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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이해충돌 경보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3호 31면

김나윤 정치부문 기자

김나윤 정치부문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 지난달 19일 시행된 후 한 달이 됐다. 2013년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국회가 지난해 여야 합의로 해당 법안을 제정하면서다. 법률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해충돌방지법의 내용은 간단하다. 공직자가 공무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한 기준으로 금지한다. 공직자들의 부패 행위를 사후 처벌할 뿐만 아니라 본인과 배우자, 직계가족 등에 대한 외부활동도 제재해 공직자들의 일탈을 사전 예방하겠다는 점에서 다른 부패방지 법령들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호기로운 입법의 취지와 달리 여전히 공직사회 곳곳에서는 이해충돌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1기 국무위원 상당수가 청문회 과정에서 과거 이해충돌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아직 임명되지 못한 부처 장관 후보자들 또한 이해충돌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2년 동안 제약바이오·헬스케어 기업에 근무한 이력이 알려지면서 이해충돌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지낸 뒤 20대 국회의원으로서 보건복지위에서 활동한 김 후보자는 20대 국회 임기 만료 후 소관 업무와 연관된 기업으로 ‘직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해충돌 위반이자 국민 눈높이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시행한 이해충돌방지법과 관련해 국민 권익위 직원들이 10가지 유형의 행위 규제에 대한 지침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시행한 이해충돌방지법과 관련해 국민 권익위 직원들이 10가지 유형의 행위 규제에 대한 지침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순애 교육부 장관 후보자 상황도 비슷하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부·단장을 지내던 시절 민간은행 사외이사를 겸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앞서 윤 정부의 초대 내각 후보자 중 1호 낙마자인 김인철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 역시 과거 ‘셀프 장학금’ 등에 따른 이해충돌 의혹이 불거지자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 20일 만에 스스로 물러난 바 있다.

공직자들의 과거 이해충돌 행적은 법 제정 전이니까 넘어간다고 치자. 이제라도 이해충돌방지법이 마련됐으니 앞으로는 전관예우가 줄어들고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사적 이익 취득이 걸러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당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이 규정한 ‘사적 이해관계자’부터 당장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해당 법은 최근 2년 내 퇴직한 공직자를 사적 이해관계자로 정의하며 공직자와의 직무 연관성을 사실상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퇴직 2년을 초과한 공직자 출신에 대한 별다른 제재는 없다. 현직 공직자는 퇴직자의 사적 만남도 사전 신고 대상이다. 하지만 골프와 여행, 사행성 오락 등으로 한정할 뿐 그 외 식사 자리 등의 만남은 규제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국회의원의 이해충돌방지를 위한 대책이 미흡한 실정이다. 국회의원은 모든 법안에 대해 발의 권한을 가지고 있고 법안에 대한 최종 의사 결정에도 참여한다. 직업 공직자보다 이해충돌 가능성에 노출되기 쉽다는 의미다. 전문성을 이유로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상임위에서 의정활동을 하며 사안별로 안건심사나 국정감사 등을 회피할 가능성도 열어 뒀다.

행위 규제법의 관건은 꼼수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허점을 촘촘히 보완하는 것이다. 여야가 지난해 모쪼록 합심해 의미 있는 법안을 마련한 것처럼 사후 보완책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협치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정치권이 그 어느 때보다 공직에 대해 국민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써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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