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총동원, 소주 마시며 주민 설득 ‘K시네마 요람’ 건립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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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호 22면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10〉 남양주 종합촬영소

1991년 4월 17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남양주 종합촬영소 기공식이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이응선 국회의원, 필자, 이어령 문화부 장관, 노재봉 총리, 이민섭 국회문공위원장. [사진 김동호]

1991년 4월 17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남양주 종합촬영소 기공식이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이응선 국회의원, 필자, 이어령 문화부 장관, 노재봉 총리, 이민섭 국회문공위원장. [사진 김동호]

1988년 4월 4일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부임한 뒤 건립에 착수한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오기와 집념,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하나의 ‘작품’이다. 사장에 부임한 뒤 영화계의 숙원인 종합촬영소 건설을 추진하면서 이왕 지을 바에는 33만㎡(10만 평) 이상의 넓은 부지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형 시설을 세우기로 했다.

문화공보부 재직 시절 서울·경기·충청남북도 일원을 돌아다니며 독립기념관·예술의전당·국립현대미술관 부지를 각각 선정했던 경험을 살려 땅부터 찾았다. 89년 3월부터 틈나는 대로 총무부 정남헌 차장과 함께 서울 사방 약 40㎞(100리) 일대를 돌아다녔다. 89년 3월 15일 경기도 고양군 산림과에 들러 국유지와 도 소유지 현황을 파악한 뒤 공릉·장현·일영 일대를 돌아다녔다. 3월 16일 남양주 군수를 만난 다음 퇴계원·광릉·양수리 일대를 답사했다. 곤지암·천진암·수원·시흥·용인·여주 일대도 뒤졌다. 적지라고 생각되면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건축가 김원과 함께 다시 찾아가 의견을 구했다.

마침내 4월 21일 지인의 소개로 남양주군 조안면 삼봉리의 현 위치를 발견했다. 4월 24일 공사 임원과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건축가 김원과 현장을 살펴봤다. 그 뒤 문체부 국·과장도 현장에 데려갔다. 모두로부터 ‘적지’라는 의견을 들은 뒤 후보지로 확정했다.

영화 ‘부용진’ 시사회에 박준규 등 초청

남양주 종합촬영소 공사 현장. 왼쪽부터 설계자 김원, 두 사람 건너 필자, 임권택 감독, 윤탁 영화진흥공사 사장. [사진 김동호]

남양주 종합촬영소 공사 현장. 왼쪽부터 설계자 김원, 두 사람 건너 필자, 임권택 감독, 윤탁 영화진흥공사 사장. [사진 김동호]

약 40만 평의 후보지 매입 비용은 공사가 사옥을 매각해 마련하고, 건축비는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종합촬영소 건립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89년 5월 17일 문체부에 보고하고 5월 23일 장관 승인을 거쳐 청와대에 올렸다. 그런데 서류가 건립에 회의적인 장병조 문화비서관에게 막혔다. 장 비서관을 직접 만나 사정을 설명하기로 하고 그의 경북고 동문인 임병렬 총무부장과 선배인 강신성일과 함께 자리를 만들었다. 적극적인 설득 끝에 그의 입장을 바꿀 수 있었고, 건립 계획은 대통령 보고를 거쳐 확정됐다.

6월 5일 132만3100㎡(40만240평)의 부지를 74억7681만 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비용 마련을 위해 남산의 공사사옥을 매각했다. 61년 준공돼 KBS가 사용하다 76년부터 공사 소유가 됐던 건물이다. 공개입찰에서 1·2차 유찰 끝에 89년 12월 15일 3차 입찰에서 90억5100만원에 개인에게 낙찰됐다.

종합촬영소를 지으려면 건립부지에 대해 건설부의 국토이용계획 변경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토지를 매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대가 ‘한강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이면서 건축허가를 받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89년 10월 16일 문공부 입부 동기인 이용권 실장과 함께 이재창 환경청장을 만났다. 우리 셋은 서울법대 동기다. 이 청장에게 “종합촬영소 건립을 위해 남양주군 조안면 삼봉리에 40만 평의 땅을 샀다”고 했더니 “그 지역은 상수원 핵심 권역이라 아무것도 짓지 못한다”며 당장 해약하라고 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법과 절차에 따라 ‘정면 돌파’를 할 수밖에 없었다.

허가절차를 밟기 전 만일에 대비해 전문가를 일본에 보내 후지필름의 폐수처리시설인 ‘리사이클링 시스템’을 보게 해서 설계에 반영시켰다.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었지만 ‘호서수질연구소’에 용역을 줘서 이를 받아놨다.

90년 2월 국토이용계획 변경승인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먼저 예종수 남양주 군수에게 계획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3월 8일엔 군의 과장 및 전 직원과 저녁을 함께하며 취지를 설명했다.

허가를 받으려면 삼봉리 전 주민의 동의가 필요했다. 7월 23일 오전 11시 30분 마을회관에 전 주민을 모아 놓고 종합촬영소의 건립 취지를 설명하고 요구사항을 들은 다음 점심을 함께했다. 100여 명을 상대로 100잔이 넘는 소주를 주고받으며 설득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전 주민의 동의를 얻고 군의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남양주 종합촬영소 전경. [사진 김동호]

남양주 종합촬영소 전경. [사진 김동호]

이제 경기도의 승인을 받을 차례였다. 공교롭게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건축할 수 없다’고 했던 이재창 환경청장이 건설부 차관을 거쳐 경기도 지사(95년 이전엔 임명직)로 와 있었다. 박부찬 경기도 부지사도 서울법대 동기였다. 도지사나 부지사를 찾아가면 될 일도 안 될 것 같아 8월 14일 이상용 경기도 기획관리실장을 찾아갔다. 그는 내무부 시절 테니스클럽 주장이었고, 당시 나는 문공부 클럽의 주장으로 잘 아는 사이였다. 이 실장의 소개로 해당 국·과장들을 만나 설득할 수 있었다.

각 부서 협의를 마친 다음인 10월 16일 오후 5시에 박부찬 부지사를, 5시 30분에는 이재창 지사를 각각 만났다. 이 지사는 “오래전에 포기하라고 했는데…”라며 즉답을 피했다. 나는 각 부서와 협의를 모두 마쳤다고 말한 뒤 재가를 부탁하고 나왔다. 이 지사는 특별점검팀을 현지에 보내 확인한 뒤 두 달이 지난 12월 23일 마침내 재가했다.

건설부엔 10월 24일 서류를 제출한 뒤 26일 오전 10시 주무과인 국토이용계획과를 찾아갔다. 마침 백영기 과장이 건설부 테니스클럽 주장이었다. 백 과장의 협조로 수도권계획과를 포함한 관련 국·과의 동의를 비교적 순조롭게 얻을 수 있었다.

국토이용계획 변경은 건설부가 농림수산부·산림청·문화공보부·환경처(환경청은 90년 1월 환경처로 격상)에 동의를 구하는 협조공문을 보낸 뒤 동의회신을 받아야만 승인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나는 관계부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10월 31일 농림수산부 농지관리과를 찾아가 대학 후배인 이병기 차관을 만나 동의를 구했다.

다음은 산림청과 협의를 거쳐야 했다. 일요일인 11월 4일 오후 4시에 산림청 테니스코트에 최평욱 산림청장과 고건 서울시장, 안상영 해운항만청장이 참석하는 테니스모임을 주선했다. 고건 시장은 경기고 동기면서 죽마고우이고, 안상영 청장도 잘 아는 사이였다. 보안사령관 출신인 최평욱 청장은 나와 문공부에 함께 들어간 김치곤 국장과 동향(경남 김해) 친구인 데다 둘 다 테니스를 좋아해 그날의 시합을 주선할 수 있었다.

91년 4월 기공식, 93년 11월 12일 개관

운동이 끝난 뒤 우리는 근처 홍릉갈비로 옮겨 저녁을 함께했다. 식사자리에서 청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최 청장은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결재한 뒤 건설부에 동의회신을 보냈다.

마지막이 환경처였다. 서울법대 동기인 허남훈 장관이 장관으로 부임해 있었다. 11월 5일 수질제도과장을 먼저 만난 뒤 장관을 예방했다. 11월 23일엔 조정평가실장과 차관도 만났다. 주무계장을 설득하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렸지만 결국 12월 15일 장관실에서 관계 국·과장이 참석하는 확대 회의를 거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각 부처의 동의절차를 모두 끝내고 그 결과가 건설부에 접수되면서 12월 24일에 건설부 국토이용계획변경 고시가 관보에 게재됐다. 이렇게 토지매입과 국토이용계획 변경허가를 받은 뒤 건축허가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됐다.

다음 단계는 건설에 필요한 정부예산 확보였다. 나는 8년간 문공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내면서 예산 확보를 위한 특별한 ‘노하우’를 얻었다. 공사의 사업예산 증액은 통상적인 경로를 통하되, 종합촬영소 건립에 필요한 신규예산은 국회에서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관련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는 영화시사회를 마련했다. 당시 화제를 모으던 중국 셰진(謝晉) 감독의 ‘부용진’을 호암아트홀에서 상영하면서 박준규 집권당 대표위원, 함종한 국회문공위원장과 예결위원 몇 분을 초청했다. 시사회가 끝난 뒤 근처 식당에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박준규 대표 초청엔 강신성일의 도움이 컸다. 식사 자리에 임권택 감독과 강신성일, 강수연이 나와 종합촬영소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나는 국회 문공위와 예결위에서 이를 신규로 책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90년도 예산에 설계비 30억원이 확보됐고, 91년부터 정부예산으로 건설할 수 있게 됐다. 모든 절차를 마친 뒤 91년 4월 17일 노재봉 국무총리, 이어령 문화부 장관과 많은 영화인이 참석한 가운데 빗속에 기공식을 올렸다.

본격적인 공사는 후임 윤탁 사장이 추진해 93년 11월 12일 개관했다. 종합촬영소는 안타깝게도 정부 방침에 따라 2016년 10월 17일 부영그룹에 매각됐다. 건설 실무를 맡았던 원천식 차장은 부영그룹 소속이 된 지금도 현장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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