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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의 화두, 웰다잉(Well-Dying)]국회 ‘조력 존엄사법’ 첫 발의…“웰다잉 진지한 사회적 논의 필요한 시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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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호 12면

SPECIAL REPORT 

국회에 ‘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됐다. 여론도 전보다 호의적이다. 하지만 안락사·존엄사를 둘러싼 법적인 논란은 이제 시작이다. 죽음에 환자와 의사가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느냐는 법률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존엄사 논쟁은 1997년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처음 제기됐다. 당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58세 남성 환자가 부인의 요구로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했다가 사망했다. 고인의 형제들이 의료진과 아내를 고발했고, 2004년 대법원은 아내에게 살인죄, 의사에게는 살인방조죄를 적용했다. 이후 병원에서는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 가족이 치료 중단과 퇴원을 요구해도 연명치료를 중단하지 않았다.

변화가 생긴 것은 2008년이다.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 할머니의 가족들은 “환자가 평소 인공호흡기는 절대 끼우지 말라고 부탁했다”며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다. 병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그해 5월 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듬해 6월 대법원은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법적으로도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혈액투석 등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20년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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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을 비롯한 12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발의한 이 법은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두고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 본인이 담당의사 및 전문의 2인에게 조력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 한달의 숙의 기간을 거쳐 실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상 자살방조죄를 적용하지 않는다. 안 의원은 “죽음의 논의를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 이른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존엄사 합법화 문제는 윤리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존엄사 합법화를 지지하는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의 대표 김현 변호사는 “환자 개인의 죽음까지 국가가 결정하는 사회는 비민주적”이라며 “연명의료결정법은 적용 범위가 너무 좁아 적극적인 존엄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은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없는 상황에서 안락사 도입은 지나친 비약”이라며 “안락사, 의사조력자살보다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부터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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