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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의 화두, 웰다잉(Well-Dying)]암 사망자만 연 8만 명인데, 호스피스 병상은 1500개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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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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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서남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환자 송정숙(오른쪽 둘째)씨와 딸 박정민(가운데)씨가 의료진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서남병원 완화 의료센터는 일주일에 한 번 ‘포토데이’를 정해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을 촬영해 전달한다. 전민규 기자

지난 14일 서울서남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환자 송정숙(오른쪽 둘째)씨와 딸 박정민(가운데)씨가 의료진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서남병원 완화 의료센터는 일주일에 한 번 ‘포토데이’를 정해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을 촬영해 전달한다. 전민규 기자

“어머니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사냐고, 그냥 죽을 테니 집에 데려다 달라고 말할 정도였죠.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 입원이 결정됐을 때 정말 ‘드디어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통증만 조절되면 많이 편안해지실 테니까요. 실제로 여기 오셔서 아주 괜찮아지셨어요. 때마다 식사도 잘하시고, 대화도 잘하시고요.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이렇게 친절한 의료진은 처음 만났어요. 사회복지사, 봉사자분들까지도 정말 잘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지난 14일 오전 서울서남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만난 박정민(55)씨의 어머니 송정숙(79)씨는 지난해 10월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 중 담당 의사는 치료를 중단하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밝혔다. 환자가 고령인데다 이미 전이가 많이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이후 송씨의 바람대로 집에 머물며 진통제로 통증을 조절했지만,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지면서 지옥이 시작됐다. 매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백방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본 끝에 지난 2일 이곳에 오게 됐다.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해제된 서울서남병원이 이달부터 완화의료센터 운영을 재개하며 빈 병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원 후 송씨의 통증이 완화됐을 뿐만 아니라, 박씨의 몸과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진 환자의 통증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에게 심리적·사회적·영적 도움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일반 병동과 달리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경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환자들이 남은 생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나연 서울서남병원 완화의료센터장은 “입원한 환자분들의 통증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맞는 진통제를 처방해 통증을 조절한다”며 “환자의 마지막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편안하고 의미 있게 오늘 하루, 내일 하루 같이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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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완화의료센터에서는 담당 의사를 비롯한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요법 치료사, 자원봉사자 등이 팀을 이루어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함께 준비한다. 미술치료, 심리치료, 성직자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서울서남병원에서는 이번주부터 자원봉사자 교육이 시작됐다. 이날도 김종민 사회복지사가 4명의 자원봉사자에게 교육을 하고 있었다. 교육을 마친 후 송씨의 다리 마사지에 나선 이선희, 오희환 자원봉사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봉사를 시작했는데, 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제가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보호자 상담도 자주 진행한다. 김대균 한국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완화의료센터에서는 가족의 죽음과 환자가 돌아가신 후 남겨짐에 대해 준비할 수 있도록 보호자에게 임종기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센터장은 “생업을 유지하면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 역시 환자만큼의 정서적·신체적 고통과 이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며 “보호자 상담을 통해 환자 상태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를 전달하고, 동시에 정서적인 불안감을 덜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과 보호자의 유대관계가 깊어지는 배경이다. “이렇게 가면 나 어떻게…” 별도로 마련된 임종실에서 울음 소리가 들린다. “잠시만요…” 임종실에 들어갔다 나온 문 센터장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모두 유용한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지만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은 1478개로 한해 암 사망자가 8만여 명인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날 찾은 서울서남병원 완화의료센터 병상도 18개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2020년 기준 암 사망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3%로 영국(95%)·미국(50.7%)은 물론 대만(30%)보다 낮다. 말기암 환자의 77%는 완화 의료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죽고 있다는 의미다. 병상이 부족해 대기는 필수고, 이용할 수 있는 기간도 최대 60일로 한정된다. 입원 기간이 최장 2주인 곳도 있다. 규모가 큰 병원에서 완화 의료가 더 급한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서다.

이용 가능 질환도 제한적이다. 원래 암 환자만 가능했지만 2017년 이후 대상 질환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환자까지 넓어졌다. 하지만 입원형 호스피스는 여전히 말기암 환자만으로 제한된다. 문 센터장은 “암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질환도 사망의 원인이 되고, 모든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대상 질환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국가 재정이 투입된 호스피스 전용 병동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재 운영 중인 호스피스는 모두 일반 병상의 일부를 전환한 것이다. 한 의료진은 “국가가 과연 국민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보호자들의 돌봄 부담도 풀어야 할 과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의료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본인부담금은 5%로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간병 부담은 여전하다. 2015년부터 호스피스 가족의 병간호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호스피스보조활동인력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이 제도를 도입한 완화의료센터는 절반 수준에 그쳤다. 호스피스보조활동인력은 환자에게 보조활동 서비스를 전담해서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로, 간병비가 요양급여에서 지원돼 보호자들의 금전적·물리적 부담이 매우 낮다. 물론 자원봉사자 등 관계자들의 노력과 돌봄이 있어 일반 병동보다 호스피스 병동 보호자들의 부담은 덜한 건 사실이다. 다만, 호스피스보조활동인력이 없는 완화의료센터에서는 가족 한 명이 상주하거나, 월 200만원이 훨씬 넘는 비용을 감수하고 1인 전담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김대균 교수는 “생애 마지막 이별의 시기는 가족으로서 겪은 어려움을 회복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보호자들이 간병 부담에 허덕이느라 되레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다”며 “생애 말기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가족 간 결합을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호스피스보조활동인력 서비스 도입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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