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부터 피격까지 3시간, 文 뭐했나"...피살 공무원 쟁점은

중앙일보

입력 2022.06.20 05:00

업데이트 2022.06.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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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가의 기본을 잊어버린 행위이자, 한 마디로 국기 문란이다.”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에 피격당해 불타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사건에 대한 당시 문재인 정부의 대처를 보는 대통령실의 인식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1순위 책무인데 이를 등한시했을뿐더러,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식으로 서둘러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9일 중앙일보에 “우리 국민이 불태워지는 게 생중계되다시피 했다”며 “그런데도 진상규명에 애쓰기보다 이슈가 되는 걸 덮으려는 듯한 모습은 국가의 기본이 안 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사건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이 규명돼야한다는 입장이 명확하다. 사진은 대선후보 때인 1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씨 유가족과 면담하던 윤 대통령.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사건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이 규명돼야한다는 입장이 명확하다. 사진은 대선후보 때인 1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씨 유가족과 면담하던 윤 대통령. 뉴스1

국방부와 해양경찰청이 16일 “자진 월북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문재인 정부 때의 입장을 뒤집었다. 대통령실은 발표와 무관하게 ‘이제 시작’이란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정부 발표 이튿날 기자들과 만나 “(진상 파악이) 더 진행될 것”이란 말을 두 차례 했다. 윤 대통령은 “(자료 공개 등 추가 조치가) 조금 더 진행되지 않겠나”라고 했고, “진상을 더 확인하기 위해 당사자(유족 측)도 어떤 법적인 조치를 하지 않겠나. 거기에 따라 더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썬 문재인 정부가 관련 자료를 15년간 공개가 극히 까다로운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한 까닭에 실체적 진실을 곧바로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기록물을 열람하려면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거나 ▶서울고법원장의 영장이 있거나 ▶전직 대통령 측이 해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건의 진상은 감사원 감사와 수사 기관의 수사, 정치권의 문제 제기 세 갈래로 파헤쳐질 예정이다.

감사원은 정부 발표 이튿날 “최초 보고 과정과 절차 등을 정밀하게 점검해 업무 처리가 적법ㆍ적정했는지 확인할 예정”이라며 해양경찰청과 국방부 등에 대한 감사 착수 사실을 알렸다. 감사원이 발 빠르게 나선 것은 진상 조사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들이 진술이나 책임을 회피하려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불과 1년 9개월 전의 입장을 바꿔야 하는 관련 공무원들이 사실 확인에 비협조적이었다”고 전했다. 당장 물증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보고자나 피보고자의 진술을 통한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이를 회피하다 보니 공무원에게 출석이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감사원이 나선 것이다.

북한군에게 피살된 고(故) 이대준씨 유가족과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들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고발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 고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북한군에게 피살된 고(故) 이대준씨 유가족과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들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고발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 고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이와 연결되는 게 수사를 통한 진상 파악이다.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가 포착될 경우 고발하거나 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감사원의 감사와 무관하게 이씨 유족들은 서훈 전 안보실장을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고발도 검토 중이다. 고인의 친형인 이래진씨는 “서훈 전 안보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알기 위해 서 전 실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는 “문 전 대통령이 사건을 보고받은 뒤 3시간이 지나 피격돼 사망했는데, 그 시간 동안 문 전 대통령이 대응을 안 했으면 직무유기죄로, (사태를) 방치하도록 지시했으면 직권남용죄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사에 따른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서울고법에서 대통령기록물 열람 영장을 발부할 수 있을 거란 관측도 제기된다.

연일 비판 수위를 높여가는 국민의힘도 이날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끊임없이 정의와 인권을 강조하지만 딱 두 곳이 예외다. 하나는 민주당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다. 내로남불을 넘어 북로남불”이라고 썼다. 문재인 청와대의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을 겨냥해선 “윤 의원은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궤변을 그만 두라. 중세 마녀사냥 때나 즐겨 쓰는 반지성적 폭력이다. 수많은 여성이 마녀가 아니라는 증거를 대지 못해서 죽었다”고 썼다.

국민의힘은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해 하태경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해수부 공무원 월북 몰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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