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의 ‘마이웨이’는 진행형이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긴축의 고삐를 세게 당기고 있지만 일본은행만 ‘나 홀로 저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16~1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0.1%)하고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도 유지하기로 했다. YCC는 특정 국채금리를 일정 수준에 묶어 두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초완화적인 통화정책 수단이다. 일본은행은 10년물 국채금리 변동 허용 폭 상한을 0.25%로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행은 올해에만 12차례 무제한 국채 매입에 나섰다. 지난 14일에는 사상 최대 규모(2조2000억 엔)를 매수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사진) 총재는 “(10년물 국채금리 방어선을 인상하면) 금융완화 효과가 약해진다”고 밝혔다.
거세지는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 속 ‘역주행’으로도 보이는 일본은행의 한결같음은 시장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2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엔화가치 때문이다. 엔화값은 그야말로 자유낙하 중이다. 지난 13일 엔화값은 달러당 135.6엔까지 미끄러져 내렸다. 199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엔화가치는 소위 ‘구로다 라인’으로 불리는 달러당 125엔을 진작에 넘어서며 약세를 이어가 올해에만 14% 정도, 최근 1년 사이 19%가량 하락했다.
엔화가 이처럼 맥을 못 추는 건 일본과 미국의 통화정책 디커플링(탈동조화) 심화에 따른 것이다. 돈줄을 여전히 열어둔 일본은행과 달리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올해 들어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5%포인트 인상했다. 그 결과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확대되며 엔화 약세 압력은 더 커지고 있다.
그 때문에 엔화값 방어를 위해 일본은행이 통화정책 방향의 미세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일본은행은 금융완화와 엔저로 투자를 늘리고, 기업 실적 개선을 통한 임금 인상과 소비 확대로 물가가 오르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통화 완화 정책에 따른 엔저가 시장의 위험을 키운다는 데 있다. 엔저가 엔저를 부르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엔화 약세로 일본 자산의 투자수익률이 감소하면 해외 자본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여기에 수입물가가 오르며 생산자와 소비자 물가가 뛰어 가계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으면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심지어 ‘아시아 금융위기’ 재현 가능성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시니어 고문인 짐 오닐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엔화가치가 달러당 150엔 수준까지 떨어지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수준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고, 그에 따른 연쇄적 움직임을 불러올 수 있단 이야기다. 그는 “중국은 자국 경제를 위협하는 다른 통화의 약세를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엔화 약세는 한국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강재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의) 수출경합도가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한국과 일본은 수출품에 있어서 경쟁 관계에 있는 데다 (각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회수는 글로벌 수요를 둔화시킬 수 있다”며 “(수출 가격 경쟁력마저 약해지게 하는) 엔저 지속은 한국에 부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