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역사보다 오래된 전통 씨간장, 수백 년을 이어가는 비결 [쿠킹]

중앙일보

입력 2022.06.20 09:00

업데이트 2022.06.20 09:29

한식의 맛 ① 씨간장


요즘, 간장의 종자라 불리는 ‘씨간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씨간장’의 사전적 의미는 ‘햇간장을 만들 때 넣는 묵은 간장’이다. 우리 조상들은 잘 숙성된 간장을 적당량 남겨 다음 해에 새로 만든 장에 부어서 기존 간장의 맛의 균형과 향을 유지해 왔다. 씨간장을 통해 간장 맛과 향을 대물림해온 셈이다.

씨간장에 관한 에피소드로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국빈 만찬 메뉴와 관련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당시 한우 갈비구이가 메인 음식으로 올라왔는데,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 집중 조명한 것은 갈비구이 소스에 들어간 360년 된 ‘씨간장’이었다.

2017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만찬 메뉴로, 사진 가운데 있는 갈비구이는 360년 씨간장으로 만든 소스를 사용했다. 중앙일보

2017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만찬 메뉴로, 사진 가운데 있는 갈비구이는 360년 씨간장으로 만든 소스를 사용했다. 중앙일보

외신들은 미국의 역사보다 오래된 간장이라며 열띤 보도를 이어갔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그때의 ‘씨간장’은 전남 담양 장흥 고씨 양진재 문중의 것이었는데, 사실 이곳 씨간장 맛을 보기 위해 국내외 유명 셰프들이 일부러 담양군에 있는 종부의 집을 찾아오기도 한다.

2006년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한국골동식품예술전’에 초대된 충북 보은 보성 선씨 종가의 ‘씨간장’에 얽힌 일화도 있다. 당시 한 대기업 회장이 ‘씨간장’ 1ℓ를 500만 원에 구입했다. 1ℓ에 500만 원이면, 한 항아리에 어림잡아 1억 원 정도다. ‘씨간장’의 값어치를 가늠해 볼 수 있어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다.

세계 어디에도 유례없는 ‘덧장’ 문화
우리나라의 ‘장’ 문화는 한식의 근간을 이룬다. 그중 간장은 여러 요리에 두루 쓰이는 가장 기본적인 양념이다. 간장은 발효 기간에 따라 불리는 호칭이 여러 가지다. 새로 담근 간장은 햇간장이라고 하며, 숙성시간에 따라 1~2년은 청간장, 3~4년은 중간장, 5년을 넘기면 진간장이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간장 속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세균·곰팡이·효모의 수가 증가하고, 감칠맛을 내는 유리아미노산의 함량이 높아진다. ‘씨간장’은 진간장 가운데 가장 풍미가 좋은 것을 골라 애지중지하며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것이다. 말 그대로 맛의 씨앗이 되는 ‘씨간장’은 진득한 흑색을 띠며, 짠맛에 더해 기분 좋은 단맛을 내고 부드럽지만 화려한 풍미를 자랑한다.

전주 '한국집'에서 관리하는 장독대, 수십년 된 씨간장은 끈적끈적한 점성을 지녔다. 신인섭 기자

전주 '한국집'에서 관리하는 장독대, 수십년 된 씨간장은 끈적끈적한 점성을 지녔다. 신인섭 기자

우리 전통 간장은 장독이라고 하는 전통 옹기에 보관한다. 옹기는 숨을 쉬는 용기로 간장의 숙성을 돕는다. 담아두기만 한다고 숙성이 절로 잘 되는 건 아니다. 낮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직사광선에 노출해 잡균을 없애고, 밤에는 수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뚜껑을 닫아 줘야 한다. 조상들은 그 집안의 간장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각 가정의 음식 맛은 장맛으로 좌우되고 그 맛은 대를 이어 가문의 자랑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씨간장’은 어떻게 수백 년을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덧장(또는 겹장)’ 문화에 있다. 장독대에 있는 간장은 요리에 사용되면서 당연히 줄어들게 마련이고, 숨을 쉬는 옹기의 특성상 수분이 증발하여 양이 줄기도 한다. 때문에, 매년 새로 담은 햇간장을 조금씩 더해 ‘씨간장’의 맛과 양을 유지하는 덧장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우리의 ‘씨간장’과 ‘덧장’ 문화는 유사한 장문화를 가진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한국만의 장문화로 꼽힌다. 아울러 장문화의 문화적 가치가 발현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독특한 보전의 필요성이 요구되자, 문화재청은 2018년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은 지난 2014년부터 준비해 오던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힘을 얻었고, 문화재청과 협업해 등재신청서 작성에 기여했다. 그리고 2024년 연말에 발표될 등재의 당락을 기다리고 있다.

전통 간장으로 느림의 미학을 맛보다
씨간장에 관한 관심은 높아졌으나, 현실은 씨간장은 커녕 간장을 집에서 담그는 일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5G의 상용화로 초고속 시대를 살아가고, 장독대는커녕 발코니도 없는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배달 앱을 통해 간편하게 음식을 주문해 먹는 사람들에게 전통 간장을 담가 먹으라는 권유는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항아리에 메주와 소금물, 숯, 건고추, 대추 등을 넣고 60~90일 정도를 기다리면 전통 장을 만들 수 있다. 중앙일보

항아리에 메주와 소금물, 숯, 건고추, 대추 등을 넣고 60~90일 정도를 기다리면 전통 장을 만들 수 있다. 중앙일보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고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면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현대인들도 얼마든지 전통 간장 만들기에 도전해 볼 수 있다. 요즘은 메주를 직접 띄우기 어려우니 국산 콩으로 만든 메주를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다. 그다음 방법은 의외로 심플하다. 메주는 솔로 깨끗하게 씻어 바람에 말린다. 천일염과 생수를 준비해 약 1대 3의 비율로 소금물을 만들고, 메주가 든 항아리에 부어준다. 이때 메주가 공기에 노출되면 부패가 일어날 수 있으니 반드시 소금물 아래 푹 잠기게 해야 한다.

여기에 숯, 건고추, 대추 등을 넣고 60~90일 정도 기다리면 된다. 메주는 손으로 으깨어 된장이 되고, 남는 것은 간장이 된다. 이제부터는 시간과 기다림의 몫이다. 잘 숙성된 간장 만들기에 성공했다면 다양한 요리에 활용해 보자. 진득한 간장은 소고기 장조림, 갈비찜, 불고기, 간장게장 등 각종 찜이나 조림 요리에 잘 어울린다. 햇양파, 마늘쫑, 깻잎 등을 활용한 장아찌를 담그기에도 더할 나위가 없다. 그윽한 차 한잔으로도 좋다. 간장에 따뜻한 물을 부으면 짠맛은 줄어들고 풍미가 살아나니 커피나 녹차에도 명함을 내밀만 하다.

임경숙 한식진흥원 이사장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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