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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스타로 키운 방송작가 퍼스트레이디, “대통령 연설, 다 좋은데…”

중앙일보

입력

우크라이나 퍼스트레이디, 올레나 젤렌스카. 2019년 사진이다. 뒤에 보이는 이가 젤렌스키 대통령. 둘은 소꿉친구였다가 코미디언-작가 명콤비로 활약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퍼스트레이디, 올레나 젤렌스카. 2019년 사진이다. 뒤에 보이는 이가 젤렌스키 대통령. 둘은 소꿉친구였다가 코미디언-작가 명콤비로 활약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평범했던 소녀, 올레나는 어린 시절 친구 볼로디미르와 강가에서 노래 부르며 노는 걸 좋아했다. 둘 사이 청소년기의 우정이 어른이 되어 애정으로 변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웠다. 세월은 지나 둘은 부부가 됐고, 우크라이나 대통령궁에 함께 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의 얘기다. 올레나는 결혼 후 남편 성(姓)에 여성형 ‘아(a)’를 붙인 새 이름을 얻었다. 그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게재한 인터뷰 기사에서 “볼로디미르와 함께 하는 삶은 항상 모험으로 가득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전쟁이라는) 이런 모험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미소지었다고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던 시절, 올레나 여사는 작가 역할로 대본을 썼다고 한다. 환상의 복식조였던 셈이다. 그러다 젤렌스키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하고, 지난 2월24일엔 러시아의 침공을 받으며 이들의 인생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전쟁 발발 후 젤렌스키 부부가 서로를 자주 못 보고 있다며 이렇게 전했다. “인터뷰 전, 여사의 더 쾌활한 반쪽(젤렌스키 대통령)이 ‘여기 있다고 들었어’라며 갑자기 들어왔다. 여사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런데 대통령은 기자들이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난 내 와이프를 보고 싶었을 따름인데 갑자기 기자들과의 공식 일정이 되어 버렸군’이라고 말했다. 이후 몇 분 간은 ‘젤렌스키 쇼’가 진행됐다.”

지난해 전쟁과 여성에 대해 연설하는 올레나 여사. EPA=연합뉴스

지난해 전쟁과 여성에 대해 연설하는 올레나 여사. EPA=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은 2월말 전쟁 발발 이후 한ㆍ미를 포함한 전 세계 다수 국가에 연설을 통해 메시지를 전했다. 올레나 여사도 남편을 이런 연설 영상을 통해 봐야 했다. 프로 작가였던 올레나 여사가 평가하는 남편의 연설은 어땠을까.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좋았다”고 운을 뗐으나 바로 이렇게 지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너무 길었어요. 반 정도로 확 줄이면 더 좋겠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의 묘사에 따르면 올레나 여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성격이 사뭇 다르다. 이코노미스트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관심을 즐기고 유쾌하다”며 올레나 여사와 “대조를 이룬다”고 전했다. 공식 연설에도 티셔츠 차림을 즐기는 젤렌스키와 달리 올레나 여사는 이 인터뷰에 푸른색 정장과 하이힐을 격식있게 갖추고 응했다고 한다. 푸른색은 우크라이나 국기의 주요 상징 색이기도 하다.

젤렌스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흰 옷이 올레나 여사, 그와 포옹을 하려는 이가 남편. A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흰 옷이 올레나 여사, 그와 포옹을 하려는 이가 남편. AP=연합뉴스

전쟁이 발발하던 새벽에 대해 올레나 여사는 “이른 시간,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고 남편은 이미 옆방에서 회의 중이었다”며 “불꽃놀이이기를 바랐지만 전쟁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했다. 전쟁이 지금까지 그에게 가르쳐준 건 뭘까. 올레나 여사는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약하디 약한 것인지를 깨닫고 있다”며 “문명이란 얇은 막 같이 쉽게 찢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편만큼 올레나 여사도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분투 중이다. 지난달엔 질 바이든 미국 퍼스트레이디와 함께 만나 반전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여러 행사에서 반전 및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퍼스트레이디들의 만남. 질 바이든(오른쪽) 여사가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올레나 여사를 만나는 장면이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우크라이나 퍼스트레이디들의 만남. 질 바이든(오른쪽) 여사가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올레나 여사를 만나는 장면이다. AP=연합뉴스

그렇다고 이 결혼을 후회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와이프의 유머 감각이 나보다 탁월하다’고 강조했다”며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진 않았지만 우정을 천천히 애정으로 변화시켰고 8년간의 연애 후 결혼한 단단한 관계”라고 전했다. 젤렌스키를 대통령 선거로 이끈 건 그가 대통령으로 연기한 코미디가 주요 계기였는데, 이 극의 대본을 쓴 것도 올레나 여사라고 한다. 올레나 여사는 이코노미스트에 “그냥 열심히, 정직히만 하면 (정치에서도) 될 줄 알았다”며 “생각보다 모든 게 너무 복잡하고,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고 털어놓았다.

부부의 애정은 굳건해 보인다. 지난 2월14일, 전쟁 발발 열흘 전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부부의 애정은 굳건해 보인다. 지난 2월14일, 전쟁 발발 열흘 전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올레나 여사의 요즘 가장 큰 걱정은 아들이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아들이 직업 군인이 되겠다고 한다”며 우려를 털어놓았다. 10대 후반인 아들과 딸 한 명씩을 슬하에 둔 올레나 여사는 “아들이 18세로 성인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평화가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아들이 군인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 지금 내게 엄마로선 가장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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