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미래 전망에서 ‘우리만의 의미 만들기’ 중요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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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호 31면

박병원 과학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병원 과학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미래 변화에 대한 대응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거대한 시대적 조류에서부터 이제 막 시작되는 신호나 돌발 변수까지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이 과정을 ‘미래 이슈 탐색(horizon scanning)’이라고 부른다. 보통 사회·기술·경제·환경·정치 등 분야의 이슈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한다.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맨 첫 단계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과정이다. 미래 이슈 탐색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메가트렌드라는 용어를 만든 미국의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츠다.

트렌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더 커져서 서점은 온갖 미래 전망서로 넘쳐 난다. 하지만 미래 전망 보고서의 객관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답이 쉽지 않다. 특정 보고서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미래 이슈 탐색 과정은 명확하지 않다.

미래 이슈 탐색 넘쳐나지만
맥락 따라 비판적으로 읽어야
강대국과 우리의 처지는 달라
차별성 만드는 맥락 이해 필요
선데이 칼럼 6/18

선데이 칼럼 6/18

식민지를 경영해 본 강대국에서 만든 미래전망 보고서는 객관성보다는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더 많이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서구에서 나온 보고서는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만든 보고서는 다른 국가에서 만든 보고서와 같이 놓고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 비율이 84.8%(2021년)에 달할 정도로 해외에 개방되어 있는 국가이다. 몇몇 강대국이 제시하는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객관성 있는 미래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런 비판적 읽기에는 한 단계 더 조심스러운 분석이 필요하다. 각국의 고유한 맥락을 반영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차별성을 인정하고 적절한 의미를 만드는 것을 미래연구에서 ‘의미 만들기(sense-making)’라고 한다. 과거에 본 적이 없었거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도 맥락은 고려하면서 이해하여야 불확실성이 주는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미국 MIT대학의 데보라 안코나 교수에 따르면 이 역량은 비전 제시, 변화 관리 등 지도자의 여러 필수 역량 중에서도 제일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미·중 패권 경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논의해 보자.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국가 간 경쟁은 오래된 이슈이지만 최근에 안보 관점이 추가됐다. 경제적 효율성과 국가 안보의 일면 모순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두 이슈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강대국 간의 전략기술 확보 경쟁은 피할 수 없으며, 그 경쟁의 결과로 세계는 두 개의 기술 진영으로 나누어질 개연성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더 늦기 전에 어느 한 편을 택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맞는 분석일 수도 있지만 실제 현실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발표한 ‘인공지능보고서 2022’에 따르면 미·중 간 인공지능 분야의 국제협력은 2010년에서 2021년까지 5배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이 보유한 전략기술에 대한 중국인의 스파이 행위를 막기 위해 시도되었던 이른바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올해 2월에 전격적으로 폐기되었다. 미국과학재단(NSF)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20년까지 미국에서 이공계 분야 학위를 받는 외국인 박사 17만7454명 중에서 중국 국적 유학생은 5만2543명으로 30%에 이른다고 한다. 또 2000년에서 2015년까지 미국 대학에서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 유학생의 90%, 인도 유학생의 87%가 2017년 현재 미국에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기술 디커플링의 전개는 예상과는 다르게 더디거나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첨단 과학기술에 관한 한 지식수입국이다. 우리보다 기술 수준이 높은 국가와 국제협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지금 당장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결정은 미래에 감당해야 할 손해가 너무 클 수도 있다.

반도체 등 첨단전략 분야에서 원천기술 확보와 인재 양성 위한 온갖 지원 정책이 나오고 있다. 계약학과 설립, 석박사 과정에 대한 전격적인 지원, 연구개발 투자 및 파격적인 기업 지원 등이 묶음으로 제안되고 있다. 모두 다 필요한 정책일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 하나만으로는 국가 전체의 산업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보장은 없다.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은 누가 개발할 것이며, 백신은 누가 개발할 것인가.

이미 저출산 심화로 학령인구가 줄고 있으며, 이공계 박사 인력은 공급과잉이며, 연구경쟁력이 있는 대학은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과 같이 거대한 자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독일처럼 강력한 산-학-연 협력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중국처럼 고급인력을 많이 배출할 수도 없다(2011~2020년 기간에 중국은 석사 650만 명, 박사 60만 명 배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대국과 우리나라의 처지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선택지도 당연히 다르고 달라야 한다. 우리나라만의 강점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우리만의 의미 만들기’이다. 좀 더 정교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기이다.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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