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년 키운 아이 "보육시설 보내라"...'美천사가족' 울린 한국法 [속엣팅]

중앙일보

입력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을 찾은 성빈(앞줄 왼쪽)이와 가족. 성빈이는 생후 2주부터 5년 넘게 에이브라함슨 가족의 막내로 살고 있지만, 법적으론 남남이다. 왼쪽 시계방향으로 엄마 캐서린 에이브라함슨, 아빠 데이비드 에이브라함슨, 큰누나 아멜리에, 작은 누나 브레아, 성빈. 큰형 조슈아는 미국 할아버지 댁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우상조 기자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을 찾은 성빈(앞줄 왼쪽)이와 가족. 성빈이는 생후 2주부터 5년 넘게 에이브라함슨 가족의 막내로 살고 있지만, 법적으론 남남이다. 왼쪽 시계방향으로 엄마 캐서린 에이브라함슨, 아빠 데이비드 에이브라함슨, 큰누나 아멜리에, 작은 누나 브레아, 성빈. 큰형 조슈아는 미국 할아버지 댁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우상조 기자

“갓난아이 때부터 5년 넘게 친자식으로 키우고 있는데 보육시설로 보내라고요?”

미7공군사령부 데이비드 에이브라함슨(50) 중령은 이렇게 답답함을 호소했다. “아이를 위한 최선이 한국의 보육시설에서 자라는 것인가”라면서다. 지난 9일 그와 함께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을 찾은 아내 캐서린 에이브라함슨(46) 옆에선 둘째 아멜리에(13)와 셋째 브레아(8)가 에너지가 넘쳐나는 막냇동생 성빈(5)이를 “인터뷰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달래가며 함께 놀고 있었다.

“당분간” 부탁에…생모가 입양 요청

미7공군사령부 데이비드 에이브라함슨(50) 중령 가족. 아내 캐서린 에이브라함슨(46)와 첫째 조슈아(17), 둘째 아멜리에(13), 셋째 브레아(8), 그리고 가슴으로 낳은 막내 성빈(5). [사진 본인제공]

에이브라함슨 부부의 네 아이. 왼쪽부터 첫째 조슈아(17), 둘째 아멜리에(13), 셋째 브레아(8), 막내 성빈(5). [사진 본인제공]
셋째 브레아(오른쪽)와 성빈. [사진 본인제공]

성빈이는 부모님과 형, 누나들과 성(姓)이 다르다. 성빈이는 생후 2주가 갓 지난 2017년 6월 에이브라함슨 가족이 됐다. 에이브라함슨 부부가 생모 지인인 교회 친구에게서 “아이를 당분간만 돌봐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받은 뒤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바로 다음 날 성빈이를 만났다. 갑작스러운 돌봄에 부부는 영국과 미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로 한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그런데 예정했던 ‘당분간’이 기약 없이 길어졌다.

9개월 만에 생모의 연락을 받았다. 성빈이를 돌려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부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생모를 만났다. 생모가 성빈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에이브라함슨 부부 역시 눈물을 쏟았다. 생모는 “성빈이를 키울 수 없다”고 했다. 생모는 친권 포기와 입양동의서 등 서류를 준비해 성빈이의 입양 신청을 함께 했다. 주변 외국인 지인들이 똑같은 절차로 입양했고, 생모의 동의까지 받았으니 당연히 문제없을 줄 알았다.

이에 따라 본격적으로 입양을 준비했다. 입양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이수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가정들과 함께 싱글맘을 돕는 비영리단체 FAN(Family Advocacy Network)을 결성해 모금부터 물품 기증, 위탁 돌봄 등 봉사 활동에 나섰다. 캐서린은 “성빈의 생모를 보고 싱글맘을 돕기로 했다”며 “싱글맘이 되면 가족의 도움도 못 받고 모든 걸 잃게 되는데 아무도 돕지 않는다. 정부도 싱글맘 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입양, 국가 지정 기관서 결정해야”

9일 오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를 찾은 에이브라함슨 부부와 아이들. 우상조 기자

성빈이는 생후 2주가 갓 지났을 때 에이브라함슨 가족이 됐다. [사진 본인제공]

부부는 법적 절차도 밟았다. 그런데 법원에선 가정조사를 하고도 입양 신청을 기각했다. 대법원 판결도 기각 그대로였다. “생모는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고 양육을 포기했으니 아이에 대한 권리가 없다”, “아이의 입양은 (민법이 아닌) 입양특례법에 따라 국가가 지정한 기관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입양특례법은 시설을 통해 입양하는 경우 적용된다. 이에 따르면 성빈이는 보육기관에서 지내다가 6개월이 지나도 한국인 가정에 입양되지 않을 경우에 해외입양 대상이 된다.

에이브라함슨 부부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시설을 찾았다. 그런데 시설에선 “생모가 직접 당신에게 맡기고 동의했으니 민법을 통해 입양하라”고 했다. 결국 생모까지 나섰다. 에이브라함슨 부부를 상대로 입양 이행 청구 소송을 냈다. 법원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였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 중순 “연내에 처리하라”고 생모의 손을 들어줬다. 부부는 이번엔 친양자(기존 성 포기)가 아닌 일반입양(기존 성과 호적을 유지한 채 양육권만 보장)으로 신청했지만, 다시 기각됐다.

韓 공군서 표창…“성빈 위해 한국 남기로”

9일 오전 가족과 함께 중앙일보 사옥을 찾은 성빈이. 장난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개구쟁이다. 우상조 기자

성빈이는 생후 2주가 갓 지났을 때 에이브라함슨 가족이 됐다. [사진 본인제공]
에이브라함슨 부부는 한국에서 낳은 둘째와 셋째, 그리고 성빈이까지 돌잔치를 크게 열었다. [사진 본인제공]

에이브라함슨 중령은 2005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한국 공군 F-15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 교관으로 근무한 뒤 미국해군대학원에서 15개월간 한국어 교육을 받은 한국 전문가다. 2009년 한국에 발령받은 후 미국 근무 3년을 제외하곤 10년 넘게 한국에 살았다. 첫째 아들 조슈아(17) 외에 한국에서 낳은 아멜리에, 브레아, 성빈이까지 돌잔치도 크게 치렀다. 지난해 말 공군참모총장으로부터 ‘2021년 공군을 빛낸 인물’ 협력 부문 상을 받기도 했다.

에이브라함슨 중령은 “우리가 처음부터 입양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우리 집안에선 입양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의 집안은 4대째 입양을 했고 그의 사촌 두 명도 입양아다. 그 역시 성빈이를 키우기 위해 한국 복무를 택했다. 은퇴 전까지 한국 복무를 보장받은 그는 은퇴 후에도 민간인으로 주한미군에서 일할 예정이다. 그는 “민법대로 판결할 수 없다면 입양특례법이라도 가능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우리도 성빈이가 생모와 지내면서 잘 자라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이젠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게 최선 아닐까요?”

[에필로그] 9남매를 홈스쿨링 중인 데이비드 먼디 한동대 교수는 직함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싱글맘의 출산과 양육, 취업까지 돕는 비영리단체 여성소망센터 이사장이죠. 그러다 보니 비슷한 고민과 활동을 하는 이들과도 교류하는데요. 에이브라함슨 부부는 먼디 교수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료입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