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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과' 흉부외과 전문의 고작 20명 나왔다…"의료공백 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7일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제36차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춘계통합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우림 기자.

17일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제36차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춘계통합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우림 기자.

29→22→21→21→20.

최근 5년간 흉부외과에서 배출된 전문의 숫자다. 지원율도 저조하다. 올해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23명에 불과하다. 90년대만 해도 30~50명대의 지원자 수를 유지했지만 2009년 20명으로 뚝 떨어졌고 그  이후에는 20~3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정원(45명)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흉부외과 전문의 부족으로 필수의료 공백이 현실화됐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인구 고령화로 진료 수요는 증가한 반면 전문의 공급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배출된 인원도 수도권 지역으로 쏠리면서 비수도권 환자들이 수술을 받기 위해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이하 흉부외과)는 17일 제36차 춘계통합학술대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흉부외과의 위기 원인과 결과, 향후 대책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흉부외과 지원자 23명…10년 뒤 전문의 1000명 미만

연도별 흉부외과 전문의 배출 현황.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 제공]

연도별 흉부외과 전문의 배출 현황.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 제공]

발제자로 나선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강북 삼성병원)은 흉부외과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력 부족을 꼽았다. 2022년 기준 학회에 등록된 전문의 회원은 1535명이다. 이 중 50대 이상 회원은 707명으로 60.8%를 차지한다. 전형적인 역피라미드식 고령화 구조다. 여기에 더해 활동 전문의의 38.4%인 448명은 기업ㆍ봉직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21%는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 종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젊은 의사들의 흉부외과 기피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2009년 이후 수가 가산금 지원책이 마련됐음에도 전공의 지원율은 매우 낮다. 2022년만 해도 흉부외과 지원자는 23명뿐이다. 지역 쏠림 현상도 심하다. 전국에 있는 전공의 중 70%는 서울ㆍ경기 지역에 집중돼 있다. 1~4년 차 전공의가 모두 있는 수련병원은 전체 45개 병원 중 고작 5곳(서울대병원,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울산대 아산병원, 전남대병원, 부산대병원)에 불과하다.

학회는 앞으로 더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10년간 충원될 수 있는 전문의 인력은 200명 내외인데 현재 활동 전문의 1161명 중 436명(37.5%)이 해당 기간 동안 정년퇴직을 하게 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보다 200명 이상의 전문의가 감소한다는 의미로 10년 뒤에는 활동 전문의 수가 1000명 미만으로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고령화로 진료 수요는↑…전문의 번아웃 호소

문제는 인력 수급은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로 인해 흉부외과 진료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2021년 통계청 조사 결과 국내 사망 원인 1ㆍ2위가 흉부외과 질환인 암 혹은 순환기 질환이었다. 특히 흉부외과의 주요 진료 분야인 폐암 발병률은 경증 암인 갑상선 암을 제외하면 1위에 해당한다. 실제 2020년 폐암의 대표적 수술인 폐엽 절제술을 보면 2011년과 비교해 74.7%가 증가했다.

김경환 이사장은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존 인력이 당직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라며 “현재 흉부외과 전문의는 1일 평균 12.7시간(주당 63.5시간)을 근무하고, 평균 5.1일의 휴식 없는 당직이 이어지면서 ‘번 아웃’ 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또 비수도권의 경우 의료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학회에 따르면 응급 수술이 필요한 대동맥 박리증의 지역별 수술 건수를 보면 서울이 813건, 경기도가 291건으로 압도적인 숫자를 기록했다. 반면 제주도와 경북, 충북은 2건, 충남은 7건, 전남은 13건에 불과했다. 학회는 “제주ㆍ경북 등 일부 지역은 환자가 이송되지 못하고 사망하는 예가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수가 올리고 정책 개선해야”

17일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제36차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춘계통합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김경환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우림 기자.

17일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제36차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춘계통합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김경환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우림 기자.

학회는 이러한 위기의 원인으로 부실한 정책과 저수가 문제를 꼽았다. 우선 정책 실패의 대표적인 예로 2017년 제정된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들었다.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은 “심혈관질환의 정의를 선천성 심장질환, 판막질환 등이 아닌 오직 관상동맥 질환으로 정의해 소아 심장 판막질환 환자에는 심뇌혈관법 적용을 받지 않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 법에 따른 권역센터 지정 시 현재까지도 심장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자격이 없는 권역 심뇌혈관센터를 지정해 예산을 투입하는 등 정책 부재나 부적절한 정책운용 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가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경우 대동맥 박리증 수술료는 6335만9385원으로 산정돼 있지만, 한국의 경우 미국의 14.1%인 896만8140원이다. 정의석 위원장은 “위기의 원인은 저수가 제도에 있다”며 ”심지어 에크모(ECMO) 활용을 위한 체외순환사 등 흉부외과 보조 인력에 대한 관리비가 포함돼 있지 않다. 정부가 개선한다고 하지만 붕괴속도가 더 빠르다“고 꼬집었다.

학회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 흉부외과 및 필수의료과 대책 위원회(가칭) 설치 ▶흉부외과 위기에 대한 정부 주도 조사 ▶흉부외과 진료수가 합리화와 전공의 수련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김경한 이사장은 “이미 현재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등에 충분한 의견을 전했다. 흉부외과의 문제는 흉부외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의료의 근간에 대한 문제로 이제는 적극적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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