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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필의 인공지능개척시대

호주머니 속 인공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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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매년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된다. 하지만 혁신적 변화를 찾기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대부분 기술이 도입 초기에는 급격한 혁신이 이루어지다 점차 그 발전 속도가 더뎌지기 마련이다. 스마트폰 기술도 이제 혁신의 포화 지점에 다다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최근 스마트폰에는 이제 막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혁신적 기술이 숨어 있다. 바로 ‘인공신경망 전용 처리장치’다. 최근의 스마트폰에는 인공지능 계산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칩이 포함되어 있다. 얼굴 인식을 통해 스마트폰을 잠금 해제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 화질을 개선하거나, 인공지능 비서가 우리 음성을 인식하거나, 통화할 때 배경 소음을 제거하는 등 다양한 작업에 활발히 활용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스마트폰에서는 인공지능이 그야말로 ‘열 일’을 하는 셈이다.

스마트폰서도 AI활용 증가 추세
메타버스·엣지컴퓨팅 퍼질수록
경량·저전력 AI기술도 발전
스마트폰은 AI폰으로 진화할 것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렇지만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기술은 아직 ‘있으면 좋은(Nice-To-Have)’ 기능에 가깝다. 주로 사진·영상·음성 처리를 개선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기술이 초창기에는 ‘있으면 좋은’ 것에서 시작해서 점차 ‘꼭 필요한(Must-Have)’ 것으로 발전한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을 때 스마트폰은 그저 ‘있으면 좋은’ 제품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 되었다. 자동차·라디오·TV·PC 등 많은 제품이 이러한 경로를 밟아 왔다. 그러면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도 ‘꼭 필요한’ 기능이 될 수 있을까.

최근의 인공지능 발전 속도나 응용 분야가 확대되는 경향을 생각해 보면, 인공지능이 스마트폰에서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메타버스에서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속 세상은 새롭게 창조된 상상의 공간일 수도 있고,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쌍둥이 공간일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 메타버스 속에서는 인공지능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이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아이러브스쿨’과 같은 온라인 동창회 서비스를 생각해 보자. 인공지능 기술은 추억 속의 교실 풍경, 선생님, 친구들을 메타버스 속에서 되살려낼 수 있다. 미래에는 졸업 앨범을 인쇄하는 대신 메타버스 속 추억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 기술은 메타버스 속 이용자 경험을 원활하고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필수 요소로 작동한다.

그러면 막강한 성능을 가진 대규모 서버 컴퓨터에서 계산을 처리해서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주면 되지 않을까. 굳이 스마트폰에서 복잡한 인공지능 계산을 직접 수행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최첨단 초고성능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규모로 인공신경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러면 스마트폰들이 계속해서 대규모 서버 컴퓨터에 접속해서 처리된 결과를 내려받아야 한다. 이런 처리 방식은 오히려 성능상의 병목을 가져온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인공지능 계산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처리 방식을 ‘엣지(edge) 컴퓨팅’이라고도 부른다. 엣지 컴퓨팅이 점차 확산되고 발전하면 스마트폰 속의 인공지능 처리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흔히들 인공지능이라 하면 고성능 대규모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미래의 인공지능은 우리의 호주머니 속에서 주로 실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한 것과 비슷하다. 개인용 컴퓨터의 도입 초기에는 확산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컴퓨터란 금융기관·연구소·대기업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굳이 집에 컴퓨터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전망과 달리 이제 개인용 컴퓨터는 집집마다 ‘꼭 필요한’ 제품이 되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처리장치도 ‘있으면 좋은’ 기능에서 ‘꼭 필요한’ 기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아직은 기술적 제약이 많다. 인공지능 성능 개선뿐만 아니라 경량화·저전력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래에는 소비자들이 인공지능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 지를 기준으로 스마트폰을 고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스마트폰을 ‘AI폰’이라 부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