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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가족'에 죽음의 돌팔매…반복되는 동물 학대, 온정주의 때문?

중앙일보

입력

20일 오후 서울 도봉구 방학천. 오리들이 부리로 진흙을 헤집어 벌레를 잡아먹고 있었다. 평화롭기만 한 이곳에서 지난 13일 오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이 돌팔매질을 해 오리가 죽은 것이다. 남성들은 어미 오리 1마리와 새끼 오리 5마리를 향해 약 1m 거리에서 하천에 있는 주먹 크기의 돌을 십수 차례 던졌고 그중 한 마리가 맞아 죽었다는 게 목격자의 증언이다.

서울 도봉구 하천에 사는 오리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 오리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자수를 권유하는 게시물을 인근에 배포해 SNS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해당 게시물은 담당 수사관이 직접 작성해 배포한 게 맞다. 다만 보이스피싱이나 사칭 등의 오해를 너무 많이 받아 현재는 회수했다고 한다. [트위터 캡처]

서울 도봉구 하천에 사는 오리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 오리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자수를 권유하는 게시물을 인근에 배포해 SNS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해당 게시물은 담당 수사관이 직접 작성해 배포한 게 맞다. 다만 보이스피싱이나 사칭 등의 오해를 너무 많이 받아 현재는 회수했다고 한다. [트위터 캡처]

돌팔매에 숨진 시민들의 귀염둥이

문제의 남성들은 범행 직후 검은색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담당 수사관이 자수를 권유하는 안내문을 하천 인근에 배포하면서 사건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오리 사체는 한 중년 여성이 물에서 끄집어냈고 구청에서 수거해갔다고 한다. 조류의 사체는 통상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등을 우려해 검사 센터로 보낸다. 이번에 죽은 오리는 돌에 맞아 즉사한 게 명확했기 때문에 센터로 보내지 않고 구청 직원들이 처리했다고 한다.

서울 도봉구 방학천에 사는 오리 가족. 매년 5월쯤이 되면 어미 오리가 부화한 아기 오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고 한다. 사진은 5월 22일 촬영된 사진 [백씨 제공]

서울 도봉구 방학천에 사는 오리 가족. 매년 5월쯤이 되면 어미 오리가 부화한 아기 오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고 한다. 사진은 5월 22일 촬영된 사진 [백씨 제공]

방학천을 방문한 이들은 방학천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던 오리의 죽음에 안쓰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도봉구에서 20년 거주한 임모(73)씨는 “10년 전 방학천이 복원된 뒤 한 마리 두 마리씩 오리들이 찾아오더니 새끼를 낳았다”며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가지도 않고 이쁘게 생긴 게 참 신통했는데 왜 죽였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주민 백모(30)씨는 “오리 한 쌍이 새끼 10마리를 뒤에 달고 다녔다. 산책할 때마다 오며 가며 사진을 찍곤 했다”고 말 했다.

새끼 오리 돌로 맞히고 던지기 연습도

지난 13일 오후 남성 2명이 돌팔매질을 해 오리를 죽인 후 전동 킥보드를 타고 떠난 장소. 이 모습을 본 인근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최서인 기자.

지난 13일 오후 남성 2명이 돌팔매질을 해 오리를 죽인 후 전동 킥보드를 타고 떠난 장소. 이 모습을 본 인근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최서인 기자.

오리 학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문제의 남성들은 지난 16일에도 방학천에 와 오리 떼를 향해 돌팔매질을 했고 이번에는 새끼 오리가 돌에 맞았다고 한다. 오리는 목이 꺾여 얼굴이 물에 처박혔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보는 눈이 많았지만, 피의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담당 수사관은 “특히 16일에는 주변에 어르신들이 많아서 말리는 분이 한두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돌팔매질을 해서 추가 신고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시민들 제보 이어져…경찰은 도주 경로 추적

도봉구 지역 커뮤니티에는 16일의 범행에 대한 누리꾼의 목격담이 올라왔다. 해당 누리꾼은 “한 할아버지께서 소리를 지르셔서 보니까 돌로 오리를 맞췄더라. 목을 못 가눠서 친구 오리가 살리겠다고 날갯짓하면서 목을 부리로 잡는데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썼다.

지난 17일 피의자들은 사진 우측에 보이는 벽에 표시를 하고 돌을 던져 맞추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최서인 기자

지난 17일 피의자들은 사진 우측에 보이는 벽에 표시를 하고 돌을 던져 맞추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최서인 기자

경찰이 피의자로 지목한 이들은 17일 오후 또다시 방학천에 나타나 벽에다 표시를 하고 돌로 표적을 맞히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를 목격한 인근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으나 달아났다. 도봉서 지능범죄수사팀 담당 수사관은 “막연하게 ‘돌멩이로 오리를 맞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야구 선수가 공을 던지듯이 풀스윙으로 돌을 던졌다”며 “범행이 반복되고 있는 데다 무자비하게 던진 만큼 죽은 오리들이 더 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담당 수사관은 하천을 따라 CCTV를 차례대로 분석하며 피의자들의 도주 경로를 조사하고 있다.

형량 높아졌는데 여전히 약한 처벌

피의자들이 검거되면 경찰은 이들에게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법률에 따르면 ‘때리거나 산채로 태우는 등’의 방식으로 야생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동물보호법상의 처벌 규정과 법정형이 같다.

그러나, 실제 형량은 대부분 벌금형이다. 지난해 ‘고어전문방’으로 불리는 동물 학대 전시 대화방 운영자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3월에는 ‘제2의 고어전문방’이 등장하면서 약한 처벌을 재발 원인으로 지목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오리를 향해 돌팔매질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성들. [트위터 캡처]

오리를 향해 돌팔매질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성들. [트위터 캡처]

최근 유튜브에는 어린 학생들이 ‘털바퀴(털 달린 바퀴벌레)’ 등의 제목으로 고양이를 걷어차고 약을 먹이는 등의 학대 영상을 게시하기도 했다. 조회 수는 수십만 회에 이른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도 ‘제2의 고어전문방’ 등장 당시 지목됐던 동물 학대 채팅방들이 여전히 운영 중이다.

권유림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변호사는 “반복되는 동물 학대 근절을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엄정한 수사와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형량은 강화됐지만, 선고형이 강화되진 않고 있다. 사법 기관에서 판례에 기반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판결이 아니라 선도적인 판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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