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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요부위 닮은 고소리…"최고의 경지" 이 술의 비밀 [e슐랭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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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성기 닮은 고소리, 술 이름에 붙여져

지난 2일 제주시 애월읍의 한 양조장. 스테인리스로 된 가열기 위에 항아리를 두 개 겹친 토기인 ‘고소리’가 놓였다. 가열기와 항아리 사이에는 밀가루 반죽인 ‘시룻번’을 붙여 열기가 새 나가는 것을 막았다. 고소리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 작업자는 항아리 맨 위쪽의 오목한 부분에 냉각용 찬물을 가득 채우고 가열 스위치를 켰다.

열기를 받은 고소리에서는 3분이 지나지 않아 코(술이 나오는 곳)에서 투명한 빛깔의 액체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2분 정도가 더 지나자 누룽지 같은 구수한 향과 함께 술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고소리 항아리 안은 뜨겁고, 냉각수를 부은 위쪽은 차가운 온도 차 때문에 만들어지는 증류주의 원리다.

증류된 술이 흘러나오는 고소리 코의 옛 이름은 ‘조쟁이’다. 남성 성기를 뜻하는 제주어로 생김새가 닮아 이름 붙여졌다. 제주 고소리는 조쟁이 위에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특징이다. 기화된 술이 여기에서 한 번 더 맺혀 보다 술이 잘 배출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2일 증류주를 만드는 도구인 고소리의 고소리코에서 고소리술이 나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일 증류주를 만드는 도구인 고소리의 고소리코에서 고소리술이 나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페르시아 개발…700년 전 몽골 통해 제주로

제주의 술인 고소리주는 발효주인 오메기술로 만든 증류주다. 증류주는 약 1000년 전 페르시아에서 처음 만들어져 700여 년 전부터 몽골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진 술이다. 제주에서는 소주를 증류한 술을 ‘고소리술’이라 부른다.

‘고소리’는 발효주를 증류주로 만드는 도구인 ‘소줏고리’의 제주 방언이다. 여느 술처럼 재료가 아닌 도구 자체가 술 이름에 붙여진 게 특징이다.

고소리술은 알코올 함량이 40도로 비교적 독주에 속한다. 현대인들이 즐겨 마시는 희석식 소주가 17~20도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 세다. 술의 도수가 높아지는 이유는 증류과정에서 수분이 날아가 알코올 함량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제주의 전통 청주인 오메기술(13도)을 1차로 증류하면 30% 정도만 고소리술이 된다. 오메기술은 쌀이나 찹쌀로 밥을 지어 빚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차조로 밥을 지어 빚는다. 제주에서 3대째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만들고 있는 김숙희(57)씨는 “좋은 고소리술을 만들려면 양질의 재료와 함께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며 “증류해 내린 술을 최소 1년 이상 숙성을 거쳐 완성하는 게 비법”이라고 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고소리. 타 지역의 소줏고리와 달리 코소리코 위에 둥그스름한 '방광'이 달려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고소리. 타 지역의 소줏고리와 달리 코소리코 위에 둥그스름한 '방광'이 달려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비싼 차조 이용한 곡주…최고급 증류주

술 전문가들은 빼어난 청주를 다시 기화시켜 만드는 증류주를 술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오메기술 또한 고소리술로 만들면 증류과정에서 풍성한 맛과 향이 더해진다. 한국 전통주의 대부로 불리는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잘 만들어 숙성한 청주를 증류해 나온 증류주는 술 중 최고의 경지”라며 “특히 제주식 증류주인 고소리술은 비싼 차조를 주로 이용해 빚어 다른 곡주보다 더 고급으로 친다”고 말했다.

증류주는 인류의 역사와 비슷하게 시작된 곡주에 비해 그 역사가 매우 짧다. 술을 빚어 내린 후 ‘증류’라는 화학적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해 만들기가 더 힘들다. 증류법 또한 애초에 사람이 술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게 아니고 소독용 에탄올이나 향수를 만들기 위해 개발됐다.

옛 페르시아 제국의 주조 장인들은 증류한 에탄올에서 깊은 맛과 향이 나는 것을 알아채고 이를 술에 적용했다. 여기에서 증류주 제조법을 익힌 몽골인들은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를 세계 각국에 전파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양에는 위스키와 브랜디, 동양에는 소주 제조법이 전해졌다.

1990년대 고소리술을 만드는 풍경. 사진 한라대 오영주 교수

1990년대 고소리술을 만드는 풍경. 사진 한라대 오영주 교수

『고려사』등장한 ‘소주패거리’ 별명 

제주의 고소리술은 안동·개성소주 등과 함께 3대 소주로 불리기도 했다. 몽골군의 주요 주둔지였던 제주와 안동·개성은 다른 지역보다 일찍 몽골의 증류식 소주 문화를 접했음을 뒷받침한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고소리술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소주’가 고려시대부터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왕원년(1374년) 2월 ‘소주에 관한 금령(禁令)이 내려졌다’는 내용은 고려의 음주문화를 보여준다. 이듬해인 1375년 『고려사(高麗史)』 최영 전에는 ‘경상도 원수 김진이 밤낮으로 소주를 마시고 주사를 부려 군 내부에서 소주패거리라는 별명을 불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몽골식 술인 증류주가 제주에 들어온 것은 원나라 때 목장이 세워진 시기쯤으로 보고 있다. 제주 향토음식 전문가인 오영주 제주한라대 교수는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충열왕 원년인 1275년에 원나라가 말을 키우는 국영목장을 당시 탐라인 제주에 설치했다”며 “이 시기에 몽골의 증류기술이 제주로 전해져 고소리술이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개성과 안동에도 이와 비슷한 시기인 1282년쯤 증류주 기술이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나라가 일본 정벌에서 패한 이후 개성과 안동에 각각 일본 정벌 병참기지를 만든 시기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제주의 무속신앙 디오라마. 프리랜서 장정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제주의 무속신앙 디오라마. 프리랜서 장정필

‘관혼상제·무속신앙 필수’ 밀주 만들어 명맥 

700년이 넘은 고소리술 역사는 일제강점기 때 끊어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첫 위기는 1907년 9월 전통주에 세금을 매긴 ‘주세령’ 강제집행 때였다. 당시 고소리술은 전국적으로 우리 전통주가 거의 말살되던 상황에서도 조용히 맥이 이어졌다. 제주의 여염집에서 밀주를 몰래 만들던 문화가 고소리술의 명맥을 이어줬다. 당시 관혼상제나 무속신앙을 위해 술이 필요했던 제주인들은 집집마다 고소리를 숨겨두고 술을 만들었다.

밀주로 이어지던 고소리술은 1940년대 한 번 더 끊어질 위기를 맞았다. 오랜 전쟁을 치르던 일제의 수탈이 강화되자 제주도 내에 식량 자체가 부족해져서다.

특히 1941년 시작된 태평양전쟁 때문에 연료보급이 끊긴 일제가 비행기와 자동차 등의 연료로 쓸 95도 이상의 무수주정(無水酒精)을 제주에서 만들면서 위기가 배가됐다. 무수주정은 요즘으로 치면 바이오에탄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제조방식은 증류주와 비슷하지만 한번 증류하는 고소리술과 달리 여러 번 증류해 만든다.

일제시대 제주에 들어선 주정공장. 사진 제주시

일제시대 제주에 들어선 주정공장. 사진 제주시

태평양전쟁 일제 수탈 역사 비극 이겨내

일제는 1943년 제주시 건입동에 7580㎡ 규모의 주정공장을 지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고구마를 이용해 연간 1만4940㎘의 전쟁무기용 연료인 무수주정을 생산했다. 이런 무수주정은 광복 이후 현재의 희석식 소주 생산 등에 응용돼 쓰이기도 했다.

1965년 이후에는 정부가 식량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양곡관리법을 시행하면서 고소리술같은 증류주 제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때도 관혼상제를 위해 집집마다 몰래 고소리술을 만드는 전통이 이어졌으며 1990년에는 고소리술이 제주도의 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됐다.

KWC(코리아와인챌린지) 심사위원인 심우성 소믈리에는 “잘 만들어진 고소리술은 기분 좋게 은은한 후추향과 페트롤향(기름향)이 숨겨져 있다”며 “다른 증류식 소주에 비해서도 구수하고 목 넘김이 부드러워 전통소주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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