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두 얼굴 연기, 불사조 김준수 덕에 표범 됐죠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18 00:21

업데이트 2022.06.1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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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호 19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뮤지컬 ‘데스노트’ 주연 고은성

전회차 전석매진을 기록중인 뮤지컬 ‘데스노트’의 주인공 고은성.‘데스노트’는 19일 막공 이후 7월 1일부터 8월 14일까지 연장공연 된다. 박종근 기자

전회차 전석매진을 기록중인 뮤지컬 ‘데스노트’의 주인공 고은성.‘데스노트’는 19일 막공 이후 7월 1일부터 8월 14일까지 연장공연 된다. 박종근 기자

어느날 갑자기 꼴보기 싫은 사람을 마음껏 제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변할까. 2004년 탄생한 일본 만화 ‘데스노트’는 노트에 이름을 적어 40초만에 살인한다는 쇼킹한 설정부터 손님을 끌어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재해석되고 있는 킬러 콘텐트다. 괴물같은 외모의 사신(死神)이 등장하고 천재 범죄자와 천재 탐정이 두뇌싸움을 벌이는 지극히 만화적인 스토리지만 뮤지컬 버전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시작된 충무아트센터 공연이 전회차 전석매진을 기록하자, 6월 막공 후 곧바로 예술의전당 연장 공연이 결정됐다.

사실 ‘데스노트’의 얼굴은 최고 스타 김준수와 홍광호다. 2015년 초연부터 한국 뮤지컬로서는 드물게 원캐스트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뉴프로덕션으로 부활한 이번 시즌 처음으로 더블 캐스팅을 시도한 만큼 자연스레 뉴페이스에게 관심이 쏠렸다. 법의 보호를 받는 범죄자들을 정의구현이라는 명분 하에 자의적으로 처단해가는 주인공 라이토의 새얼굴은 뮤지컬배우 고은성(32)이다.

배우 고은성.                                               박종근 기자

배우 고은성. 박종근 기자

지난해 ‘그레이트 코멧’의 섹시한 바람둥이부터 ‘헤드윅’의 트랜스젠더, ‘젠틀맨스 가이드’의 순수한 청년 등 어떤 장르의 어떤 캐릭터도 ‘고은성화’시켜 버리는 그지만, ‘데스노트’에서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라이토의 얼굴을 세팅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본은 제쳐두고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부터 샅샅이 연구하며 인물을 탐구했단다. JTBC ‘팬텀싱어’ 등 TV 경연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자신만만하고 즐기는 ‘천재형’ 이미지 뒤에 쉽게 상상하기 힘든 노력이 있었던 것.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수백개의 녹음 파일을 보여줬다.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부터 샅샅이 연구

“매일 공연을 녹음해서 바둑 복기하듯이 들어요.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일부 듣고, 강아지 밥주고 나서 다시 들으면서 집정리하고, 자기 전에 마저 듣고 잠이 들죠. 공부라기보다 너무 재밌어서 해요. 제가 부족한 게 많은데 이렇게 하니 조금씩 나아지더라구요. 군 전역하고부터 계속했는데, 실제로 많이 좋아졌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좋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잖아요.”

스스로 “부족한게 많다”면서도 ‘데스노트의 얼굴’인 김준수와 홍광호의 아성에 쫄지는 않았단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 “부담과 걱정이야 당연하지만 우리는 나아가야 하니까요. 저도 열심히 하다보면 그렇게 돼있을지 모르죠. 남들이 이뤄놓은 것에 대해 불안감은 가질 필요 없다 생각해요. 그들이 이룬 걸 제가 깨야하는 게 아니라 저 또한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거든요.”

아이돌 출신으로 뮤지컬계 정점에 오른 특별한 존재인 김준수와의 첫 만남은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연습실에서부터 김준수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압도적이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데, 이게 뭐지 싶었어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라, 어떤 장면을 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무대까지 덩달아 좋아졌어요. 사람에게서 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눈으로 확인하니까, 같이 무대에 서는 상대역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뭔가 생기는 거죠. 이 기운은 뭐지? 한 마리 불사조를 보면서 안 지려고 하다보니 내안에 숨어있던 표범이 나온달까요.(웃음)”

뮤지컬 ‘데스노트’ 중에서 엘 역을 맡은 김준수(왼쪽)와 라이토 고은성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은유한 테니스 장면. [사진 오디컴퍼니]

뮤지컬 ‘데스노트’ 중에서 엘 역을 맡은 김준수(왼쪽)와 라이토 고은성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은유한 테니스 장면. [사진 오디컴퍼니]

사실 40초 안에 사람을 죽이는 ‘데스노트’란 만화적 설정은 퍽 은유적이다. 평범하게 법과 질서를 지키며 살던 사람이 큰 권력을 손에 넣자,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법정신을 훼손하는 일은 현실에도 흔하다. 고은성은 그런 인물을 정당화시키고 싶지 않았단다. 공감이 가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 그가 그리고 있는 라이토의 표정이다. “힘을 얻었다고 해서 변한 게 아니라 라이토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생각해요. 이미 휘발유에 젖은 종이고, 데스노트는 불씨일 뿐인 거죠. 저도 처음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접근하려고 했는데, 결국 승부근성이 엄청난 특별한 사람으로 설정했어요. 정의를 위해 살인도 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이 관객의 공감을 얻으면 안되잖아요. 하지만 주인공이니까 진실되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고, 그래서 어려운 역할이에요. 한달 반 동안 집에서 ‘엘(라이토를 쫓는 탐정)’이 된 심정으로 원작을 뒤지며 라이토를 연구했어요. 제가 먼저 라이토를 잡아야 연기를 할테니까요. 광호형이 연기한 예전 영상도 혼자 1만회쯤 봤죠.”

배우 고은성.                                               박종근 기자

배우 고은성. 박종근 기자

자칭 ‘맥반석 계란’ 같은 미끈한 외모로 준수한 청년 역할을 주로 맡고 있지만, 의외로 그가 원하는 역할은 과한 분장으로 외모를 가리는 비현실적 캐릭터다. 자신과 완전히 반대되는 초월적인 캐릭터에 매혹된다는 것이다. “만일 뮤지컬 ‘슈렉’이 한국에 들어오면 제가 꼭 하고 싶어요. 인형탈 쓰듯이 분장을 하면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나올 테니까요. 가면을 쓰고 하는 연기훈련이 있거든요. 가면을 쓰면 고은성이 아니라 무의식이 다른 짓을 하는데, 그게 되게 신기하고 매력있어요. 나 위에 뭘 씌워서 거기에 나를 실어서 표현하면 어떨까, 궁금증이 크죠.”

지난해 도전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헤드윅’도 그런 역할이다. 하지만 그때는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는 고백이다. “원형탈모가 30군데 생기고 개구리같이 볼거리도 앓았어요. 스트레스가 심했거든요. TV경연프로그램과 다른 작품 연습까지 겹쳤고, 집안일까지 생겨서 총체적 난국이었죠. 그런데 저한테 힘든 상황이 헤드윅 역할에는 도움이 됐어요. 이겨내려고 하는 제 자신이 극중 헤드윅과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었거든요.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고, 마지막에 다 벗어던지고 행복해하는 것도 그냥 제 자신이었어요.”

배우 고은성.                                               박종근 기자

배우 고은성. 박종근 기자

헤드윅에 빙의한 덕분에 무대 위에서 신기한 경험도 했다. “관객과 통(通)했다”는 것이다. “굳이 어떻게 보이기 위해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저절로 이해해주는 느낌? 관객과 통하니 박수소리도 다르더군요. 박수에도 감정 표현이 있거든요. 그때 느낀 박수소리는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이 들렸어요. 나란 사람에게 보내주는 응원의 박수이기도 하고, 오늘 좋은 공연 보여줘서 고맙다는 진실된 마음이 느껴져서 울기도 했죠. 모든 것이 어깨를 짓눌러 당장 쓰러져도 안 이상할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공연을 하면서 버티다 보니 저절로 이겨낸 것 같아요. 지금은 딱 적당한 지구의 중력을 느끼고 있죠.”

노래 잘하는 배우로 알려지고 싶어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따지고 보면 그런 힘든 상황도 쉬기를 두려워하는 워커홀릭처럼 끊임없이 스스로 빈틈을 메우며 자초한 면이 있다. 2011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한 11년차 뮤지컬 배우지만 ‘팬텀싱어’ 이후 크로스오버 가수로도 활약했는데, 지난해 또 다른 가요 경연에 도전했던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프랑스 노래를 좋아해 프랑스 현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할 생각까지 했었다니, 혹시 경연 마니아인걸까.

배우 고은성.                                               박종근 기자

배우 고은성. 박종근 기자

“평가받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뮤지컬 밖에서도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데, 그것밖에 기회가 없으니까 싫어도 나가는 거죠. 뮤지컬은 이미 제게서 뗄 수 없는 주식같은 존재지만, 가끔은 주식 외에 다른 것도 먹어보고 싶어지잖아요. 그런데 주식이 뮤지컬이다 보니, 뮤지컬을 벗어나면 괴롭더라고요.(웃음)”

그의 말처럼 그는 천상 뮤지컬배우다. 어떤 무대에서 어떤 노래를 불러도 뮤지컬 세상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다. “방송에서 가요를 불러도 뮤지컬 배우는 뮤지컬스러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방송에 가수가 되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고, 노래 잘하는 배우로 알려지고 싶어요. 저 사실 노래보다 연기가 괜찮아요.(웃음) 캐릭터를 만날 때도 음악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그냥 영화배우가 영화 준비하듯이 다가가죠. 그렇다고 연기만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노래와 연기를 다 할 수 있는 뮤지컬이 행복하고 재밌어요. 뮤지컬에 진심이고, 소홀해지고 싶지 않아요. 이제 뮤지컬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시장도 커졌는데, 뮤지컬을 딱 지키고 있는 배우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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