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잔혹한 인신공양, 허무한 멸망…편견 딛고 제대로 만나는 아스테카

중앙일보

입력 2022.06.20 07:00

카카오·초콜릿·아보카도·토마토·칠리…얼핏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나열이지만 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맛있는 먹거리란 것 외에 뭐가 더 있냐고요. 바로 그 이름의 유래가 같다는 거예요. 이들은 모두 아스테카에서 나온 이름이죠. 아스테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찍이 번영했던 문명 중 하나입니다. 지구 반대편, 멀리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생소한 아스테카. 비행기를 타고 열 몇 시간씩 날아가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해 우리에게 다가온 아스테카를 여행해봤습니다.

아스테카의 신들에 대한 내용과 제의용 달력, 생활 관련 정보 등이 그림문자로 기록된 ‘보르지아 고문서’.

아스테카의 신들에 대한 내용과 제의용 달력, 생활 관련 정보 등이 그림문자로 기록된 ‘보르지아 고문서’.

아스테카는 14세기 초~16세기 초 지금의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한 멕시코 중앙고원 지역에서 흥성했던 도시국가이자 문명입니다. 흔히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문명을 이야기할 때 마야·잉카와 묶어 3대 문명이라고 해서 이 세 문명이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데요. 아스테카와 마야·잉카는 나타난 시기부터 지역까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잉카는 아스테카보다 조금 늦은 15세기부터 16세기 초, 좀 더 남쪽인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을 따라 길고 거대한 땅(현재의 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칠레 일부)을 다스렸죠. 아스테카와 잉카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군림한 나라이자 문명, 부족을 뜻한다면 마야는 단일 국가가 아닌 마야족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의 문화권을 일컫습니다. 아스테카의 동쪽으로 멕시코 동남부부터 엘살바도르의 일부까지 과테말라·벨리즈·온두라스 등에 걸친 지역에서 기원전 수 세기 전부터 17세기까지 여러 나라가 생기고 사라지며 존재했어요. 마야의 일부 지역은 아스테카와 교류하기도 했죠.

올해 아스테카 문명의 참모습을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스테카의 후예인 멕시코와 우리나라의 수교 60주년이 된 2022년을 맞아 특별전을 기획했죠. 독일 린덴박물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과 협력해 마련한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전시입니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아스테카 특별전에선 멕시코국립인류학박물관 등 멕시코와 유럽 11개 박물관의 소장품과 그동안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새로운 발굴품 208점을 선보여요.

아스테카는 지금의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아우르는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스테카는 지금의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아우르는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전시를 기획한 정현 학예연구사와 만나 아스테카로 향했습니다. 먼저 화려한 무늬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미디어 아트가 나다움·목윤서·박지우 학생기자를 맞이했죠. “아스테카 사람들은 태양력과 제의용 달력 두 가지를 썼는데요. 특히 제의용 달력을 중요시했죠. 재규어·부싯돌·원숭이 등 20개의 기호를 13개 숫자와 조합해 1재규어 날, 4부싯돌 날 식으로 표기했는데, 그 달력 기호와 함께 아스테카 문화에 나타난 다양한 무늬들을 활용해 영상을 만들었어요.” 아스테카의 제의용 달력은 토날포우알리라고 하는데, 현재도 멕시코·과테말라의 원주민 공동체 등에서 이 달력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양의 돌과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발걸음을 옮긴 나다움·목윤서·박지우 학생기자 앞에 거대한 원형 석조물이 나타났어요. 아스테카 달력이라고도 알려진 ‘태양의 돌’입니다. “1790년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서 공사하던 인부들이 우연히 발견했어요. 지름 3.6m에 무게 25t의 엄청난 크기죠. 실물은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에 전시 중이고, 이곳에 있는 건 3D스캔으로 정밀하게 재현한 겁니다. 다만 크기는 살짝 작아요.”

아스테카 달력이라고도 알려진 ‘태양의 돌’을 3D스캔으로 정밀하게 재현해 미디어 아트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아스테카 달력이라고도 알려진 ‘태양의 돌’을 3D스캔으로 정밀하게 재현해 미디어 아트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태양의 돌은 아스테카인들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역법과 그들의 신화와도 같은 우주관을 기록한 유물입니다. 1479년 목테수마 2세가 만들어 템플로 마요르에 바쳤으나 스페인의 침략으로 인해 신전은 파괴되고 태양의 돌은 땅에 파묻혔죠. 태양의 돌 한가운데에는 혀를 내민 것 같은 얼굴이 있는데요. 이는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에서 현세를 창조한 제5의 태양신, 토나티우입니다. 자신을 희생해 태양을 탄생시킨 그를 기리고, 태양이 잘 움직여 세상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아스테카 사람들은 신성한 제의를 통해 제물을 바쳤어요. 그를 둘러싸고 과거 4개 시대가, 바깥쪽 원에는 한 달을 상징하는 20개의 칸과 각각의 날을 상징하는 동식물 기호가 표기돼 있죠.

아스테카 사람들은 세상이 총 다섯 번의 탄생과 네 번의 파괴를 거듭했다고 믿었습니다. 태양이 탄생하면서 세상이 시작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신들의 희생이 있었으며, 태양이 움직이는 것은 곧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라 여겼죠. 아스테카 사람들은 다섯 번째 세상, 즉 ‘움직임의 태양’ 세상을 살았어요. 정치·경제 등 아스테카의 모든 사회 시스템의 기반이 된 이러한 세계관이 미디어 아트로 태양의 돌 재현품 위에 펼쳐집니다. 소중 학생기자단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시선이 여기서 떠날 줄 몰랐어요.

정현(맨 왼쪽) 학예연구사와 함께 아스테카의 자연과 사람들 섹션을 둘러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정현(맨 왼쪽) 학예연구사와 함께 아스테카의 자연과 사람들 섹션을 둘러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전시 부제가 왜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인지 감을 잡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정 학예연구사는 아스테카 문명의 시작을 가볍게 짚어줬어요. 1064년, 1부싯돌 해에 아스테카 사람들이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의 계시로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죠. 그들의 유랑은 1325년 2집 해에 이르러 다시 한번 계시를 받으며 끝이 납니다.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의 계시는 이렇습니다. “돌 위에 쓰러진 적의 심장에서 자라난 멋진 선인장 위에 아름다운 독수리가 있는 곳을 찾으라. 그곳을 테노츠티틀란이라 하라.” 200년이 넘게 떠돌던 이들은 테스코코 호수의 섬에서 그 독수리를 발견하고 정착하게 되죠.

지우 학생기자가 아스테카란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질문했어요. “아스테카는 아스틀란에서 온 사람이란 뜻으로, 그들의 고향 이름이에요. 아스틀란이 어딘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죠. 당시 그들은 스스로를 ‘메시카(Mexica)’라고 불렀어요. 역시 우이칠로포츠틀리의 계시를 받아서 바꾼 거죠. 이는 현대 멕시코시티와 멕시코의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멕시코 국기에 그려진 독수리의 모습 역시 아스테카의 건국신화에서 유래했어요. 아스테카에서 독수리는 태양의 움직임과 관련 있는 전능한 동물로 여겨졌죠. 흔히 말하는 아즈텍은 아스테카를 영어식으로 읽은 겁니다.”

신화에서 나온 소중 학생기자단은 아스테카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했죠. 이는 고문서(Codex)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문서는 아스테카 사람들이 나무껍질로 만든 종이에 신화·역사·문화 등을 그림문자로 기록한 거예요. 그림문자는 고문서뿐 아니라 공예품·벽화 등에도 쓰였는데요.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했던 아스테카에선 그림문자가 더 적합한 소통 수단이었죠. 안타깝게도 원주민이 만든 고문서는 많이 파괴됐고, 정복자인 스페인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졌죠. 그 과정에서 유럽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과장되거나 왜곡됐을 수 있어 주의해서 봐야 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아스테카 문화에 나타난 각종 무늬와 기호를 활용해 만든 미디어 아트를 살펴봤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아스테카 문화에 나타난 각종 무늬와 기호를 활용해 만든 미디어 아트를 살펴봤다.

아스테카에는 4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도시국가들이 있었고, 무역로와 시장으로 연결돼 물품·문화·정보를 유통했죠. 기초 경제 단위는 가족으로, 식량부터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을 스스로 만들며 남는 것은 시장에서 다른 물건과 교환했어요. 다섯 살에 학교에 입학한 어린이, 잘못해서 부모에게 혼나는 모습, 가족이 입을 옷을 만들기 위해 베 짜는 여인, 농부와 어부, 사제 등의 모습을 ‘멘도사 고문서’에서 따온 그림과 관련 유물로 흥미진진하게 살펴봤죠.

매운 고추를 태우는 연기에 얼굴을 들이미는 식으로 혼나는 아이 그림을 본 윤서 학생기자가 질문했죠. “아스테카의 법은 엄격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도 그랬나요?” 정 학예연구사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이들 교육부터 결혼이나 부부간 약속 등 대체로 엄격했습니다. 바람을 피우면 돌에 맞아 죽는 벌을 받을 수도 있었죠. 술도 제의에 사용되는 것 외에는 52세 이상이 돼야 마실 수 있고 취하면 벌을 받았어요. 나름대로 규율을 갖춘 질서 잡힌 사회였죠.”

아스테카 사람들은 주식인 옥수수를 비롯해 콩·호박·고추 등을 먹고, 고기를 얻기 위해 칠면조와 개를 기르기도 했어요. 특히 옥수수는 성장 단계에 해당하는 신도 각각 따로 모셨죠. 정 학예연구사가 두 개의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하나로 모은 것처럼 생긴 것을 든 조각상을 가리켰어요. “어린 옥수수의 신 ‘실로넨’이에요. 손에 든 건 옥수수입니다. 대표적인 옥수수의 신으로는 남신인 ‘신테오틀’, 여신인 ‘치코메코아틀’이 있죠. 옥수수가 잘 자라도록 비의 신 ‘틀랄록’,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에게 제물을 바치기도 했죠. 여기 찰치우틀리쿠에 향로와 비석을 보세요. 철제 도구가 없어도 아주 정교하게 돌을 조각했어요.”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와 비석을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아스테카 사람들은 옥수수가 잘 자라도록 찰치우틀리쿠에에게 제물을 바쳤다.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와 비석을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아스테카 사람들은 옥수수가 잘 자라도록 찰치우틀리쿠에에게 제물을 바쳤다.

옥수수 외에 선인장도 다채롭게 활용했죠. 줄기는 채소처럼, 열매는 과일처럼 먹고 꽃봉오리와 잎으로는 달콤한 시럽을 만들었어요. 그중에서도 용설란 수액은 발효시켜 풀케라는 술을 만들었죠. 카카오는 왕과 귀족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어요. 옥수수·선인장 등 아스테카 사람들의 주식은 지금도 해당 지역에서 많이 먹고, 이를 포함해 고추·카카오 등은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식재료가 됐습니다.

지역을 넘어, 시대를 넘어 뻗어 나간 아스테카

먹거리 등 현재 우리 생활에도 아스테카 문명이 미친 영향이 남아있는데요. 당시 아스테카는 활발한 정복 전쟁을 통해 멕시코 중앙고원을 넘어 태평양과 대서양, 미국 남부, 과테말라까지 하나로 연결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생산된 물자가 수도 테노츠티틀란으로 모이고 또 퍼져나갔죠. 열대우림에서는 케찰 새 깃털과 카카오, 화산지대에서는 흑요석을 얻는 식으로 여러 도시국가에 각각의 특산품을 판매하는 전문 시장이 있었어요. 다만 아스테카엔 수레와 짐을 나르는 동물이 없어 짐꾼이 짐을 운반해야 했죠. 옥수수를 잔뜩 짊어진 인형이 그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철기가 없던 아스테카에서 흑요석은 각종 도구와 무기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자원이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거대한 나무 몽둥이 양옆으로 빼곡하게 흑요석을 박은 무기, 흑요석 칼과 화살촉 등을 유심히 봤어요. 그 맞은편에는 ‘독수리 전사’ 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죠. “아스테카 전사는 매우 용맹했어요. 그중 뛰어난 전사들이 독수리 전사와 같은 특별한 계급이 돼 이처럼 독수리 머리 모양 투구와 깃털 장식 옷을 갖췄죠. 계급마다 상징하는 옷을 입었거든요. 전쟁에서 많은 포로를 잡으면 평민도 높은 계급에 오를 수 있었죠.”

전쟁은 아스테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독수리 전사(왼쪽)를 비롯해 전쟁 관련 유물도 다수 볼 수 있다.

전쟁은 아스테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독수리 전사(왼쪽)를 비롯해 전쟁 관련 유물도 다수 볼 수 있다.

정복 전쟁으로 편입한 각 지역 도시국가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아스테카는 3개월, 6개월, 1년 주기로 공물을 거뒀어요. ‘멘도사 고문서’에 그 목록이 나오죠. 왕이 즉위하거나 사원을 증축할 땐 추가 공물을 부과했어요. 이는 아스테카 번영의 밑거름이 되었으나, 부과하는 공물이 과도해지며 각 지역의 불만을 불러 아스테카 멸망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중 하나였던 아스테카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으로 향했습니다. 커다란 '독수리 머리'가 눈길을 끌었죠. “신전을 장식했던 것으로 보이는 부조예요. 앞서 말했듯 건국신화에도 나오는 독수리는 아스테카에서 태양을 의미하며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죠.” 그 뒤로는 역사적 기록에 상상을 더해 그 시절 테노치티틀란을 그린 그림이 펼쳐졌죠.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배에 달하는 크기에 20만 명이 살았어요. 당시 유럽의 큰 도시와 비슷한 규모죠. 중앙에 네모난 곳이 제의가 이루어진 신성 구역입니다.”

사료에 따르면 신성 구역에는 많은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계단식 피라미드 신전인 템플로 마요르는 아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가 태어난 코아테펙 산과 탄생 신화를 담아 지었죠. 정 학예연구사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인 것과 확연히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죠. 이를 형상화한 전시 구조물에는 템플로 마요르에 담긴 신화 속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나 눈길을 끕니다.

아스테카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중심인 신성 구역을 모형으로 만들어 AR 및 디지털 매핑 영상을 적용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아스테카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중심인 신성 구역을 모형으로 만들어 AR 및 디지털 매핑 영상을 적용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템플로 마요르 꼭대기에는 비의 신 ‘틀랄록’, 태양과 전쟁의 신 ‘우이칠로포츠틀리’를 위한 신전이 나란히 있어요. 신성 구역 가운데에는 바람의 신 ‘에에카틀’ 신전이 있습니다. 바람이 자유롭게 건물 주변을 돌 수 있도록 신전 또한 원형으로 지었죠. 여기서 서쪽을 보면 아스테카 사람들이 ‘신들의 경기’라 했던 공놀이를 하는 공놀이장이 있어요. 그 옆 사각형 구조물은 두개골의 탑 ‘촘판틀리’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인간의 유골은 신성한 제의에 인간도 제물이 되었음을 보여주죠. 이는 태양을 움직이고 세상을 지속시키려는 인간의 희생을 암시합니다. 그 밖에 여러 신전과 학교 등이 신성 구역에 자리했죠. 이는 건물 모형과 AR 기기를 통해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각자 기기를 조작해 AR로 나타나는 신성 구역을 샅샅이 살펴봤어요.

이들 신의 모습은 아스테카의 우주관·천문학·문자 체계·의학 지식 등이 담긴 '보르지아 고문서'에 자세히 나타납니다. 그림문자 외에 조각으로도 형상화했는데요. 바람의 신이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비를 내리게 한다고 여겼기에 회오리 모양으로 만든 에에카틀을 본 세 사람은 귀엽다며 웃었죠. 이어 죽은 자와 조상의 영역을 다스리는 죽음의 신 믹틀란테쿠틀리를 만났습니다. 해골 형상으로 갈비뼈 아래로는 간이 튀어나온 모습에 정 학예연구사가 설명을 덧붙였죠.

점토로 빚은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죽은 자의 세계를 관장하는 신이자, 조상의 신으로 해골 형상이다. 갈비뼈 아래로는 간이 튀어나와 있는데, 아스테카 사람들은 간과 머리·심장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점토로 빚은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죽은 자의 세계를 관장하는 신이자, 조상의 신으로 해골 형상이다. 갈비뼈 아래로는 간이 튀어나와 있는데, 아스테카 사람들은 간과 머리·심장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아스테카 사람들은 모든 인간에게 세 가지 영혼이 있다고 믿었는데 각각 간과 머리·심장에 있다고 여겼죠. 죽음과 희생은 새로운 시작이자 생명의 출발을 의미하기도 했어요. 아스테카에서 가장 중요시한 개념이죠.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죽음을, 생명을 바라봤는지 나타내는 유물이 믹틀란테쿠틀리죠. 죽음이 비극이나 공포가 아니었기에 해골 역시 예술과 문화 전반에 자주 등장합니다. 애니메이션 ‘코코’를 봤다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해골로 나타난 조상님들을 떠올린 소중 학생기자단은 믹틀란테쿠틀리가 멋져 보인다고 속삭였어요.

“아스테카 사람들이 인신공희를 하고 인육을 먹기도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다움 학생기자의 질문에 정 학예연구사는 “신성한 제의를 위한 제물에 인간도 포함됐으며 주로 전쟁 포로가 동원됐다”고 말했죠. “동식물뿐 아니라 인간도 제물이 된 것은 신들이 자신을 희생해 세상을 만든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소중한 생명을 희생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아스테카 사람들은 이를 통해 세상이 잘 유지된다고 믿었죠. 세상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던 거예요. 인육을 먹었다는 건, 보통 음식처럼 먹었다는 건 아니에요. 신에게 바친 귀한 것을 조금 나눠 받는다는 개념으로 제의의 일부였습니다.”

아스테카 대표 유물 소개

아스테카 대표 유물 소개

2015년 무렵 발굴돼 최초로 공개된 신을 위한 각종 봉헌물을 비롯해, 제의나 행렬 때 사용한 북·피리 같은 악기, 제의에 사용했던 그릇 등의 유물도 흥미로웠죠. 우리 것과 전혀 다른 무늬·조각 등은 생소했지만, 세 발 그릇처럼 비슷한 형태의 물건도 있었어요. 템플로 마요르는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파괴됐지만 1978년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가 시작돼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코르테스는 템플로 마요르에서 나온 돌로 가톨릭 성당을 지었죠. 테노치티틀란의 중심인 신성 구역에는 지금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대통령궁, 소칼로 광장 등이 들어서 있어요.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기에 발굴 작업은 더딘 편입니다.”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스테카는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가 도착하고 2년 만에 멸망하고 마는데요. 여기엔 아스테카의 잔혹한 통치와 과도한 공물에 고통받던 다른 도시국가들이 코르테스 편에 선 것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또 코르테스 일행이 들여온 천연두 등 유럽의 전염병도 목테수마 2세를 이은 쿠이틀라우악 왕을 3개월 만에 죽음으로 이끄는 등 큰 피해를 줬죠.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장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특별전시실
기간: 8월 28일까지
관람시간: 월·화·목·금·일 오전 10시~오후 6시, 수·토 오전 10시~오후 9시(40분 전 발권 마감)
입장료: 어린이·청소년 3000원, 성인 5000원

마지막 왕 쿠아우테목이 잔인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아스테카를 지키려고 했다는 이야기에 지우 학생기자가 아스테카의 후예와 오늘날 전하는 의미에 대해 질문했죠. “아스테카는 현대 멕시코 역사의 뿌리예요. 아스테카의 흔적은 굉장히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썼던 나우아틀어는 지금도 약 150만 명의 원주민들이 사용하고, 훨씬 많은 사람이 원주민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죠. 얼핏 우리와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초콜릿·아보카도·토마토 등 많은 음식이 아스테카에서 유래해 지금 우리 곁에 있고요.”
다움 학생기자가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을 꼽아달라고 청했습니다. 정 학예연구사는 “아스테카는 교과서에 나오긴 해도 꽤 생소하다”며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흔히 잔인하고, 허망하게 나라를 갖다 바쳤다는 식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장하고 왜곡한 거예요. 그렇다고 아스테카 사람들이 다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당시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통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폭넓게 이해하자는 취지죠. 이런 자세는 소년중앙 독자 여러분이 앞으로 다른 곳에서 자란 친구들을 만날 때도 도움이 될 거예요.”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취재를 위해 방문한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전시는 그동안 막연히 '아즈텍 문명'이라고 이름만 들었던 아스테카를 새롭고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벽을 가득 채운 도형들이 눈을 사로잡으며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죠. 다양한 전시품 가운데 몸 밖으로 간을 드러낸 죽음의 신 믹틀란테쿠틀리의 모습은 집에 와서도 생각이 났습니다. 죽으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믹틀란테쿠틀리와 함께 다시 저승에서 새 삶을 살아간다고 믿었다는 설명도 함께 기억이 나고요. 이 소조상은 멕시코에도 딱 두 점밖에 없어 어렵게 한국에 가져왔다고 하니 소중 친구들도 이번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나다움(Dulwich College Seoul 6) 학생기자

구슬이 들어 있는 세발 접시. 의례에 사용한 고급 토기로 동물 발 모양의 접시 다리 안에는 흙으로 만든 구슬이 들어있어 접시를 흔들면 빗소리가 난다.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구슬이 들어 있는 세발 접시. 의례에 사용한 고급 토기로 동물 발 모양의 접시 다리 안에는 흙으로 만든 구슬이 들어있어 접시를 흔들면 빗소리가 난다.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아스테카 전시를 통해 몰랐던 아스테카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낯선 문화였고 무서운 부분도 있었지만 낯설어서 신기했습니다. 전쟁과 제물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지금은 그런 문화가 아닌 게 새삼 감사했죠. 옛날 사람들은 지금보다 미개할 거라는 편견도 깨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목윤서(서울 고현초 6) 학생기자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는 아스테카 문명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아스테카의 탄생부터 멸망까지 세세히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정현 학예연구사님과 유물 하나하나의 특징을 알아보고 인터뷰도 했죠. 아스테카 사람들이 당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그들은 어떠한 문화생활을 했는지 등 궁금한 정보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답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아스테카가 마냥 우리와 관련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전시를 둘러보면서 내용을 되새기고 싶네요.
-박지우(서울 목운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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