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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버려놓고 "알 바 아니에요"…5년 뒤가 더 두려운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카메라를 바라보는 백구들은 목에 레이스가 달린 턱받이를 둘렀다. 몸무게는 1.5kg 남짓. 분홍 꽃과 인형에 파묻혀 머리에는 큰 꽃, 작은 꽃, 모자를 얹었다. 지난 5월 22일 한 아파트 단지에서 구조된 강아지 삼 남매다.

2개월 된 강아지들은 지난달 31일 안락사 됐다. 해당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것도 강아지들 사진 옆에 ‘종료(안락사)’라는 문구가 걸렸기 때문이다. 사진을 올린 누리꾼은 “어떻게든 입양시켜보려고 예쁘게 단장해서 사진 찍어 올렸는데 죄다 공고 종료”라며 안타까워했다.

손으로 만든 소품, 물려 가며 촬영…“한 번 더 봐주길”

포항시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한 2개월령의 강아지. 꽃단장을 해 사진을 찍었지만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 열흘만에 안락사됐다. [포인핸드 캡처]

포항시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한 2개월령의 강아지. 꽃단장을 해 사진을 찍었지만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 열흘만에 안락사됐다. [포인핸드 캡처]

백구 사진을 찍은 건 포항시동물보호센터의 염희선 팀장이다. 소품인 목걸이나 턱받이는 직원들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옷과 머리핀 등 일부는 후원을 받았다. 염 팀장은 베이비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한 마리, 한 마리 공들여 ‘견생샷’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데는 마리당 30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동물 중에는 야생성과 공격성이 있는 경우도 있어 어르고 달래는 데만 20~30분이 걸려서다. 직원 한 명이 붙잡고 다른 사람이 사진 찍는 동안 또 다른 한 명은 카메라 너머에서 ‘난리를 치며’ 시선을 끈다. 그 과정에서 개에게 물려보지 않은 직원은 없다고 한다.

동물을 씻기고, 먹이고, 구조 작업까지 하려면 직원들은 쉴 틈이 없다. 그래도 짬을 내서 사진을 찍는 이유는 오로지 입양을 더 잘 보내기 위해서다. 염 팀장은 "포항 내에서만 입양을 보내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좀 더 깔끔하고 예쁘게 찍어서 타지에서 관심을 갖고 저희 애들을 보러 오기를 바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진에 신경을 쓴 이후 입양률이 늘었다고 한다.

2년 전 입양 개 다시 돌아와…‘팬데믹 퍼피’의 그늘

2020년 포항시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해 입양보낸 닥스훈트. 2022년 버려져 다시 센터로 돌아왔다. [포인핸드 캡처]

2020년 포항시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해 입양보낸 닥스훈트. 2022년 버려져 다시 센터로 돌아왔다. [포인핸드 캡처]

염 팀장의 새로운 고민은 팬데믹 기간 동안 입양됐다 다시 버려지기 시작하는 동물이다. 일명 ‘팬데믹 퍼피’라고 불린다. 그는 “최근 버려지는 개들은 ‘들개’가 아니라 관리가 되어 있는 품종견들이다. 반려견이었다가 버려진 아이들이 코로나 전보다 2배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센터의 지예슬 팀장은 "코로나 기간 입양률이 엄청나게 늘었다"면서 "다들 아기일 때 데려갔는데 앞으로 4~5년 후가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 2일 센터에 들어온 암컷 닥스훈트도 ‘팬데믹 퍼피’ 중 하나다. 이 개는 지난 2020년 염 팀장과 지 팀장이 직접 입양을 보냈고 2년 만에 한 식당 앞에 버려졌다. 원치 않는 재회였다. 오른쪽 앞다리 뼈 한 마디가 없는 장애가 있었던지라 염 팀장은 센터에 들어온 닥스훈트가 2년 전의 강아지란 걸 한눈에 알아봤다. 주인과는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알 바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만 1만 8000여 마리 안락사 돼

포항시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한 2개월령의 강아지. 꽃단장을 해 사진을 찍었지만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 열흘만에 안락사됐다. [포인핸드 캡처]

포항시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한 2개월령의 강아지. 꽃단장을 해 사진을 찍었지만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 열흘만에 안락사됐다. [포인핸드 캡처]

보호소에 들어온 동물은 10일의 공고 기간을 거치는데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보통은 안락사 된다. 동물자유연대가 농림축산검역본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유실·유기동물은 11만 6984건이다. 이 가운데 15.7%인 1만 8000여 마리가 안락사 됐다.

백구 삼 남매는 지난달 22일 입소했지만 열흘 동안 데리러 오는 이가 없었다. 그런 중 삼 남매가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걸 알게 됐다. 파보바이러스는 증상 발현 후 수일 만에 급사할 수 있는 전염병이다. 입소 열흘 뒤 3마리는 함께 안락사 됐다. 지 팀장은 “먹이고 씻기는 것도 우리고, 안락사를 시키러 데려가는 것도 우리”라며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센터에 행복한 순간도 있는데 견사가 빌 때"라며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비었던 견사가 다른 강아지로 다시 차면 또 슬픔이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포코(4)는 강아지 삼남매처럼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보호소에서 현재 주인인 오모(26)씨를 만났다. 10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보호소도 감당할 수 없었고 선뜻 입양하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오씨를 만난 포코는 공놀이와 수제 간식을 좋아하는 건강한 강아지가 됐다. 오모씨와 포코가 가족이 된 지 3년째를 맞아 함께 찍은 사진. [오씨 제공]

포코(4)는 강아지 삼남매처럼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보호소에서 현재 주인인 오모(26)씨를 만났다. 10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보호소도 감당할 수 없었고 선뜻 입양하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오씨를 만난 포코는 공놀이와 수제 간식을 좋아하는 건강한 강아지가 됐다. 오모씨와 포코가 가족이 된 지 3년째를 맞아 함께 찍은 사진. [오씨 제공]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펫숍'이나 온라인에서 사는 비율(24.8%)은 지자체·민간 센터 입양(8.8%)의 3배에 달한다. 유기동물과 안락사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품종에 대한 집착과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인식이 사라져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보호소에서 어떻게든 보호자를 찾으려고 리본 달고 노력할 때 다른 쪽(펫숍)에서는 ‘품종’에 대한 집착으로 교배가 이뤄지고 패션처럼 동물이 구매되고 버려진다”며 “동물에 대한 ‘유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기동물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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