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금리·고물가에 가스관 잠그는 러시아…유럽, 코너 몰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 인상을 예고하자 나랏빚이 많은 남유럽 국가의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문제는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조여오고 있다. 에너지값이 오르면 금리를 올려도 물가는 더 멀리 달아난다. 빚이 많은 국가의 이자 부담은 더 커진다.

ECB가 다음 달 11년 만의 금리 인상을 예고하자 부채가 많은 남유럽 국가의 채권 금리가 요동치고 있다. 19일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3.58%로 올라섰다(국채 가격 하락). 올해 초 연 1.2% 수준이던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4일에는 연 4.17%까지 오르며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스 10년물 국채 금리도 연초 1%대에서 지난주 4%대를 넘어섰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관련기사

질 뵈크 프랑스 보험회사 AXA 그룹 수석경제학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최근 상황에 대해 “2011년 유럽 부채 위기(남유럽 재정 위기)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고 경고했다. 국채를 발행하는 건 국가가 빚을 내는 것이다. 국채 금리가 뛰면 해당 국가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문제는 남유럽 일부 국가의 부채가 이미 자국 국내총생산(GDP)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데 있다.

2012년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27%였다. 하지만 올해는 150%에 이른다.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12년 162%에서 올해 185%까지 상승했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코로나 시기 위기 극복을 위해 대대적인 재정지출 정책을 펼친 영향이다.

물론 2012년 위기를 극복하며 유럽 각국 은행의 재정 건전성이 개선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며 상황은 만만치 않다. 유로존 19개국의 지난 5월 물가상승률은 8.1%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ECB의 인플레이션 목표치(2%)의 4배 수준이다. 그리스의 5월 물가상승률은 10.5%에 달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인플레 압력에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에 가속이 붙으며 ECB도 마음이 급해지고 있다. ‘수퍼 비둘기’로 불리는 스위스 중앙은행이 지난 15일 12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0.5%포인트(빅스텝)를 올리며 기준금리가 -0.25%가 됐다. 같은 날 영란은행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5회 연속 인상에 기준금리는 연 1.25%가 됐다.

더 큰 문제는 가스 밸브를 걸어잠그는 러시아다. 18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통해 독일로 수송되는 러시아 가스 물량이 60% 급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독일을 거쳐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는 프랑스·오스트리아·체코 등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 기업 에니(Eni)도 지난 17일 웹사이트에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스프롬에 약 6300만㎥의 일일 가스 수요를 제출했으나 가스프롬이 요청한 양의 50%만 공급할 것이라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가스프롬은 자국에 대한 경제 제재로 수리를 맡긴 터빈의 반입이 지연된 탓이라며 서방국가로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는 “기술적 원인이나 타당한 이유가 아닌 정치적 결정이란 인상을 받았다”며 러시아의 노골적인 ‘에너지 무기화’를 비판했다.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잠그기 시작하며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주에만 39.7% 급등했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유럽 주요국의 전력 가격은 전년보다 평균 228.6% 올랐다”며 “유럽 기업과 가계가 오래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