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인데 동시에 절제 한다…건반 위 '카멜레온' 18세 임윤찬

중앙일보

입력 2022.06.20 12:50

업데이트 2022.06.20 17:38

"영재원 오디션 와서 하이든 소나타 하나, 리스트 메피스토 왈츠 쳤던 초6 때였는데… 어린 나이에 치기에는 어려운 곡인데 잘하네? 몸을 효율적으로 쓸 줄 아네? 하고 인상 깊었죠."

2004년생,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시작해 예술영재원, 예원학교, 한예종에서 오롯이 ‘한국 피아니스트’로 자라난 임윤찬(18)의 스승인 손민수(46)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임윤찬을 처음 본 순간을 정확히, 그때 친 곡명까지 기억했다. 20일 오전 전화통화에서다. 손 교수는 2017년부터 임윤찬을 지도해왔고, 임윤찬이 지금도 '존경하는 음악가'나 '영향을 준 아티스트' 1순위로 꼽는 애틋한 사제지간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인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올해 60년을 맞은 이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다. 임윤찬은 1위에 해당하는 금메달 이외에도 2개 부문 특별상(청중상·신작 최고연주상)을 수상했다. [사진 반 클라이번 재단]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인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올해 60년을 맞은 이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다. 임윤찬은 1위에 해당하는 금메달 이외에도 2개 부문 특별상(청중상·신작 최고연주상)을 수상했다. [사진 반 클라이번 재단]

"즉흥적, 본능적인데 절제도 되는 밸런스… 카멜레온처럼 변신"

왼쪽부터 반 클라이번 콩쿠르 2등 수상자 안네 기누쉰(러시아), 1등을 차지한 임윤찬(한국), 3위 드미트로 코니(우크라이나). [AP=연합뉴스]

왼쪽부터 반 클라이번 콩쿠르 2등 수상자 안네 기누쉰(러시아), 1등을 차지한 임윤찬(한국), 3위 드미트로 코니(우크라이나). [AP=연합뉴스]

손 교수는 “윤찬이는 즉흥적이고 본능적이면서도 절제할 수 있는 밸런스를 갖췄고, 매일 새 곡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라며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고,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모든 장르를 이해하고 잘 연주할 수 있는 큰 스케일의 연주자”라고 임윤찬을 설명했다. 그는 "속에는 그 나이대의 감수성과 타고난 예민함과 섬세함이 가득 차 있지만, 겉으로는 어른스러운 컨트롤이 가능한 특별한 피아니스트"라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정경화 선생님과도 통화했는데, 수많은 콩쿠르를 봤지만 지휘자가 우는 건 이번이 두 번째라고 놀라시더라"며 "나머지 한 번은 반 클라이번 본인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라고도 전했다.

14일간 11곡 '극한 스케줄'… 자신 있는 곡 + 좋아하는 곡 담았다

12일 세미파이널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22번을 연주하는 임윤찬. [사진 반클라이번 재단, AP=연합뉴스]

12일 세미파이널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22번을 연주하는 임윤찬. [사진 반클라이번 재단, AP=연합뉴스]

임윤찬의 피아노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함께해온 손 교수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준비 과정도 쭉 지켜봤다. 손 교수는 “반 클라이번은 정말 많은 곡을 준비해야 하는 콩쿠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연주해본 곡을 고심해 골랐다”며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 등 고전부터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스크랴빈 등 현대곡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전 세계 388명의 피아니스트 중 예선을 통과한 30명이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 모여 17일간 4단계의 경쟁 끝에 우승자가 정해진다. 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연주한 곡은 지난 4일 첫 연주부터 17일 마지막 연주까지, 14일간 11곡이었다. 그중 3곡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 1곡은 1시간에 달하는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이었다.

쿼터파이널의 바흐는 2019년 윤이상 국제콩쿠르, 베토벤 바리에이션과 푸가는 2021 금호 스페셜 콘서트, 세미파이널의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22번은 2021년 교향악 축제,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은 지난해 5개 도시 투어를 했던 곡이다. 17일 콩쿠르 전체의 마지막 순서로 연주했던 콘체르토 두 곡은 각각 올해 초(베토벤 3번), 지난해 말(라흐마니노프 3번) 연주해 본 곡이다. 여기에 임윤찬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로 꼽는 러시아 작곡가 스크랴빈의 소나타와, 이번 콩쿠르를 위해 작곡한 스테판 휴의 신곡 ‘팡파레 토카타’도 다채로움을 더했다. ‘팡파레 토카타’는 임윤찬에게 이번 콩쿠르에서 1등상 이외에 베벌리 테일러 스미스 상(신곡 최고의 퍼포먼스 상)을 안겨준 곡이기도 하다. 손 교수는 “스크랴빈은 임윤찬이 초등학교 시절 제일 좋아했던 작곡가고, 나와 초창기에 제일 먼저 공부했던 곡도 프렐류드 24곡 전곡이었다”며 “그걸 치는 걸 보면서 ‘이야 이놈이, 이 어린 나이에 이런 매력을 이해하다니 좀 특별한 걸 가지고 있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얼굴 찌푸림도, 파도 타는 어깨도 없다… 피날레치고도 '손 바로'

임윤찬은 연주 중 몸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거의 없다. 건반을 세게 칠 때 아래위로 튕기는 몸의 움직임 외에 좌우로 리듬을 타거나, 강한 타건 뒤 손을 치켜들거나, 표정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액션'이 극히 적은 편이다. 강렬한 프레이즈를 연주한 뒤 머리를 뒤로 홱 제치는 게 간혹 보이는 액션의 전부다. [사진 반클라이번 재단]

임윤찬은 연주 중 몸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거의 없다. 건반을 세게 칠 때 아래위로 튕기는 몸의 움직임 외에 좌우로 리듬을 타거나, 강한 타건 뒤 손을 치켜들거나, 표정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액션'이 극히 적은 편이다. 강렬한 프레이즈를 연주한 뒤 머리를 뒤로 홱 제치는 게 간혹 보이는 액션의 전부다. [사진 반클라이번 재단]

임윤찬은 연주 중 불필요한 움직임이 거의 없다. 몸도 좌우 움직임이 거의 없고, 강렬한 피날레를 치고 나서도 손을 위로 흩뿌리는 동작 없이 거의 바로 손을 아래로 내린다. 파워풀한 멜로디에선 머리를 홱 드는 게 전부다. 고개를 젓거나 인상을 쓰는 부분도 드물고, 시종일관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질문하는 눈빛으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바라본다. 손 교수는 “어떤 어려운 곡을 만나도 효율적으로 자신의 몸을 쓸 수 있느냐가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라며 “나도 스승(러셀 셔만)에게서 물려받았고, 윤찬이도 어릴 때부터 나와 계속해오면서 몸에 익은 것도 있겠지만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본인이 이미 어느 정도 그렇게 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17일 파이널 연주 첫 곡이었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은 강렬한 오케스트라가 3분 30초간 이어진 뒤 피아노가 ‘도레미파솔라시도’, 단순한 스케일로 시작하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연속된 음이지만 연결되지도, 분리되지도 않고 각 음이 살아있는 터치의 스케일을 두고 손 교수는 “윤찬이는 귀가 진짜 좋다. 불필요한 음을 포착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이 깔끔한 터치를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귀가 좋은’ 연주자는 대화하듯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미묘한 고갯짓으로 지휘하듯 호흡을 맞춘다. 손 교수는 “필요할 땐 오케스트라에 강한 메시지를 주는 배짱도 있다”고 덧붙였다.

콩쿠르 직전까지도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하고, 평소에도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피아노를 친다'는 임윤찬에 대해 "나도 제일 걱정했던 게 체력이었다"고 소개한 손 교수는 "체력관리를 따로 하지도 않고 보기에도 약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타고난 체력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좋은 연주를 하고도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완벽주의자"라며 "'윤찬아 진짜 자야 해, 나중에 힘 빠질 수도 있어'라고 되풀이 충고해줬는데, 일반적인 의지로는 안되고 눈앞의 연주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버티는 것 같다"고 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도 '느리게' 말하고, 본인도 새벽 5시 연습 가는 스승

임윤찬(오른쪽)과 그가 열두 살이던 때부터 가르친 손민수 한예종 교수. [사진 목프로덕션]

임윤찬(오른쪽)과 그가 열두 살이던 때부터 가르친 손민수 한예종 교수. [사진 목프로덕션]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게 최고의 리액션"이고, 수상 직후 무대에서나, 인터뷰에서도 활짝 웃는 모습은 볼 수 없던 무뚝뚝한 임윤찬이지만 손 교수와의 유대는 각별하다. 손 교수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는데도 내가 가르치는 것을 윤찬이는 늘 받아들여 주고 흡수해서 자기 음악으로 만들어버렸다"며 "내 스승인 러셀 셔먼이 세미파이널을 보고는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모르듯 선생과 학생이 하늘이 맺어준 축복'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나도 윤찬이 같은 제자를 만난 게 큰 인연"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지금의 임윤찬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마디를 꼽는다면 "안단테(andante, 음악의 빠르기말 중 '느리게'라는 뜻')"라고 했다. "큰일을 해냈고, 수많은 사람들이 윤찬을 원하겠지만 본인은 남은 삶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선 늘 하던 걸 잊지 않고 나아가면 된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피아니스트는 결국 매년 새롭게 발전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있으면 뒤로 가는 것"이라며 "윤찬이는 이미 스스로 그걸 알고 있다. 아직 너무 어리고,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을 상상해보면 다음 호로비츠가 될 수도 있는 연주자"라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너무 기쁘고 정신이 없는 상태이고, 이러다가는 모든 게 훅 지나가 버릴 것 같다. 나 스스로 루틴을 찾기 위해 연습을 하고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제일 차분해지는 법은 연습밖에 없다"며 오전 5시부터 바흐 평균율과 몇 곡들을 치고 왔다는 그의 모습에서, "(콩쿠르 기간 동안)어디 돌아다니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어볼 기회도 없이 새벽 4시까지 연습했다"는 임윤찬의 모습이 겹쳐졌다.

임윤찬은 오는 8월 10일 소속사인 MOC프로덕션 창립 15주년 기념음악회 '바흐 플러스'(롯데 콘서트홀), 8월 20일 KBS 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피아노협주곡 1번(롯데 콘서트홀) 연주를 앞두고 있다. 이 두 연주는 20일 현재 시야방해석까지 모두 매진됐다. 9월 30일에는 광주시립교향악단과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하고, 10월 5일 정명훈의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연주한다. MOC프로덕션 관계자는 "콩쿠르 수상 이후 해외 투어 스케줄이 더해질 예정이라, 1~2년 전에 잡힌 스케줄 외에 국내 공연 일정은 추가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재학 중인 한예종 주도로 열리는 8월 27일 '계촌마을 클래식 축제'에는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