 수도 있는 연주자”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