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통사고 후유증 이겨낸 사막여우, 임희정 시즌 첫 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DB그룹 한국여자오픈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는 임희정. 지난 4월 큰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후유증을 극복하고 값진 우승을 일궜다. [사진 한국여자오픈 조직위]

DB그룹 한국여자오픈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는 임희정. 지난 4월 큰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후유증을 극복하고 값진 우승을 일궜다. [사진 한국여자오픈 조직위]

임희정(22)이 19일 충북 음성군 레인보우힐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DB그룹 한국여자오픈에서 최저타 기록으로 우승했다. 최종 라운드 3언더파 69타, 합계 19언더파 269타다.

마지막 4라운드에서 6타 차 선두로 경기를 시작한 임희정은 1, 2번 홀 연속 버디로 7타 차로 앞서나갔다. 챔피언 조에서 함께 경기한 박민지가 경기 중반 5타를 줄이며 추격했지만, 임희정의 상승세를 꺾기는 어려웠다. 임희정의 올 시즌 첫 승이자 통산 5승이다.

신인이던 2020년 3승을 거뒀던 임희정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 지난해 말 기회가 왔다. 부산에서 벌어진 LPGA 투어 BMW 챔피언십에서 임희정은 완벽한 경기를 했다.

보기를 하나도 하지 않고, 36홀 133타(11언더파), 54홀 198타(18언더파), 72홀 266타(22언더파)를 기록했다. 그러나 우승은 하지 못했다. 마지막 날 8언더파를 친 고진영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전 끝에 졌다.

지난 4월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임희정에겐 불운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열린 LPGA 투어 기아 클래식과 메이저 대회 셰브런 챔피언십에 참가했다가 귀국한 뒤 승용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폐차할 정도로 큰 사고였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별명은 ‘사막여우’다.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 임희정은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다. 근육이 빨리 굳는 점이 가장 힘들다”며 “몸이 좋지 않을 때도 샷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대회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임희정은 신인 때도 몸이 좋지 않았다. 인대가 찢어진 상태로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 그는 “병가를 내고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신인이 첫해부터 그러면 평생 핑계 대고 밀릴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기 때는 집중해서인지 통증을 못 느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면 지독하게 아팠다”고 덧붙였다.

임희정은 난코스인 레인보우힐스에서 나흘 동안 버디 24개(보기 5개)를 잡아냈다. 전날까지 16언더파 200타로 한국여자오픈 54홀 최소타 기록을 세웠던 임희정은 72홀 역대 최소타와 최다 언더파 기록도 두 타씩 줄였다. 이전 최다 언더파, 최소타 기록은 17언더파 271타(2018년 오지현, 2021년 박민지)였다.

레인보우힐스는 코스도 어렵지만, 오르막 내리막 지형이 많아 힘이 든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15명이 기권했다. 임희정은 “몸이 좋지 않지만, 최대한 큰 대회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희정은 이날 우승 상금 3억원을 더해 시즌 상금 2위(4억619만원)로 올라섰다. 권서연이 13언더파 2위, 지난해 이 대회 챔피언 박민지는 12언더파 3위다.

지난해 첫 우승 뒤 1년 만에 다시 우승을 차지한 호주 교포 이준석. 쇼트트랙 선수를 하다 골프로 종목을 바꿨다. [사진 KPGA]

지난해 첫 우승 뒤 1년 만에 다시 우승을 차지한 호주 교포 이준석. 쇼트트랙 선수를 하다 골프로 종목을 바꿨다. [사진 KPGA]

한편 강원도 춘천의 남춘천 골프장에서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서는 호주 교포 이준석이 우승했다. 이준석은 마지막 날 5타를 줄인 끝에 합계 21언더파로 이규민을 한 타 차로 꺾었다.

1988년 대전에서 태어난 이준석은 쇼트트랙을 하다 서열이 엄격한 선후배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골프로 종목을 바꿨다. 중학교 1학년 때 호주 퀸즐랜드로 유학을 갔다. 이준석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공을 치고 학교에 갔다가 밤이면 라이트를 켜고 훈련했다.

제이슨 데이와 함께 호주 국가대표로 활약한 경력도 있다. 프로생활은 한국에서 시작했다. 2009년 K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서 1위를 했다. 그러나 문화 차이, 잔디 차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성적도 부진했다. 이 코치 저 코치를 찾아다니다 스윙도 망가졌다. 드라이버 입스도 걸렸다. 갑상샘 수술도 했다.

그는 왼팔에 ‘스페로스페라(spero spera)’라는 문신을 새겨넣었다. 라틴어로 ‘살아 숨 쉬는 한 꿈을 꾸라’는 뜻이다. 지난해 데뷔 13년 만에 한국오픈에서 처음 우승한 뒤 1년 만에 다시 승리를 추가했다. 이준석은 “갑상샘이 좋지 않은데 7주 연속 경기를 하면서 마크하고 일어날 때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러나 지난해 우승이 우연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회가 벌어진 남춘천 골프장은 그린이 크고 경사도 심하다. 스코어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준석은 “경험해보니 퍼터보다 아이언이 중요한 코스라고 생각했다. 원한 곳에 공을 떨어뜨리면 버디가 가능하지만, 퍼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이언을 잘 쳐야 좋은 스코어가 나는 코스인데 이번 주 아이언샷 감이 좋았다”고 했다. 이규민이 20언더파 2위, 정태양이 19언더파 3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