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전용

"우리의 말은 아이 삶에 흔적을 남긴다" 부모가 알아야 할 대화의 기술

중앙일보

입력 2022.06.20 06:00

양육자가 ‘좋은 양육’에 대해 이토록 고민하고 공부하던 시절이 또 있을까요? 아이를 개인으로 존중하고, 언제나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건 이제 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이죠. 이 양육 태도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교육심리학의 거장 ‘하임G. 기너트(Haim G. Ginott)’입니다. 임상심리학자이자 어린이 심리치료사였던 그는 최초로 인간의 ‘감정’에 주목해 어린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어요. 1965년 출간된 책 『부모와 아이 사이』는 이 연구의 결정체죠.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당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아시다시피 1960년대는 체벌이 당연하던 시절이잖아요. 간의 어린이 심리 교육 연구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는 데 그쳤다면, 기너트는 어린이를 ‘감정과 욕구가 있는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우리가 읽고 있는 대부분의 육아서는 사실 『부모와 아이 사이』 범주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책은 큰 호응을 받으며 5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살아생전 기너트가 쓴 칼럼은 매주 특종 기사로 연재가 되었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기너트는 양육자가 아이의 감정과 욕구,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기를 바랐어요. 이 태도의 기본은 ‘대화의 기술’을 익히는 거라고 했고요. 그는 양육자의 ‘말’이 외과 의사의 ‘칼’과 같다고 말합니다. 서툴수록 더 큰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에요.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아이를 존중하며 양육하는 방법이 가득 담겨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기너트가 제안하는 핵심적인 대화의 기술을 4가지로 정리했습니다.

① 감정에도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기너트가 말하는 ‘대화의 기술’을 관통하는 핵심은 먼저 아이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 느닷없는 말썽 이면에는 언제나 감정이 숨겨져 있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요. 설득의 영역도 아니고요. 사랑을 강요할 수 없듯, 감정은 마음에서 저절로 일어나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대할 때는 종종 착각하게 되지 않나요? 화내고 우는 건 나쁘다고요.

감정은 우리가 유전으로 받은 소산이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느낀다. 우리는 어느 때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감정을 우리 마음대로 좌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감정들을 어느 때 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또 우리는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p. 56  

아이들은 분노, 두려움, 당황,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울거나 떼를 쓰거나, 양육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아이가 속마음을 숨기고, 이렇게 표현하는 건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데 서툴기 때문이에요.

기너트 박사는 아이들이 ‘격한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양육자가 그 감정을 알아주는 것뿐이라고 말해요. 아이가 넘어지면 달려와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듯, 감정적 상처에도 응급처치가 필요하다는 거죠. “화가 났구나”, “창피하구나”, “속상하구나” 같은 말을 해줘야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이 말을 통해 아이는 양육자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느낄 수 있어요. 때로는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갖게 되기도 하고요. 아이들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기분이 무엇인지 모를 때도 잦거든요.

그럼 막무가내로 우는 아이의 감정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첫 번째입니다. 말 속에 힌트가 있거든요. 그래도 모르겠다면 자신의 감정적 경험에 빗대어 보세요. ‘어린 시절의 나라면 지금 기분이 어땠을까?’를 떠올려보면 아이의 마음이 보일 거예요. 그걸 말로 표현해주면 됩니다.

② ‘감정’은 너그럽게, ‘잘못된 행동’은 엄격하게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고 넘어갈게요. 기너트의 양육법은 아이의 모든 것을 인내하고, 받아줘야 한다는 게 결코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양육자의 너그러움이란 “아이가 아이답게 굴 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해요. 아이들은 원래 옷을 금방 더럽히고, 위험한 곳에 올라가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서 장난을 치는 존재임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이때 ‘감정’과 ‘행동’을 다르게 대하는 게 중요해요. 감정에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그걸 표현하는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는 엄격하게 훈육해야 하죠. 해서는 안 되는 행동까지 허락하는 것은 너그러움이 아니라 방임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감정이 아니라, 오로지 행동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괴적인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이 발생하면 부모들이 관여하여 그것을 말과 그 밖의 다른 상징적 출구로 배출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p. 188 

여기서 ‘말’은 “속상했구나”, “슬펐구나” 같은 감정의 언어이고요. 상징적 출구란 흉측한 그림을 그리거나, 끔찍한 내용의 시를 쓰거나, 마구 뛰어다니는 등의 행동을 의미해요. 아이가 건강한 방식으로 ‘상상 속에서’ 감정을 표출하는 건 얼마든지 인정해줍니다.

하지만 그 감정 때문에 친구를 때리거나, 집을 나가거나, 양육자에게 욕을 하는 등 사회적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엄격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때리는 게 아니야. 절대로 안 돼” 같은 확고한 표현을 통해서요. 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규칙 앞에서는 ‘왜 하면 안 되는지’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하게 안된다고 말하는 걸로 충분하죠.

③ 요청은 거절해도, 소망하는 마음은 허락한다
양육자와 아이 사이에 생기는 트러블은 대부분 아이의 요청을 거절할 때 발생하죠. 기너트는 이때 “안 돼”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해요. 현실에서는 아이의 부탁을 거절해도, 소망만큼은 인정해주라는 겁니다. 감정과 마찬가지로 소망 또한 저절로 일어나는 마음이니까요. 예를 들어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우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장난감이 정말 갖고 싶구나. 네 얼굴만 봐도 얼마나 갖고 싶어하는지 알겠다. 나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오늘은 사줄 수가 없어.”

물론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을 수 있어요. 이때 아이의 마음을 한 발 더 헤아리며 말하는 방법이 있죠. 상상 속에서나마 소망을 이루어주는 겁니다.

“저 장난감이 우리 집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를 초대해서 재미있게 놀 수도 있겠다. 정말 신날 것 같은데!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오늘은 보기만 하는 거야.”

소망이 이뤄진 모습을 상상하게 하면, 무작정 거절하는 것보다 상처를 덜 받는다고 해요. 비록 장난감을 사지는 못했지만, 양육자가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고요? 이렇게 설명해볼게요.

그동안 눈여겨본 캠핑 텐트가 할인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텐트를 구경하는 당신에게 배우자가 말합니다. “이번 달 생활비 부족한 거 알잖아. 그리고 집에 있는 텐트는 어떻게 하려고?”

순식간에 억울하고 배우자가 미워집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이 텐트가 있으면 훨씬 편하겠다. 지금 가진 것보다 넓어서 아이들도 좋아하겠지? 나도 우리가 새 텐트를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텐트를 사지 못하는 결말은 똑같지만, 마음만은 전과 다를 겁니다.

④ ‘나’ 대화법으로 화내기  

나아가 기너트는 “양육자도 화를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기사를 읽는 대다수의 양육자는 아마 아이에게 욱하지 않으려고 충분히 애쓰는 사람일 거예요. 하지만 아이가 선을 넘는 순간, 무너지고 말죠. 우리는 욱하고, 후회하고, 자책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인내가 미덕이 아니라고 조언해요. 저는 이 대목에서 그간 양육서를 읽을 때마다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에게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라고 하면서, 양육자는 왜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감정을 제대로 느껴야 하는 건, 아이뿐 아니라 양육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적으로 건강한 부모들은 성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분노를 의식하고, 그것을 존중한다, 분노를 정보의 근원, 상냥함을 보여주는 징조로 활용한다. 그런 부모들의 언어는 감정과 일치한다. p. 86 

중요한 것은 ‘화’ 자체가 아니라 화를 내는 태도예요. 특히 양육자의 분노는 “아이와 부모 양쪽 모두에게 부작용이 없는 방법으로 표현”해야 하죠. 그 첫 단계는 ‘나’ 표현을 사용해 말하는 겁니다. “나 화났어”, “나 기분 나빠”라고요. 

그래도 아이들이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단계를 더 나아갑니다. ①화가 난 이유를 설명하고, ②양육자의 마음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이야기하고, ③아이가 어떻게 행동했으면 좋겠는지 요구하는 거예요. 여기서 ‘감정과 일치하는 부모의 언어’란 이런 겁니다.

“카세트 스테레오의 소리를 줄여달라고 거듭해서 부탁했는데, 아들이 말을 안 들어주니까, 화가 나고 마음이 안 좋아.”
“나 화나고 실망했어.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거 아니야.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돼.”

저자는 아이에게 창피를 주거나 체면을 깎지 않고 화난 감정을 표현하면 아이가 스스로 변할 거라고 조언해요. 양육자가 올바르게 화내는 것은 아이에게 배움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데요. ‘분노’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타인을 해치지 않고도 화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양육자는 화를 ‘잘’ 내야겠습니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양육자가 부딪히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대화법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양육 태도에 대한 고찰이 전무했던 시대에,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그 안의 감정을 파고든 저자의 통찰은 21세기의 양육자에게도 묵직한 깨달음을 주죠.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입니다(지금의 『부모와 아이 사이』는 기너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 ‘앨리스 기너트’가 남편의 연구를 이어받아 2003년 출간한 개정판입니다. 현대에 맞는 사례를 추가하고 대화를 각색했다고 하네요)

혹시 고전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다면, 기우입니다. 기너트의 설명은 친절하고 구체적이거든요. 수많은 임상 심리치료 사례에서 체득한 생생한 예화로 양육 이론을 전달하는 덕분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죠. 바쁜 양육자라면 ‘제10장 요약: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만 읽어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책의 핵심을 한 파트로 정리한 부분이에요. 

『부모와 아이 사이』가 출간된 지 57년, 우리는 그 시절에서 얼마나 더 왔을까요? 우리는 1965년 사람들보다 더 어린이를 존중하고 있을까요?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노키즈존’, 미디어마저 미숙한 이들을 ‘-린이'이라고 부르며 어린이를 낮추어 표현하는 걸 떠올리면 “그렇다”라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네요.

부모들은 손님 대하듯 아이들을 대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p.19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그리고 아이와 건강하게 공존한다는 건 바로 그 아이를 나와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성소영 객원기자 ssoy419@gmail.com, jung.sunean@joongang.co.kr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